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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 엄마손 만두

인생은 실전. 매운 것이 뭔지 알려준 인생만두

by 황섬

성격이 불같은지라 뭐든지 적당히가 안 되는 사람이다.

커피도 진하게 샷 추가, 술도 얼음 안 타고 스트레이트, 그것도 적당히 마시는 것도 아니고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야채도 먹기로 했으면 한 바구니, 김치도 한끼에 한 4분의 1포기는 먹는 듯 하다.

커다란 배추 김치를 제대로 자르지도 않고 입으로 욱여넣는 나는 "맵지도 않아?" 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지만, 웬만한 김치는 하나도 맵지 않았다. 기분 좋은 매운맛일 뿐이었다.

예전에 내 친구들이 엽기 떡볶이나 매운 홍합 같은 요리를 먹고 나면 어김없이 탈이 난다고 했는데, 그게 뭔지 몰랐다. 술을 마시거나 매운 것을 먹으면 속이 쓰리다고 하는데 그게 울렁거리는 느낌을 이야기하는 건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어제! 2020년 4월 9일!

드디어 내가 진정한 매운맛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맵고 칼칼한 김치맛을 내는 김치만두를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어떤 분이 소개해주신 곳이다.

천호동 엄마손만두.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쪽에서는 젊은 여성분이 쌀떡을 일일이 손을로 떼어내고 계셨고, 또 한쪽에서는 좀 무섭게 생긴 아저씨께서 만두를 빚고 계셨다.

그냥 만두집에 가서 만두 먹방 하면서 사진 몇 컷 찍어와서 나 뭐 먹었는지 기록이나 해두면 가서도 맘 편하게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두도 만두지만 만두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하고 쓰고 싶었던 터라,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게 된다. 결국 이게 주인 아저씨, 아줌마가 귀찮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남한테 폐 끼치느니 굶어 죽자는 성격인지라 혼자 나서는 먹방길에 숫기도 없고, 심지어 '수줍어서' 참 취재에 어려운 점이 많다.


엄마손 만두 내부


가게 내부는 아주 썩 정리가 된 편은 아니다. 한 편에 자랑스럽게 잔뜩 쌓아놓은 배추 하며...

그래도 지금 이 장소로 옮긴지는 1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 인테리어와 외부 간판은 매우 새것 향기가 물씬 난다.



메뉴판에 나와 있다시피 이 집은 김치만두만 만들어 판다.

단, 보통 매운 맛과 아주 매운 맛으로 나뉘어 있다. 참 독특한 컨셉이다.

아저씨께서 한쪽에서 만두를 빚고 계시는데, 만두피가 참 하얗고 예쁘다.

대뜸 가서 폰카를 들이밀면서 "손만 나오게 해서 이 만두 좀 찍을 수 있을까요?"라고 양해를 구할 넉살의 부족으로 만두국 다 먹고 나가면서 살짝 찍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앉아 있던 차.

젊은 여성분이 메뉴를 물으시고, 나는 망설일 이유 없이 '아주 매운 맛' 만두국을 주문했다.

정말 많이 매운데, 괜찮으시겠냐고 다시 물으신다.

- 아우 괜찮습니다. 저는 매운 것 잘 먹어요.

겁대가리를 상실한 채 한 그릇 뚝딱 받은 엄마손 만두의 시그니쳐 '아주 매운 맛' 만두국.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보면 이 국물이 멸치하고 디포리로 낸 국물이라고 한다. 만두국은 사골국물로 만들어도 묵직하니 맛있지만, 이렇게 잔치국수 끓이듯 멸치국물로 잡아도 아주 시원하다. 과연 멸치향이 후욱 끼친다.

확실히 디포리를 같이 넣어서 끓이면 국물맛이 강하고 풍부해진다.

나름 살림 20년차가 넘는 나도 '엄마손'이다.


만두를 젓가락으로 집어 한 입 베어물어보았다.





아주 매운 만두는 이렇게 반달 모양이고, 보통맛은 뒷짐 진 동그란 모양이다.

지금 저 만두의 속을 보면 어마어마한 양의 배추가 들어가 있다. 씹으면 아그작 아그작 배추소리가 난다.

그리고,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맵다.


신기한 것은 그 매운맛이 캡사이신을 넣어서 오래 질질 끄는 질척한 매운 맛이 아닌, 뒷끝없는 욕쟁이 할머니처럼 맵다. 정말 불같이 매웠다가 사라지는 상쾌한 맛.

그러나,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이것이 기본 찬이다. 평범하다. 만두 자체가 맵다보니 저 단무지에 깍두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먹게 되었다.

만두 두 개를 입 속에 넣었다. 이젠 정신이 없기 시작한다.

거기에다가 그 맛있는 멸치 디포리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으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손은 또 만두 세 개를 반으로 가르고 있다. 이젠 눈물 콧물이 펑펑 난다. 살려주세요.


- 나 매운 것 잘 못 먹어.

살면서 이런 말을 들으면 '아아, 너 매운 것 잘 못 먹는구나, 그래.' 하고 고개는 끄덕이면서도 그게 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이들의 상태와 심경을 나이 오십이 거의 다 되어서야 알게 되다니!


지금 이 사진을 찍을 무렵에는 이미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이미 완탕을 포기하고 난 뒤이다.

저렇게 울면서도 보통맛으로 찐만두 하나 포장을 주문했다.

엄청난 매운맛에 때려 맞아 제대로 만두맛을 음미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억울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두꺼운 만두피 안에 어떤 고춧가루를 쓰기에 이리도 채찍질하듯 매운 것일까.



메뉴판에서 보다시피, 이곳은 떡국을 팔기도 한다. 그 정도로 떡살 자체도 훌륭한 집이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매운 만두의 파워에 못이겨서 저 수많은 떡국들을 국밑에 남겨놓고 나와야 했던 나의 심정은...

징징이



냅킨을 꺼내서 눈물 닦고, 콧물을 닦으며 나가려는데, 엄마 아들로 보이는 손님 둘이 들어온다.

- 여기 떡 많이 매운 만두국 하나랑요, 그냥 보통 만두국 하나랑요, 접시만두 매운것 하나, 보통맛 하나 주세요.

접시만두는 포장이 아니란다! 그냥 다 달라고 하신다.

듣는 나도 그렇고, 주문받으시는 분도 놀라서 네? 하고 되물으시다가 두 모자가 마스크를 벗으니 아아~ 하시면서 주방에 능숙하게 주문을 넣는다.

아마 평소에도 자주 와서 이렇게 엄청난 양의 만두를 드시고 가시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엄마손 만두에는 매니아가 많을 법 하다.

나처럼 매운 맛으로, 그것도 만두로 때려 맞았어도 왜 또 먹고 싶은 어마어마한 중독감, 그것이 이 집의 매력이다.


만두값을 계산하러 가면서 슬쩍 물어봤다.

- 만두에 어떤 것을 넣길래 이렇게 맵나요?

-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많이 맵다고. 고춧가루가 매워요.

- 그것 말고 또 어떤 재료가...

본격적으로 물어보고 싶었는데, 주방에서 만두국 끓여 내시는 아주머니가 여기 만두 나왔다고 빼액! 소리지르신다.

아, 또 이렇게 '수줍은 먹방러'는 터져나오는 호기심을 꾹 누른채 가게문을 열고 나왔다

도대체 박찬일 셰프의 '백년식당'이나 '노포의 장사법'을 보면 다들 이렇지 않던데... 박찬일 셰프는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냈을까 궁금하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야 하루 24시간 한정이 되어 있으니 그 수많은 가게가 모두 단골은 아닐테고.

아, 작가가 박찬일 셰프구나.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사정이 이러한 이상 어쩔 수 없지.

나의 어색하고, 쭈삣쭈삣한 만두집 방랑은 계속될 것이다.



보통맛 만두


이미 내 입은 매운맛이 가셨다. 상쾌하게 매운 맛이다.

평소에는 매운 것을 먹으면 위가 뜨끈해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입이 얼얼하게 아픈 것이야 우유나 물을 마시면 가라앉지만, 그 피가 도는 듯한 따끈함은 기분 좋게 오래간다.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위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점점... 마치 배에다가 핫팩 올려놓았다가 시간 지나면 앗 뜨거! 하면서 저온화상을 입듯 위장이 뜨끈하다 못해 활활 타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매운 것을 못 먹는 몸'이 되었다.

이는 분명히 엄마손 만두의 아주 매운 맛 때문은 아닐 터이다. 먹는 사람마다 족족 이렇게 탈이 난다면 어떻게 이 만두집이 버틸 수 있을까.

더 쎈 것, 더 매운 것, 더 진한 것만 찾아대며 뾰족했던 내 몸은 오랜 세월 이어온 풍화작용에 의해서 점점 미지근하게, 둥글둥글하게, 밍밍하게 변해가는 것일 뿐이다.



결국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운 것을 먹었다고 해서 위장약을 먹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저 보통맛 찐만두는 결국 하루 지나 오늘 아침에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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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손 만두 보통맛을 다시 쪄서 먹다가 진짜 깜짝 놀랐다.
만두소의 호방함 보소. 김치인 줄.
에잇! 나 배추 다지기 싫엇! 니들이 어차피 씹을 것 내가 왜 다졋! 이 기운이 느껴진다.
먹다가 웃겨 죽을 뻔 했네.
주인장의 이 의도된 성의없음(?)이 이집 만두 최강 식감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만두피가 두터우면 찔때 맛있는 호빵 냄새가 난다.

신션하게 발효된 밀가루 특유의 향일 것이다.


엄마손 만두 결론.

만두피는 매우 두꺼워서 호불호가 갈리겠으나, 쫄깃하고 간이 적당해서 입이 즐겁다.

백종원은 돼지고기를 잔뜩 넣고 김치찌개를 팍팍 끓인 그 김치로 만든 만두와 같다고 평했는데, 어제 오후 쫄쫄 굶고 오늘 맛본 보통맛 만두는 그 김치찌개에 두부까지 넣어 만든 맛이다.

가게 안의 사진에서 봤던, 시골집 김장하듯 쌓아둔 배추가 촙촙 썰려서 아주 잔뜩 들어가 있고, 아삭한 배추의 식감이 두꺼운 만두피의 부드러운 떡같은 식감과 잘 조화한다. 심지어 하루 지난 만두여서 차갑기까지 했지만 좋았다.

늘 주장하는 바이지만 만두와 커피는 식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식었을 때 맛있는 만두, 커피가 진짜 맛있는 커피라는생각이다.

새벽 대여섯 시에 나와서 그날그날 먹을 만두를 빚으신다고 하니, 만두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는 것도 잊으면 안되겠다.


엄마손 만두.

아, 정말 잊을 수 없는 인생만두가 되었다.

내게 참 매운맛을 보여준 만두다.

얘들아, 이제 나도 매운 것 못 먹는 것이 뭔지 알게 되었어. 속이 쓰린 것이 뭔지도 이제야 알게 되었어.

진정 맛있게 매운맛에 도전해보고픈 분들은 지금 엄마손 만두집 앞으로!!!




딸이 그려준 기린 그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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