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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Mar 10. 2024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안을 대충 치운 후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러 갔다. 

어제 '유태오'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이렇게 나를 조조영화관으로 이끄사... 

https://brunch.co.kr/@chocake0704/242


12살 때 같은 반이었던 나영과 해성. 

나영은 영화감독이던 아빠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그렇게 해성과 헤어진 후 12년 후인 스물네 살 때 만날 뻔하다가 만나지 못하고, 또 12년 후인 서른여섯 살 때 나영이 사는 뉴욕에서 만나게 된다. 

여자 주인공 이름이 문나영이다. 



나에게는 문나영이라는 어린 시절 동네 친구가 있었다. '문'자를 거꾸로 하면 '곰'자여서 곰나영이라고 맨날 놀렸었다. 영화 보면서 계속 나영이가 생각났다. 


걔네 집은 영화 속 나영이네 집처럼 살만한 집이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셋방 두 칸에 언니 두 명하고 엄마, 아빠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았었다. 그리고, 내가 유치원을 들어갔을 때도 곰나영은 안 가고 집에 있었다. 유치원 갔다 오면 나는 곰나영네 집에 놀러 갔었다. 


하루는 걔네 집에 갔는데, 이상하게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어른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키가 아무래도 작았던 나는 큰 어른들을 비집고 들어가 곰나영을 찾았다. 곰나영은 방 두 개 나란히 붙어있는 곳에서 바로 나오면 부엌 겸하라고 벽돌과 시멘트로 얼기설기 막아서 만든 공간이 있었는데, 그 아궁이 앞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아직도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린다. 

"우리 아빠 돌아가셨어. 교통사고 나셨대."

내 기억에 후리후리하게 키가 크셨던 곰나영네 아빠는 일하러 나갔다가 밤새 안 들어오셨고, 식구들은 그렇게 긴 시간을 떨며 걱정하다가 아빠의 비보를 들었다. 

그리고, 81년 봄, 곰나영과 나는 학교에 들어갔고, 서로 반도 다르고 친구도 다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걔네 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가 버렸다. 


지금 내 남편과 아들의 성은 문 씨다. 

그런데, 곰시도, 곰혜성이라고 놀리지는 않는다. 

왜냐고? 그냥... 안 웃겨서. 




영화 속 주인공들이 24살 되던 해, 연락을 주고받다가 나영은 잠시 그만 연락하자고 한다. 해성은 이 황당한 제안에 눈물까지 글썽인다. 

(어쩌면 유태오 눈이 늘 눈물이 서려있는 것 같이 반짝거려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나는 영화 보면서 나영의 이 '이별 통보'에 멋있는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른 중반이 된 해성이 그때의 나영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의미를 라벨링 하듯 붙이는데... 내 느낌은 아니었다. 

사람은, 그리고 혹시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멋있는 것이 아니다. 비루하고, 쪽팔리다. 


얼마 전 기획안에 이런 문장을 썼다. 

'매번 새로운 제로 시점에서 양파 껍질과도 같이 켜켜이 저며지며 이 얇은 미분의 차이를 통과하는 입체적이고, 통속적이고, 잡종 같은' 감정이라고. 

혹시 영화 안 보신 분들은 얼른 영화 보시고 왜 나영이 연락을 잠시 쉬자고 했는지, 가늠해 보시기 바란다. 나는 딱 느껴지던걸. 어디서 짜증 났는지... 

그리고 서로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남겨져 있는 화면이 스윽 스치듯 지나간다. 


그리고 쏜살 같이 찾아온 그들의 36살. 

나는 이 파트에서 단연코 주인공은...  (                )

이것도 영화 보고 난 뒤 함께 이야기 나눠보자. 



곰나영 역의 그레타 리는 넷플릭스 드라마 '러시아 인형처럼'의 맥신 역으로 처음 봤었다. 외모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한국계고 중국계고 뭐고 간에  정말 포옥 빨려들었더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금 어색하기는 해도(그래서 이 영화에 찰떡 캐스팅이었겠지만) 한국말을 제대로 해내는 한국인이었다. 

'섭섭하다'라는 단어를 [섭써바다]로 발음하는... 


남자 주인공...

유태오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어색하게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시선, 심지어는 상대와 타이밍 안 맞아서 좀 창피한 나머지 후닥닥 손 감추는 것 등등... 이 모든 연기가 만일 대본을 보면서 해성을 상상하고 창조해 낸 그만의 연기였다면 이건 남우주연상 감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생에서는 이어지지 않는 인연'이라는 소재는 <라라랜드>에서 절정에 달했고(<라라랜드>에서 라이언 고슬링의 그 슬픈 끄덕임에 배를 쥐어짜며 울었던 기억이...), 너무 진부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나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추천한다. 

특히 이 영화는 '인연'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만, 그 주제를 만들어내는 재료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바로 이 한마디이다.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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