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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Feb 14. 2024

가족 파워

♥ 사랑해요 ♥

일주일에 겨우 한 번, 50분 운동을 한다.  이젠 죽지 않으려고 하는 운동이다.

다행히 선생님이 너무 좋은 분. 나보다 열 살 아래 남자분인데, 아내하고 함께 헬스장을 운영한다.

아내분 또한 몸매(특히 대둔근 장난 아니게 발달하신 걸 보아 운동 오래 하신...)도 수업도 완전 프로다. 사방에서 하나, 둘, 셋, 넷... 부부의 소리가 우렁차다.

카톡 프로필 사진은 귀여운 여자아이들 사진, 9살, 7살 딸을 키운다. 딱 봐도 정말 열심히 사는 젊은 부부다.


근육량이 너무 적어서 지방률이 20프로 중반까지 올라가는 나. 키도 큰데 마른 나는 그냥 뼈에 지방 붙은 사람이다. 이날도 나는 턱걸이를 제일 못하고, 못하니까 무서워하는데, 한 세트 딱 열두 번만 하자고 했다. 오케이.

배치기를 하든 뭐 하든 일단 올라오기만 하라고 해서 죽을힘 다해서 올라갔다.

그러다가 아이 사춘기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구체적으로는 이야기는 안 하고 딸 둘 키우시는데 나중에는 쪼꼬미들이 아빠 손도 안 잡는 날이 올 거라고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트레이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딸들 너무너무 사랑하는 이 마흔 살 선생님의 이야기...


어머니가 1941년 생이고, 아버지가 1938년 생. (혹시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위로 누나하고 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두 명 모두 사망.

나는 너무 당황해서 네? 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아 지금부터 말씀드릴게요.'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형과 누나는 한꺼번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단다. 연탄가스 중독이었고 다들 이십 대였다고 한다. 그것이 1980년대.

그러면 옛날에는 아이를 일찍 낳으니 어머니 아버지 모두 40대였을 터. 자식을 잃고, 남은 부모님이 또 낳은 자식이 이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심장 쪽으로 이상이 와서 수술을 받으셨고, 학교에 그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왜 그렇게 북받쳤는지 막 울었단다. 우리 아버지 심장 안 좋아지셨다고 선생님한테 말씀드리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 턱걸이도 잘 못하는 나는 팔 힘도 빠지고 같이 눈물이 났다.

40대 훌쩍 넘어 50대 다 되어 낳은 아이이니 당연히 부모님은 모두 일찍 돌아가셨고...

나중에, 나중에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봤는데 그 넓은 종이에 자기 이름 하나만 딱 있더란다.

얼마나 기분이 이상할지 사실 상상이 가지 않았다.

세상에 혼자 남아있는 그 느낌.

게다가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면 나, 본인 빼면 가족 이름 옆에 모두 사망, 사망, 사망, 사망...

그래서 지금 아내가 너무 고맙단다. 이제는 등본에 혼자 덜렁 올라 있던 이름에 아내 이름도 있고, 딸들 이름도 차곡차곡 내려와 있어서...

그게 너무 좋아서 네 식구 이름이 빼곡히 올라 있는 등본 사진을 찍어 놓았다고 한다.


이날 운동 전 나한테 자랑부터 하겠다고 하면서 자리에 달려갔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늘 들고 다니는 텀블러에 큰 딸이 적어서 붙여둔 메모를 보여주었다.

내 딸이 준 메모도 아니라 사진은 굳이 안 찍었지만 그 예쁜 글씨, 빨간 하트, 이 늙은 이모는 다 기억한다.


아빠 사랑해. 오늘도 커피 잘 마시고, 잘 일하고 와.


아아~ 이 가족,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오늘의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 사진은 나랑 우리 개구쟁이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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