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머리 균형 잡기

아스파라거스의 삶

by 황섬

상담 선생님께 상담을 받은 것도 벌써 10회는 되어가는 것 같다.
선생님은 내 페친이시기도 한데, 아스퍼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서 가장 큰 특징으로 '유아적임'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흑백논리. 눈치 없음.
그런데 자꾸 이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으니까 상담받을 때는 모르겠는데, 돌아서서 가끔 화가 나는 것이다.
이건 선생님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냥 유아적이고 눈치 없는 나를 자꾸 일깨워주시니까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성숙하고 지혜로운 것은 뭘까' 하는 아득한 궁금증, '왜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할까'하는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일례로.
내가 페이스북에 나의 '아스퍼거'에 대해서 자세히 썼다.
두 번째로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세 번째로 내 중학교 친구들에게 고백을 했다.


친구들은 중학교 때부터 알아온 녀석들이라 '그럴 줄 알았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전혀 다른 부분을 축하(?)해주었다.
"황 여사! 우린 다 알고 있었어! 넌 정말 천재야!"
친구들은 평소에도 내가 무려 35년 전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그림 그리듯 다 기억해 내는 것을 놀라워했다.
즉흥적으로 반응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익살스러운 모션(?)을 취하는 것도 늘 즐거워해 주었다. 이것이 나의 천재성이라고 친구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똑같이 떠들고, 똑같이 지우개가 떨어져서 주워도 꼭 걸리는 것은 나였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사실도 당연히 기억한다. 늘 억울했으니까.
선생님은 이렇게 친구들에게 얘기한 것은 적절했다고 평가해 주셨다. 나의 이야기가 전적으로 수용 가능한 상대니까.

두 번째, 내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반응은 당연히 '니가 무슨?'이었다.
"살면서 다들 그런 불안함이나 그런 부족한 면은 다 있는 것 아니냐?"
부모님의 뇌내 체계에서 나의 상태는 이해불가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엄마 아빠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옛날, 내가 태어난 50년 전, 아스퍼거니 자폐니 그 어떠한 개념도 없었을 무렵 나는 그저 '특이한 아이', '소란스러운 아이', '고집쟁이'였을 것인데, 아무런 매뉴얼도 없이 힘든 아이를 키우느라고 엄마 아빠가 고생을 많이 했었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하는 감정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말씀을 드려보고 싶었다.
선생님께서는 부모님께 말씀드린 것도 부적절한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변하지 않는 분들이니까. 그리고, 내가 결론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이야기한 것은 그저 '이야기하고 싶어서'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셨다. 즉, 앞뒤 상황과 이 이야기를 한 후에 일어날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않는 나의 특성...

문제는 세 번째. '페북에다가는 왜 올리냐!' 이거였다.
지금 페이스북에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다 보고 있는데, 왜 그 얘기를 그 허허벌판에 쓰냐는 말씀이었다. '하고 싶어서'만 생각하고 돌진하는 나의 아스퍼거 특징의 전형이라며. '페이스북에 그저 쓰고 싶었다'가 그 행동의 원인이었다는 것.
자자, 이제부터 변명해 보겠다.

나는 페이스북 친구들과 함께 아스퍼거, 다양한 비정형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세상의 이해가 더 깊어졌으면 싶어서 쓴 건데... 선생님은 그걸 어떻게 페이스북에 쓰냐며 나의 신상이 다 노출이 되어서 위험하다고 하셨다.
갑자기 '선생님도 장애에 관한 개념에 자유롭지 않으신가?' 하고 느껴져서 조금 슬퍼졌다.
내가 창피한가?
나의 장애를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이래야 하는 걸까.

나는 또 이 시점에서 갈등한다.
이게 내 아스퍼거 때문에 폭넓게 상황을 이것저것 생각하지 못하고 '터널 시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결론적으로 내 아스퍼거를 숨기고 페이스북 같은 공간에서는 허허실실 글 쓰다가 끝내는 게 유익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증거가 나 같은 눈치코치 없는 녀석도 본능적으로 장애에 대해서만은 페친 중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제외한 글쓰기를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용감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의 이런 사고방식을 흑백논리라고 한단다. 이제 좀 인지가 되네 ㅋㅋㅋ (선생님과 함께 하는 상담치료 기법이 바로 '메타인지치료'라고 했었다)

장애를 알리면 마이너스가 되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다.
함께 0점을 맞춰주는 세상을 고대한다.


그리고, 어떤 감정이 들어도 솔직하게 상담에 임할 것이고, 우리 선생님이 그만! 할 때까지 끝까지 상담을 완주할 생각이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고, 나의 장애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어이구 어서 오십시오!' 하기보다는 조용히 피하거나, 혹은 다음 프로젝트의 리스트에서 나를 제외할 가능성도 생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로 나눌 수는 없고, 나눠지지도 않으며, 이 안에서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나 스스로 혼자 결정할 일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오늘 오전, 이 글을 쓰면서 정리되는 생각이다.



성숙한 정신 건강에 필요한 것은 상충되는 요구, 목적, 의무, 책임, 목표 같은 것들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균형을 잡고 계속해서 이를 조정해 나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이러한 균형 잡기라는 훈육에서 근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포기'다.

.... 때로는 심사숙고해서 자기 평가를 한 다음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떤 때에는 곧바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더 유익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아주 냉정하고 침착하게 표현하는 것이 최선이며, 어떤 때는 소리를 질러가며 미친 듯 화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 화 다루기를 배우는 것은 단순하지 않아서 대개의 경우 어른이 된 뒤에나, 심지어는 중년이 지나야 가능하기도 하며 때로는 죽을 때까지 배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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