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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Nov 29. 2023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묵었던 료칸이라고?

'료칸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를 읽으며 

일에 쫓기면 영 책이 읽히지 않는다. 중간중간 점심을 먹거나 차로 이동하면서 요즘 꼭 참고해야 할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좀 마음의 짬이 나서 책을 한 권 읽었다. 2019년에 제주도 가서 산 책이니 벌써 우리집에 온지 4년이나 된 책이다. 아, 정말 시간 빠르다. 이 책을 작은 책방에서 발견하고 주저없이 손에 쥐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 책을 쓴 니시카와 미와는 영화 감독이자 소설가다. 제주 종달리의 작은 책방 '책자국'에 들리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운이 좋으면 책을 쓴 사람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도 역시 이 책을 살 때 이 책에 살포시 끼어있는 역자 이지수 씨의 손글씨 편지를 함께 받을 수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져있다. 

니시카와 감독은 대중문학에 수여하는 권위있는 상인 나오키상 후보에도 오를 정도로 대단한 문장가예요!



과연... 수려한 번역 솜씨와 더불어 나에게 폭신하게 스며들은 이 책은 한 마디로 감독의 영화 <아주 긴 변명>의 메이킹 기록이다. 마치 내가 브런치에 연재하는 칼럼인 <이번은 된다! 드라마 작가 생존기> 같은 과정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나와 동갑인 이 니시가와 감독과 그냥 이유 모를 '동료의식'이 들어서 아주 오랜만에 또 한 번 책을 집어들었다. 

(물론 나와 같은 애송이, 미생이가 이 감독과 견준다는 것이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뭐 사람 모두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앞에 밥그릇 국그릇 놓고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서로 너는 한국말 못 하고, 나는 일본말 못 하고... 영화는 좋아하고... 똑같을 거라는 생각이다^^) 



첫장을 펼치자마자 4년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구절이 오늘은 눈에 들어온다. 새로 만났다. 

가수 이승윤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달이 참 예쁘다고'이다. 그 압도적으로 감동적인 가사를  이리 아름다운 멜로디 안에 담을 수 있는지. 이 노래의 첫 구절이 바로 떠올라 몇 번을 읽었다. 이승윤도 혹시 이 책을 읽은 걸까?


밤 하늘 빛나는 수만 가지 것들이 이미 죽어버린 행성의 잔해라면 

고개를 들어 경의를 표하기 보단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웅큼 집어들래 

방 안에 가득히 내가 사랑을 했던 사람들이 액자 안에서 빛나고 있어 

죽어서 이름을 어딘가 남기기 보단 살아서 그들의 이름을 한번 더 불러 볼래 



여기저기 찾아보니 아마도 가나가와현이라는 곳이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내려가야 하는 곳에 있나보다. 지가사키 바닷가에 '지가사키칸'이라는 료칸이 있단다. 그 료칸의 2번 방에서 일본의 많은 작가들이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료칸도 19세기에 지어졌다. 아마 요새 같은 겨울날에 가면 분명히 칼바람 들고 추울 테지만, 그래서 좀 겁이 날테지만... 입 다물고 그곳으로 가서 위대한 각본가들의 정기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전화번호 정보가 남아 있어서 전화를 해볼까, 말까 하다가... 조금 미뤄두었다. 그 2번 방에 꼭 묵고 싶은 마음 잠시 꾹. 

예전 1월 말, 한참 추울 때 유후인의 한 료칸에 묵을 때 정말 너무너무 추워서 잠깐 밖에 나갔다가 다람쥐처럼 뛰어 들어와 코타츠에 하루종일 손발 집어넣고 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 그 료칸의 정취가 너무나 오래 남아서 그 어떤 외풍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감독님, 작가님들은 다들 어디에서 작업하실까? 궁금해졌다. 다들 작업실이 따로 있으실 테지. 나는 원룸 작업실에서 한 1년 일하다가 그 공간을 딸이 쓰기 시작한 이후 우리동네 구립 도서관 2층에 주로 가 있다. 아주 가끔 노트북 키보드 소리 따다다다닥 시끄럽다고 쫓겨나기도 했다. 노트북 작업하라고 마련된 곳인데, 아니 글 쓰는 일 하는 사람한테 키보드 두들기지 말라고 하면 어쩌십니까. 그래서 그 뒤로 귀에 이어폰 낀 젊은 사람 옆에 앉아서 작업한다. 


이것저것 이야기할 것 없이 그 2번 방에 가서 대본을 쓰면 과연 잘 쓸 것이냐? 

응, 잘 쓸 것 같다. 


뺨 툭 건드리면 하늘이 울며 불며 눈을 뿌릴 것 같은 날씨다. 

좋은 오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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