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의 정수를 보여주마!
2024. 4. 8. 월.
아침에 일어나 오전 분량의 일을 하고, 오후에 또 마무리 지을 일을 한 후, 4시에 수영장으로 출발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우울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매일 출근할 것인가.
아침 9시까지 매일 출근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근 10년 간 출근 생활을 하지 않다 보니 갑작스러운 생활 패턴 변화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몸이 아주 힘든 것은 없다. 밤 8시 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묶이는 것에 마음이 어려운 것일 뿐.
생각해 보면 수영장에서 만난 같은 발달장애아 키우는 엄마들, 이렇게 수년간 끊임없이 시간 묶여 있던 이들 많았다. 활동 지원 선생님이 계시는데도 믿지 못하고 주 5-6일을 운동, 감통, 언어 등등 꽉 채워서 직접 다니는 엄마도 있었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곰돌 태어났을 때 같은 조리원 동기는 조산을 했었는데 그때 내가 그 아기한테 '먼 산 보이'라고 별명을 지어줬었다. 애가 정말 어른처럼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점점 커서 보니 발달장애, 아주 심각한 발달장애...
나랑 제일 친한 엄마였는데, 나중에 그 집에 가보니까 이 엄마도 당연히 하루종일 시간표 꽉 채워서 애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다녀와서 오후 4-5시부터 오후는 온통 술... 술... 둘째까지 낳았었는데 그 아이는 어떻게 케어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빠가 돌아오면 저녁밥을 하고 애들 샤워시켰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점점 우울증에 시달리더니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나는 이런 정도의 중증 우울증은 전혀 아니지만, 요즘은 새벽 나절에 걱정이 훅 밀려 들어오는 것이 좀 힘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도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아이 쫓아다니면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주변에 자기 일에 성공한 여성들은 절대 아이 쫓아다니지 않는다. 그 시간을 믿을 만한 다른 사람이 대신 일하도록 한다. 그럴 시간이 없다. 이런 편견과 터널 시야가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혜성이가 수영 가서 세 시간 운동하는 동안 나는 사실 일 하는 시간이 세 시간 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왜 이리 불안한지.
하지만, 내가 힘든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하루에 매일 세 시간씩 수영하는 혜성이가 제일 힘들 것이다. 혜성 군도 나도 이 일과에 적응하고 운동하는 시간이 재밌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어려서는 운동하고 나와서 오늘 재밌었어? 하고 물어보면 재밌었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재미없단다.
그런데 김연아 은퇴하고 인터뷰하는 걸 보니까 안 되겠더라. 극한 운동이 결코 재미있을 수만은 없고, 기록 단축, 1등, 금메달 달성하려고 어느 정도 중독이 되었거나 강박적으로 움직이는 삶이었다. 다시는 그렇게 운동하고 싶지 않다, 평생 할 운동 다 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니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생각도 들고...
오늘 수영하는 걸 보니까 속이 다 터짐. ㅋㅋㅋㅋ 잘하는 친구들하고 함께 운동하는데 우리 혜성이 꼴등이다. ㅋㅋㅋ 학교에서 시험 빵점 받아 오는 건 웃기고 재밌는데, 수영 꼴찌 하는 건 왜 싫은지 모르겠다. 욕심이다. 웃기다, 나도.
오는 길에 혜성이 왜 처음에 그렇게 느리게 수영했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다리가 아파서. 다리 위가 터지고 아파. 아마도 허벅지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허벅지' '장딴지' 단어 두 개를 더 알려주었다. 기억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운동 갔다 와서 계란 후라이 세 개와 주말 내 애써 만든 갈비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좀 전 잠자리에 들었다. 평일에 시간이 없어서 미용실을 못 간다. 언제 짬을 좀 내서 가려나 시간을 봐야겠다.
아아, 차라리 내가 운동선수를 하고 말지. 그럼 진짜 독하게 했을 텐데... 애 데리고 다니는 건 내 맘 같지 않아서 어렵다. 400미터 왔다 갔다 하는 훈련을 할 때 보면 제일 뒤로 처져서 눈물 난다. ㅋㅋㅋㅋ 웃기고 코 찡해지고...
오늘의 결론, 혜성이 몇 년 동안 열심히 하다가 안 되어도 할 수 없고, 잘 되면 너무 감사하고... 이 시간은 아까워하지 말고, 우리 둘이 잘 쌓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나가기!
2024.4.9. 화.
오늘도 수영장.
혜성이가 자유형 숨쉬기를 할 때 고개를 쳐드는 습관이 있다. 지금 그거 잡으려고 코치님들이 다들 신경 써주시는데, 어라? 오늘 보니까 좀 잡혔다.
나는 얘가 왜 저렇게 고개를 드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기를 쓰고 저렇게 고개를 밖으로 빼는 것 같다. 오늘은 수영장으로 오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죽지 않는다, 숨 쉴 수 있다'라고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숨 쉴 때 뒤를 보라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뒤를 보면서 숨을 쉬어야 밖에서 보면 옆으로 돌리는 것 같이 보인다. 혜성이가 수영할 때 힘들 때마다 "그러다가 혜성이 숨 막혀 죽어요!"라고 해서 '죽지 않는다'는 말을 해 준 것이다. 운동 많이 하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것을 '숨 막혀 죽는다'는 직관적인 표현을 쓰는 혜성이...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지 꽤 잘한다.
선수팀 애들 수영모가 모두 똑같아서 물에 있을 때는 누가 누군지 확실히 구분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는데, 오늘 혜성이 자유형 하는 폼 보고 다른 애인 줄 알았다. 물론, 나중에 힘드니까 또 고개가 물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잘한다. 지금 뭘 고쳐야 할지 스스로 알게 된 것 같다.
수영장에서는 출발! 을 늘 '꼬GO!'라고 외친다. 코치님이 큰 소리로 꼬!를 외칠 때 수영장 레인마다 열렬히 퍼지는 물보라가 너무나 아름답다. 대견한 아이들... 어제는 아이가 하도 못해서 속상하더니만, 오늘은 다른 레인의 아이들까지 눈에 아름답게 들어온다.
또 하나 참 좋은 것. 수영장 카운터에 늘 앉아 계시는 여자분이 계신다. 내가 수영장 가던 셋째 날이던가 혜성이 머리 드라이 시켜주다가 글쎄 노트북 하고 아이패드가 들은 가방을 놓고 온 것이다. 맙소사. 집까지 다 와서 그걸 알았다. 거의 밤 9시가 다 된 무렵.
손을 말 그대로 덜덜덜 떨며 수영장으로 전화를 했고, 카운터를 보시던 여자분은 밤 10시까지 자기 있으니 오늘 와서 가져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렇게 이태원 수영장까지 또 돌아갔던 적이 있는데, 다시 가방 찾아서 너무 다행이라면서 친절히 대해주셨다.
이분은 수영장을 이용하는 각 팀의 아이들 이름, 수영장 오시는 분들 이름을 열심히 외운다. 특히 이곳은 이태원 수영장이라 외국인이 많은데, 영어까지 더듬더듬하면서 손님을 응대하신다. 우리 아이 이름은 '혜성'이라 '혜성같이 나타난'으로 연결시켜서 외우셨다고 한다.
탈의실 키를 주실 때도 무심하게 그냥 막 주지 않는다. 혜성이가 옷 갈아입을 때 조금 느린 것을 감안해서 주신다.
"다른 친구들하고 조금 멀리 떨어진 데로 줄까요? 그래서 혜성같이 나타난 사람이 조금 편하게 갈아입게..."
진짜 이런 분들 감사하고 소중하다.
아 그리고, 재미난 것 하나 알려드림.
각 수영팀마다 수영모에 커다랗게 알파벳이 씌어있다. 우리 팀은 JH다. 나는 이게 뭘까 처음엔 조금 궁금하다가 까먹었었는데, 그 비밀을 알게 됐다. 그 팀을 이끄는 코치 이름의 이니셜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를 들어 코치님이 '한동훈'이면 DH 혹은 HDH을 쓰는 것이다. 우리 팀은 코치님 성 빼고 이름이다.
정호. 정훈. 종현. 정후. 준하. 중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