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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ul 10. 2024

도리뱅뱅이

15년 전에 도대체 누구와 도리뱅뱅이를 먹었는가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신기한 것은 딱히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매일 산해진미의 안주를 앞에 두고 술을 마셨다.

게다가 절친이 동네에서 횟집을 하는 바람에 그 가게에서 신메뉴 참관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VIP고객이 되기도 하면서 매일매일 술을 마셨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단 한 번도 정신줄을 놓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깊은 새벽 3시, 막차로 술을 마시러 가도 우리들 속사정에 딱 맞는 메뉴선정은 늘 정신이 명료한 그의 몫이었다. 거기다가 그 정도 취하면 귀찮거나 깜빡 넘어가기도 하건만 그는 매번 음식이 나오면 핸드폰을 무조건 갖다 대었다. 일명 '폰카'로 음식사진을 예술가처럼 세심히 찍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각도를 바꿔 찍기도 하고, 심지어는 눈이 반쯤 감겨 불판을 헤집고 있는 앞의 친구한테 “야, 고기 한 점 살짝 들어봐.” 하며 무리한 부탁을 하곤 했다. 


그리고는 꼭 마지막 단계에 하는 일, 먹방. 
먹방이란 먹는 방송의 준말로 개인방송을 하는 BJ의 콘셉트(concept)로 자기가 먹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카카오 스토리에 전날이나 좀 전에 찍었던 음식 사진들을 잘 합쳐 모아 올리는 작업을 절대로 빼놓지 않았다. 웬만한 여자도 하지 못할 일들을 그는 참 잘도 해내었다. 그것도 매일 밤...


“아는 사람은 아신다는 태릉의 메(?).운탕. 매콤한 도리뱅뱅으로 하루 힐링 마무리.”

“매콤한 비빔국수, 멸치육수. 출출하고 스트레스 받을 땐 야식으로 짱”

“비가 쫘악~ 미나리에 폭삭 삶은 홍어찜에 매실 짱아찌 올린 후 쉰김치 볶음을 살포시 올린 후~ 곡주한잔에 털어 놓으면 캬!~ 드셔본 분만 아는 이맛. 날씨가 이리 여자의 마음 같을 때는 곡주 한잔 즐기는 이가 쵝오.“


그렇다. 그의 힐링은 이렇게 먹고 마시고 난 후, 그 기억들을 알뜰히 긁어모아 카스에 올려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 있었다. 애초에 
그가 쓴 글이 푹 삶은 홍어찜에 매실장아찌와 신김치를 올려서, 곡주 한잔 입에 털어 함께 먹는다는 이야기라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매번 놓치지 않고 일관되게 틀리는 맞춤법, 주어 술어 맞지 않는 '지저분한 문장들'은 어쩔 것인가? 이상하게 보는 내내 조금 민망했다. 고치라고 이야기도 못하겠고...


그와 함께 먹거리 기행을 함께 하는 횟수가 잦아지다 보니 어느덧 그의 카카오 스토리 먹방쑈에 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그의 스토리에는 인물사진이 없다. 모두 다 먹거리 사진들 뿐...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했던 자리의 흔적을 딱 나만 알 수 있도록 사진 속 낙관처럼 남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1과 함께...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뭐든지 1등을 하라고 이름을 ‘하나’로 지어 주셨다. 
내 40 평생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고, 그렇다고 변함도 없이 쓰고 있는 내 이름이 ‘하나’이다.


“공릉동에서 알아 주는 쵝오의 맛집 이모네 곱창. 쫀득쫀득하고 도톰한 곱창을 구워 한입에 쏙 넣으면 아는 분은 아신다는 쵝오의 맛. 1과 함께...”

“오늘밤은 키조개 매콤 보끔과 얼큰 뻔대기. 션한 한잔과 함께~ 캬~ 1과 함께...”

“목에 먼지 제거를 위해~ 국내산 1등급 삼겹살, 가리비 구이와 오징어 튀김. 여기에 생맥주 한 잔 하며 ~캬~ 한주를 마무리, 1과 함께”


아니 나이 마흔에 ‘쵝오’는 무엇이며, ‘션한’ 맥주는 또 뭔가. 
거기에다가 가장 오글거렸던 것은 이 남자 과연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고나 쓰는 걸까 할 정도로 ‘힐링’을 남발했던 것이었다. 유행처럼 번지는 힐링의 열풍에 나만은 무식하게 휩쓸리고 싶지 않았던 내 고집 탓에 매 번 불쑥불쑥 출현하는 그놈의 ‘힐링’이 창피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1과 함께' 였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아는 조개찜, 쫀득하고, 윤기 좌르르 흐르는 쫄깃 족발, 더운 날 속을 뻥 뚫어줄 치맥 한잔(?).... 그 특유의 주저리주저리 매다는 먹거리 수식어와 함께 1이 그의 스토리를 채워나갔다. 이처럼 많은 날을 그와 함께 나도 ‘힐링’했다.


아무리 그가 매일 줄기차게 틀리는 맞춤법과 일관된 비문으로 스토리 먹방쑈를 이어나가도, 그와 나의 관계는 일관되게 지속될 수는 없었다. 잔인한 어느 날. 먹거리 기행에 함께 했던 패거리 친구들이 주욱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나에게 어떤 짬뽕 나는(?) 이유로 화가 났으며, 그 화를 삭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일정기간 잠수를 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어서 그 잠수는 이 시간 이후로 계속될 것이라 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들이었지만, 일반 대중들 앞에서의 이별 통보는 좀 많이 창피했다. 차라리 그가 카카오 스토리에 남발하는 ‘힐링’이란 단어를 보고 혼자 창피했던 건 창피한 것도 아니었다.

그 절박한 순간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소통 방식은 늘 이렇게 공개방송 형식이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나이가 꺾은 팔순인데 이렇게 ‘짬뽕’이라는 맛있는 음식에 자기의 기분을 비유하다니!!

"나 그때부터 너에게 짬뽕 났어."

아아~ 짜증도 아닌 짬뽕이라니. 먹을거리에 대한 그의 태도는 아주 일관되었다. 이미 변해버린 나에 대한 감정과는 달리... 그가 냅다 버린 짬뽕에 덴 내 마음의 생채기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를 직접 볼 수 없었던 시간만큼, 얼굴 없는 그의 먹방쑈에 대한 집착도 커져만 갔다. 보고 싶다고 말도 못 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엄두도 못 내면서 못난 훔쳐보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카카오 스토리 속의 그는 나, 1의 존재유무와는 상관없이 이곳저곳 맛집을 찾아 힐링을 계속했고, 어쭈, 이젠 아예 고기잡이 배까지 타면서 먹방을 해댔다.


“그 어느 횟집에서도 못 맛보는(?) 신선한 회 한점. 초고추장에 찍어서 캬아~”

“이젠 집 나간 며느리는 버리는 시대, 그래도 전어구이 냄새로 돌아온다면 용서. ^^*~”

“살이 꽉찬 꽃게로 뜨건 국물을 한입에 소주 한잔. 이것이 진정 힐링이구나~ 캬아~”


그의 ‘힐링’은 오늘도 계속된다. 
지난겨울 계란말이로 시작되었던 그와 나와의 먹거리 여행은 그렇게 짬뽕으로 끝났건만 가을 전어, 가을 꽃게까지 이어진 이 계절 그의 힐링은이어졌다. 다행히 습관적으로 자행되었던 나의 먹방쑈 훔쳐보기 횟수도 보기 좋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내 감정도, 사랑도 언제까지나 일관되게 우상향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렇게 인연은 시원도 아닌, ‘션한’ 바람 살랑 불어오니 천천히 멀어져 가겠지. 천천히...  오늘은 나도 엄마가 직접 쑤어주신 가을 도토리묵이나 매콤시리 무쳐 먹어야겠다.




지금은 '황성 옛터'가 되어버린 블로그에서 한 15년 전쯤 썼던 글을 발견했다. 시대가, 강산이 한 번 반을 돌아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먹방'이라는 단어를 내가 지금 '설명' 씩이나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하나'라는 본명보다는 '황서미'라는 필명을 훨씬 많이 쓰고 있는 점이다. 

지금 이곳에 올린 글은 조금 교정해서 손을 봐서 올린 것이다. 아무래도 오래전 글이라 횡설수설하고 있는 터라... 게다가 처음 두세 문단을 읽어 내려갈 때까지 도저히 이 글이 누구에 대한 글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의 글을 퍼온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도리뱅뱅'에서 기억이 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아주 잠시 만났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남자는 우리 동네에 와서 '도리뱅뱅'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는 그때 함께 먹으면서 서로 호감을 가졌었다. 이성을 유혹하기에 숨 막히게 적당한 음식, 도리뱅뱅. 


이 남자는 나랑 동갑, 직장은 다니고 있지 않았고, 일이 있으면 가서 에어콘을 수리하거나 설치하는 기사였다. 물론 에어콘 일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남자의 취미는 이 글에서 절절하게 서술하는 바와 같이 맛있는 것 먹고 다니기. 정말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니면서 맛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무슨 돈으로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다니는지 궁금할 정도로... 

우리는 한 3개월 정도 만났다. 그러다가 이 남자한테 정말 너무나 무식한 방법으로 채였다. 또한 위에 서술해 놓은 바와 같다. 아무리 철이 없는 30대라 할지라도 그런 이야기는 둘만 조용히 일이지, 어떻게 친구들 앞에서 선언하듯 이별을 갈기는지. 그 '친구들'이라고 하는 녀석들은 지금 생각하면 다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엄마나 누나, 혹은 형수한테 용돈 받아 살면서 낮술이나 때리며 사는 인류들이었는데, 그들하고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다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내 험담까지 예쁘게 얹어서 그에게 전달했었다. 어떻게 연인인 내 이야기를 안 듣고, 친구들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듣고 이 중요한 결심을 한 걸까. 그래서 그때 상처를 굉장히 많이 받았었는데, 지금은 이야기가 도대체 누구 이야기인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가 되었다. 세월이, 시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이렇게 당당히 증명받고. 


이 글은 맨 처음 전업 작가를 하겠다고 결심한 후, 향후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가닥을 잡다가 '음식'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결정하고 쓴 첫 번째 습작이다. 즉, 음식과 그에 얽힌 인생 이야기를 쓴답시고 이 글을 쓴 것이인데...  15년 뒤의 내가 이 글을 평하자면 문장이 제대로 다듬어지지는 않았고, 음식이라는 주제에 대해 본게임으로 진입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날 것 그대로, 세상 겁대가리 없이, '다 뎀벼!' 시절의 황섬이 읽힌다. 지금의 나라면, '도리뱅뱅'이라는 음식 하나를 쥐고 들이 팠을 것이다. 

도리뱅뱅이는 충청남도 쪽에서 어죽과 함께 많이 먹는 음식이다. 피라미, 빙어와 같은 잘잘한 물고기를 내장을 손질해서 기름에 튀기고, 더덕구이나 황태 구울 때 쓰는 고추장 양념을 묻혀 한 번 더 굽는다. 그리고 접시에 빙! 돌려서 플레이팅을 해서 내는 터라 '도리뱅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아, 그리고 그 시절, 추운 겨울날, 우리 동네에서 도리뱅뱅이를 함께 먹었던 그 남자는 참 잘 생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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