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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27. 2024

커피가 식기 전에...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음악을 들려드림

커피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그 맛과 향을 음미하며, 그것이 정말 좋아서 마신다기 보다 훌륭한 각성제, 정신의 부활 음료로서 사랑한다. 오늘도 한 석 잔 정도를 뜨끈하게 마셨다. 오후엔 디카페인 커피를 준비해서 마신다. 


대견하게도 새벽 5시 독서 모임을 한 달째 이어가고 있다. 12월 초부터 시작한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지금 겨우 한 달 됐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고 막 웃으면서 '안 하던 짓을 하면 사람이 잘못된다'고 한다. 나도 같이 웃음이 터지는 것이 이렇게 나의 생활 리듬을 거스르면서까지 뭔가 의지를 가져본 것이 고3 이후로 처음인 듯해서 그렇다. 

잘못되는지, 잘 되는지는 더 두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새벽 5시 일어나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다. 아니, 일어나는 것은 문제없는데 잠이 깨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나는 하루 정확히 7시간에서 8시간의 취침 시간을 지켜온 것이 그동안의 굳건한 루틴이었던지라 새벽 5시로 하루의 시작을 당기려면 전날 어린아이 같이 거의 밤 9시에는 잠들어야 한다. 


나의 건강한 뇌를 위해서라면 '4당 5 락'이라는 말은 너무나 어리석은 말이다. 특히 이 말을 한참 성장기인 청소년들에게 주입했던 70년대, 80년대, 그리고 나도 청소년이었던 90년대 어른들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새벽잠을 깨는 데에는 커피의 도움이 지대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새벽에 깨어나려고 이 법석을 떠느냐고?

새벽이 좋아서... 그 고요함이 내게 선물 같다. 여기저기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분주한 삶에서 새벽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리가. 그런데, 아직까지 많이 많이 졸리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너무 피곤하다. 

앞으로 두 달, 세 달이 지나면 익숙해질까?



커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바흐의 개그 명곡(?) '커피 칸타타' 한 곡 들려드리고 가려고 한다.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아름다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이 구절 아주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19세기의 프랑스 작가이며 나폴레옹을 정치의 세계로 이끈 외교관 탈레랑이 커피의 치명적인 유혹에 휩싸여 오롯이 바친 찬사라고 한다. 거의 20년 전, '악마의 유혹'이라는 커피 브랜드도 나와서 대히트를 친 적이 있다. 왜 맛있는 음료의 이름에 '악마'라는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를 갖다 붙였을까 의아했었는데, 역시 이러한 기원이... (한국 축구의 영원한 친구 '붉은 악마'까지 나온 마당에...!) 또한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는 하루 80여 잔의 커피를 마시며 (아주 들이부었구나!) 12시간 동안 줄기차게 글을 써댔다고 한다. 


바흐의 활동기인 1700년대 초반은 아라비아에서 서서히 유럽으로 커피가 전해지던 시기다. 바흐의 나라인 독일에도 엄청난 커피 열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그 또한 엄청난 커피 애호가였다고 한다. 

당시 커피는 지금처럼 부담 없이 아무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니고, 한 잔에 방적공들의 하루 삯과도 맞먹을 정도로 비쌌었다고 한다. 바흐가 일하고 있던 라이프치히의 '침머만 커피하우스'의 주인장은 홍보용 곡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이 '커피 칸타타' 되겠다! 


"아, 커피의 맛은 얼마나 기가 막힌 지! 천 번의 키스보다도 더 사랑스럽고, 포도주보다 더 달콤하지요.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제발 커피를 한잔 따라주세요."


소프라노의 아리아 가사다. 곡 전반에 경쾌한 멜로디가 흐르고 마지막에는 커피를 예찬하는 합창이 울려 퍼진다. 


그나저나 나도 어린 시절 엄마한테 숱하게 들었던 말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커피 마시면 얼굴 검어진다'는 낭설이다. 처음 커피를 접하기 시작한 당시 유럽의 얼치기 의사들은 커피를 마시면 낯빛이 검어지고 불임의 원인이 된다고 헛소문을 퍼뜨려서 여성들이 커피를 못 마시게 했다. 뭐든지 처음 뿌리를 내리는 것들의 존재는 이리도 업신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마니아들의 커피 사랑은 근거 없는 괴소문을 뛰어넘었고, 커피를 너무나 좋아하는 어떤 여성과 아버지의 투닥거림이 바로 오늘 들어볼 '커피 칸타타'의 소재가 된다. 


딸이 커피에 열중하는 것이 몹시 못마땅한 아버지는 계속 딸에게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하지만, 딸은 이렇게 계속 커피를 못 마시게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강수를 놓는다. 오호 그래? 그럼 나는 네가 커피 안 끊으면 시집을 안 보내겠다고 아버지가 으름장을 부리는데 그 앞에서 딸은 일단 커피를 끊고 결혼을 하긴 하겠는데,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을 자기가 직접 찾아 나서겠다고 하며 탁구공 주고받듯 이야기가 이어진다. 


원래는 이곡이 아버지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었지만, 바흐는 딸이 결혼 후에도 계속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21세기, 도로에 전기차가 돌아다니고 화성으로 로켓이 발사되는 현재의 지구인들이 듣기에는 굉장히 유치하고 딸의 인생과 커피를 이렇게 함부로 같은 급으로 놓을 일인가 싶을 정도로 이해불가의 대화지만 지금으로부터 벌써 350년 전의 생활형 대사임을 감안하자. 


이밖에도 커피를 사랑하던 음악가들 베토벤, 브람스 등도 있고, 대단한 미식가였던 이탈리아의 로시니도 커피를 사랑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얼른 여러분들에게 아름다운 커피 칸타타를 들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저들이 커피를 좋아했다고 한들, 내 새벽 독서의 괴로움(?) 타파에 1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궁금하신 분들은 '커피를 사랑한 음악가' 치면 3B(바흐, 베토벤, 브람스)라고 해서 이야기 줄줄이 친절하게 나오니 검색해 보시길... 

아, 베토벤은 커피콩 60알을 일일이 다 세어서 갈아서 커피를 내렸다고 한다. 머리고 옷이고 다 지저분했는데, 커피도구와 찻잔들만은 아주 고급스럽게 구비해서 마셨다고. 아침마다 눈이 벌개서 원두 60개를 세고 있는 산발머리의 남자를 상상하니... 참 재밌다. 


 

독자분들 각자 알아서 찾아보시라 해놓고, 재미난 것은 끝내 내가 다 이야기해 버렸다...

아 참,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는 표현은 오로지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쓰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외국 친구와 함께 클래식 음악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파덜 오브 뮤직' '마덜 오브 뮤직'을 이야기하면 부연 설명을 오래도록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 바라며... 


이제야 음악 감상 시간이다. 

바흐 "커피 칸타타" 작품번호 BWV 211 

<조용히 해, 수다 떨지 마시고>


https://youtu.be/s4PpNlO_ZCs?si=R0m1Y2By4zHMNUPw


소프라노 조수미가 거의 완벽하게 부른 아리아다. 

중학교 2학년, 88년도에 귀국 독창회를 비디오로 녹화해서 본 뒤로 그 독창회에 나온 곡들 다 외우면서 팬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저녁 라디오에 조수미가 나와서 성악을 공부하는 여러분들은 언어 공부에 치중하라고 조언을 줘서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큰 고민이 '수학'과 '물리'였기 때문이다. 아, 음악 공부를 하려면 언어 공부만 잘하면 되는구나! 이 엉터리 환희! 


https://youtu.be/GOAzGr5CTq4?si=s0tquo6SNXOpsdNX


오늘의 글을 마치기 전, 조수미의 선화예고 고3 때 영상 함께 나누어 본다. 

고3이 벌써 목소리로 트릴을 연주하고, 음정 하나하나 다 짚는다. 이때 발성까지 다 완성이 된 듯하다. 놀랍다. 

이렇게 줄기차게 노래하면서 벌써 환갑이 넘은 우리들의 수미 조.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내일 아침에는 한 번 더 커피 칸타타 들으면서 따끈한 커피 내리시길. 

그리고 몸의 생체 리듬은 언제쯤 습관이 되는지 아시는 분들은 꼭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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