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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26. 2024

3일의 휴가

너무 뻔한데, 결론 다 아는데, 울어버린 영화 

엄마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딱 3일 동안 휴가를 온 것이다. 시골에 박혀서 혼자 살고 있는 딸을 지켜볼 수는 있으나 딸은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엄마에게 가장 큰 자랑거리는 딸이 우크라이나(?) 교수라는 것이다. 고생 고생해서 딸 우클라(UCLA)이나? 교수로 키워놨더니만 그런데 갑자기 내려와서 보니 그 엄마가 하던, 고리고리 시골에서 밥집을 이어 하고 있다. 메뉴도 딱히 없고 그냥 백반이다. 김치찌개 2인분에 계란말이 등등 정갈하게 2인분 내어드리고 "그냥 만 원 주세요." 그런다. 엄마는 옆에서 들리지도 않을 소리 '이그~ 저 문디 가시나~'를 내뱉으면서 속이 다 문드러진다. 


이 정도면 우리는 이 시나리오가 어떻게 흘러갈 지 다 안다. 

엄마가 이렇게 딸 외로이 사는 모습만 보고 있겠나? 아니다. 

딸은 몸과 마음 안팎으로 건강하게, 너무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겠나? 아니다. 

이 엄마한테 딸 어린 시절 동생에게 떼어놓고 다른 데에서 살, 사정없었겠나? 아니다. 

그리고 이 사정을 딸에게 소상히 알려주는 메신저 역할 없겠나? 아니다. 

딸이 나중에 엄마한테 엄마 고마워, 미안해... 마음 표현 안 하겠나? 아니다. 한다. 

모든 공식 다 띠링, 띠링 다 채워졌다. 



요즘 한 일 년, 나를 바꾸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벼랑 끝까지 나를 데리고 가보고 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 일하는 나, 엄마인 나 모두 점검 중이다. 

그동안 가열하게 해대던 SNS, 페이스북, X  다 끊고 조용히 브런치 정도에만 글을 올리며 조용히 소통하고 있다. 게다가 브런치 글 올리시는 분들 다 알겠지만, 여기는 그냥 의식의 흐름 따라 짧은 글 올리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자리에 앉아 딱 각을 잡고 써야 하는 곳이어서 어느 정도 진입하는 데에 허들도 있고, 부담도 다소 있는 공간이다. 독자들은 읽고 나서 그냥 자기 넋두리 같다면 바로 구독 끊어버린다. 철저하게 내가 '공부하는 곳', 유익한 '정보를 얻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오히려 X는 촌철살인 한 줄, 대단한 번개 내리쳐야 한다. 이렇게 너무나 온도차가 큰 공간들...)

이런 삶의 큰 재편 과정 속에서 이 영화 <3일의 휴가>가 들어왔다. 오늘은 몸도 몹시 피곤하고, 뇌의 회로도 이미 애초에 차단되어서 쉬려고 했다. 느슨한 글 하나 남기고 들어가느니 안 쓰려다가 영화 보고 난 뒤 이 느낌을 잡아두고 싶어서 바로 연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 상담과 코칭을 받고 있다. 

심리 상담은 나의 과거를 다듬어 미래로 나가는 힘을 북돋워주는 방법이고, 코칭은 미래를 중심으로 나의 나아갈 길을 다지며 보여준다. 다행히 실력이 있는 선생님들을 만나 굉장한 도움을 받고 있다. 굉장히 운이 좋았다. 이렇게 다져나간 지 2-3주...


나는 참 나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굉장히 순둥이, 마음 약하고 착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고집도 꽤 셌다. 

나만의 원리, 원칙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도 잘 몰랐다. 내 생각, 이게 맞으니까 다들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안 따라오는지 모르겠다고,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한다는 생각에 참 힘겨웠다. '삶'이라는 커다랗고 무거운 자루를 혼자 질질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내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거다. 


- 알았어, 내가 나중에 치울게. 

- 좀 있다 치울 거야. 


둥글둥글하고 지저분한 집에서 아이들과 뒤엉키는 엄마가 되고 싶어는 하는데 정돈되고 각이 잡혀있지 않은 삶은 내게 힘들다는 것도 안다. (그 옛날 가수 이적의 삼 형제를 서울대에 보낸, 자신도 독일에서 공부한 엘리트 여성학자 1세대인 박혜란 씨의 집이 그렇게 지저분했다고 한다. 아마 아이들 창의력 부흥시키느라 그렇게 즐겁게 살았던 모양인데 나는 그렇게 못 살겠다. 애들 서울대고 뭐고...)

이게 엄마가 아이한테 '이슬이 아직 안 내렸다'는 거란다. 

아이가 어렸을 때 어린이집 원장님이 나를 보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말씀인데,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뻔한, 희생적이고 내세울 것은 없어도 자식 하나만이 꿈의 전부, 딸에게 이슬이 흠뻑 내린 한국 엄마상과 또 한 번 너무나 뻔한, 엄마에게 무심했던 딸의 후회, 그리움이 영화 전체에서 출렁인다. 그리고 이 '뻔한' 모녀 이야기는 '그래서' 한국인인 우리들의 마음을 울린다. 

이 시나리오를 쓴 작가님과 제작진들도 우리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 가운데 평균값 이상을 넘는 엄마상을 그려내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평균 밖의 값을 구현하는 엄마에 대한 상상력도 부족했을 것이고. 

그런데, 마지막에 스틸 컷(아아... 이것도 옛날부터 얼마나 많이 쓰는 눈물 뽑아내는 장치인가?)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세수수건을 가지고 얼굴 닦아내며 펑펑...

엄마 박복자 여사는 지금 딸 사는 거 보니, 자칫 딴마음먹고 잘못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는 안 되겠다 싶어 자기 영혼의 머릿속에서 딸의 기억을 지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값을 치러서라도 딸 앞에 나타나서 하루를 보낸다. 

이 영화의 핵심 장면, <3일간의 휴가>, 제목만 봐도 딸과 하룻밤 꿈인 듯 아닌 듯 보내는 이야기라는 것을 왜 모르겠나. 그렇게도 뻔한데도 계속 눈물이 나왔다. 


아마 나는 이 평균값의 엄마가 그리웠던 듯하다. 

그리고 내가 이 따스한 엄마가 아니어서 더더욱...


영화 안에서 마음에 남은 대사 몇 가닥 뽑아 올려본다. 


- 엄마들은 잊어뿐다. 속상한 거 서운한 거. 

엄마의 대사다. 딸네 집에서 매몰차게 쫓겨난 다음 24시간 하는 맥도널드 들어가서 아이스크림 시켜 죽죽 녹아내리는 거 보고 있는 거, 당연히 영화니까 딸은 그 모습을 저 먼발치에서 봤다. 맥도널드 할머니도 떠오르고... 

그냥 24시간 국밥집 들어가서 호쾌하게 국밥 말아먹고 나오는 엄마면 안 될까. 왜 엄마들은 그렇게 불쌍하게 고개 축 쳐져서 아들 딸들 마음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의도된 것은 아니겠지만, (나를 포함해서) 우리들은 이런 기울어진 구도의 모자, 모녀 관계를 너무나 갈구한다. 이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 규탄한다.  


엄마도 방법이 없었구나. 

맞다. 방법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삶의 존립 위기에 닥쳤을 때 부모들은 칼을 뽑아 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부모와의 관계에서 탈출하거나 해결할 길이 없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굉장히 폭력적인 어떤 해결 방법이 가해졌을 수 있다. 부모인 우리들은 아이들을 위한 방법이라며 자주 자행한다.  

그리고 영화와 같이 나중에 커서 이렇게 우리 엄마가, 혹은 아빠가 방법이 없어서 그랬겠다며 이해하는 자식들, 많지는 않다. 또 내가 내 고집, 내 시각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몰라서 조심스럽다. 


봐바. 엄마 덕분에 내가 이만큼이나 됐어. 

이 말, 정말 내가 우리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데 엄마 '덕분'은 없었고 지금 '이만큼'도 없어서... 



영화 감상 후 결론. 

이렇게 자식 미치게 하고 가는 부모들의 청승, 반대한다. 특히 엄마들. 

부모들의 그 작은 뒷모습을 의도했든 아니든 보여주고 나서, '그걸 니 봤나, 내 몰랐대이~' 이러지 말고 바로 24시간 국밥집 가서 신나게 후루룩 말아먹으며 행복하자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아이들도 이 모습을 바라지 않을까. 


이제, 조금은 다른 엄마와 딸 이야기 서사가 나오기를 바란다. 

나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평균값 안에 자리하는 평범한 엄마를 만나지 못해 아쉬워하면서도 굳이 색다른 모녀 관계 이야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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