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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Dec 19. 2023

행운은 생각하고 일치해요

에헤이~ 시크릿 따위! 

내가 일하는, 나라에서 내준(?) 작업실(구립 공공 도서관 ㅋㅋㅋ)에는 어떤 발달장애 아저씨가 늘 놀이터 삼아 계신다. 발음은 좀 어눌하지만 말솜씨는 끝내준다. 한 말 되풀이하는 것이 아이고~ 포인트지만 뭐 괜찮다. 


믹스커피를 좋아해서 늘 주머니에 몇 봉다리씩 가지고 다니고, 조용한 도서관인데도 아주 큰 목소리로 친구들(같은 시설에 사는 분들인 듯하다)에게 일잔을 늘 권하신다. 도서관에는 늘 정수기에 뜨거운 물이 나오니까 아저씨는 신난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아하는 것은 아이돌 무대 영상. 커다란 헤드폰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끼고 둠칫둠칫하면서 여돌들이 나와서 신나게 춤추는 무대를 뚫어져라 보신다. 겨울에는 패딩 파카를 입고 모니터 앞에서 흥이 나는 바람에 서걱서걱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2층 미디어실을 울린다. 간간히 그 소리, 신경 쓰여서 쉿!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집에서 아점을 먹고 도서관에 도착했다. 아저씨가 오늘도 친구랑 복도에서 크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오늘 얘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당장 그 이야기를 이어폰 빼고 유심히 듣고 받아 적었다. 

이번 달 12월이 서울 신문의 <황서미의 시청각 교실>, 장장 3년 간의 대장정을 마물하는 달이다. 아주 좋은 글감이, 대어가 내 귀에 걸린 것이다! 


"500원 짜리,  긁는 복권 있잖아요. 그런데 5000원이 된다.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전달이 돼요. 

500원 짜리가 5000원이 된다구요. 굉장히 신기해요. 복권을 긁는 때부터  5000원이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데, 운이 좋을 때는 만원도 돼요. 그때는 생각을 더 '세게' 해요. 그런데 고액은 안 돼요. 이상해요. 코로나 있기 전엔 만 원도 됐거든요. 그런데 내가 코로나 걸리고 난 담에 집중을 더 못해서 그런가... 이제는 만 원이 안 돼요. 나 옆에 있는 사람이 되는데 내 소원이 그 사람한테 가 닿았나. 행운은 생각하고 일치해요. 예견, 예지, 미래를 아는 거랑은 달라요. 점하고 달라요. 계속 가다보면 5천 원이 된다니까요. 500원 짜리가 열 배되는 거잖아요. 

그냥 머릿속에 울리는 거예요. 이 복권은 된다! 

한 장만 긁어도 5천 원이 돼요. 열 배야, 열 배. 

사람이 하는 일, 생각대로 다 되면 무서워서 어떻게 해요. 그런데, 가끔 이런다고요. "


십 몇 년 전의 그 <더 시크릿>인지 하는 신비주의 젠체하는 책보다 훨씬 간결하고 진하다. 그리고, 맨 마지막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사람 일, 무서운 것도 이미 알고 계시는 어른. 


"행운은 생각하고 일치해요."


오늘 내게 어눌한 말투로 선물해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각도만큼 행운을 바라볼 수 있겠지. 


아! 더 배울 점이 있다. 이분 친구들은 지체 장애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지능이 높다. 그래서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는주는데, 다들 조금씩 무시하거나, 잘 안 듣거나, 자꾸 고쳐주려고 한다.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런데, 친구들의 말을 되게 잘 듣는다. 그러면서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자기의 이야기를 뚝심있게 풀어 놓는다. 가끔, "아, 그렇구나. 그런데, 형. 내 얘기도 좀 들어봐 주실래요?"라고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면 형은 허허 웃으면서 어, 해보라며 이 '파란 파카' 아저씨 말을 듣는다. 


오늘 일하러 갔다가 귀한 말씀 들었다. 

행운은 생각하고 일치해요.

내 마지막 서울신문 12월 칼럼 제목이기도 하다. 

내 머리로는 생각해 수도 없는 것들을 그동안 식당의, 술집의 옆 테이블에 앉은 분들의 이야기속에서 이리도 귀중하게 건져낼 수 있었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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