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섬 Jan 29. 2024

당신의 이야기는 그리 재미있지 않다?

나의 망생일지 

스레드에서 이런 글을 쓰신 분을 만났다. 


작가일을 하다 보면 1) 본인 얘기를 2) 본인이 알고 있는 주변 얘기를 3) 본인이 감명받은 얘기를 영화 드라마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당연히 많이 만난다. 

그런데, 이 아이템들을 들어보면 재미가 없거나, 영화 드라마로 제작 불가능한 것이었단다. 영화 드라마가 만들어지면서 일개 작가 한 명 접촉해서 끝까지 갈 리가 만무한데, 작품 하나 만들어지면 기획만 2-3년 걸리고 제작 확정 후에도 그 배의 시간이 더 걸린 다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 줘도 못 알아듣거나 못 알아듣는 척들을 한다는 것이다. 

왜! 이 대단한 이야기가 영화로 못 나오는지!!! 감정적으로 용납이 안돼!! 왜!! 황정민한테 읽히기만 하면 바로 캐스팅이 될 텐데 왜 안 보여줘!!!


이분 이야기의 핵심은 이거였다. 


당신의 이야기는 그리 재미있지 않다. 


이 글을 읽고 나도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도 나중에 따로 아이템 드리겠다고, 썰 풀면 대하드라마라도 하는 분들도 여러 분 계셨다. 

한 6년 전, 작가 교육원 면접장. 한 남자 직원분이 면접 보는 사람들 번호 분류하고 줄 세우면서 주의사항을 주셨다. 


자자, 여러분들은 지금 면접을 보러 온 겁니다. 제발, 지금은 면접을 보는 것이니까, 들어가서 자기 인생 얘기 시작하면 이게 드라마라고, 팔만대장경 나온다며  면접관 붙들고 하소연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 얼마나 웃음이 터지던지...

나는 운 좋게 내 이야기를 가지고 드라마 쓰고 있는 케이스다. 꽉 채워 2년, 햇수로 3년 동안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저 작가님 이야기가 맞다. 

나도 처음에는 몇 개월 만에 슥삭 써서 통과되고 다들 환호성 질러줄 줄 알았다, 진짜로. 


그런데, 절대 아님. 


내 파란만장, 빨간만장 인생 이야기는 그저 티끌만 한 소재일 뿐 드라마의 대주제가 될 수 없다는 걸 아주아주 나중에, 심지어 나이도 앞자리 4에서 5로 바뀌고 알았다. 



"있잖아, 결혼을 다섯 번 한 여자가 있었대." 


그러면 사람들은 다 놀라 자빠진다. 뭐? 세상에 그런 사람이 다 있다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냐? 이쁘냐? 돈 많냐? 난리가 난다. 단순한 호기심이다. 

1단계, 성공. 


그러나, 이 '결혼을 다섯 번 한 여자'의 결혼과 이혼 혹은 사랑과 이별 과정을 주욱 나열하면 그때부터 그것은 신파가 된다. 심지어 그걸 본인이 등판해서 쓴다고? 차라리 아담을 꼬셔서 사과를 못 먹게 하는 편이 쉬울 것이다. 

본격 고백 격정 로망 수기! 

아무렇게나 단어 위치 바꿔 써도 대강 감 오는 그런 이야기들, 

80년대, 90년대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이 침대 아래에 숨겨 놓고 읽던 책들, '주부생활'이나 '레이디 경향' 부록으로 나온 소설책을 기억하시는지. 딱 그 짝 난다. 


지금 마무리 짓고 있는 기획안의 주인공은 나를 모티브로 해서 쓰고 있지만, 진행되는 이야기나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그래서 더더욱 자료수집을 한도 끝도 없이 하고 있고, 사람을 알고 싶어서 반백 년 인생 처음으로 철학을 느릿느릿 공부하고 있다. 

2, 3단계가 성공일지 아닐지는 저 위에 쓴 2-3년의 기획 단계, 또 2-3년의 제작 단계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는 아무짝에 쓸모없어. 이런 건 넣어두어야 해. 이렇게 주눅이 들 필요는 전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에세이 강의를 할 때, 도반(늙은이 같이 이 단어를 참 좋아한다. 글쓰기를 '함께' 수행하는 벗이라는 뜻에서...)들께 항상 강조해서 드리는 말씀은 이것이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바로 '나'에게서 나온다

오롯이 나를 바라보고, 내 안으로 뛰어들어 본 사람은 세상에 오로지 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사물에 대한 이해는 오로지 그 안에 뛰어들어 본 사람 만이 자격이 있다."


오늘 새벽 독서 시간에 들은 이야기다. 철학자 아미엘(사실 오늘 처음 들어본 사람의 이름이다...)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내가 남자가 아닌데, 어떻게 남자를 알 수 있을까. 상상을 통해서만, 그를 뛰어넘어서만 모양새를 구경할 수 있고, 묘사할 수 있다. 노인들의 생각과 생활 방식 또한 내가 나이가 들어봐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아닌 모든 존재들은 그냥 모르고 말아야 하나. 당연히 아니다. 그래서 보너스로 이런 말까지 남겨주신다. 


"타인의 경험을 이용하는 방법을 먼저 터득한 사람이 가장 짧은 선으로 목적에 이른다." 


빙고.

(아무래도 아미엘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그의 저서 <아미엘의 일기>라는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나 말고 다른 모든 이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 공자께서도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으니, 좋은 점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고 하셨듯. 

'타인의 경험'이 축약된 가장 좋은 재료는 바로 책이라는 생각이 요즘 아주 많이 든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재미나고도 근간이 되는 교재는 영화와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려면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었던 이유들이 바로 이곳에 있다. 


'나'라는 어떻게 보면 노잼 스토리(?), 싱싱한 이 반죽을 어떻게 조리해서 좋은 풍미를 저 멀리까지 풍기는 빵으로 구워낼까. 

오늘도 줄기차게 생각해 본다.  



대문 사진은 내 명함인데, 뒤집어서 올려 볼까 하다가 말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