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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un 08. 2024

계란빵

1999년 어느 추운 겨울밤

계란빵.

'달걀빵'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늘 갑자기 계란빵을 다시 한번 더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파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에 계란빵, 와플 트럭이 들어왔다. 종이봉투에 넣은 계란빵 두 개를 받아 들었다.  


1999년 1월 9일... 이 날도 계란빵을 먹었었다. 어떤 분이 표를 주셔서 남편과 함께 예술의 전당에 공연을 보려 갔었다. 바리 이야기로 오페라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공연 끝나고 나오니 눈도 내리고, 춥기도 참 추웠다.

그런데, 이 철딱서니 없는 두 사람... 돈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돈이 많지 않다는 뜻이 아니고, 정말 남은 돈이 빵원이었다. 집에 있던 돼지 저금통의 배도 가른 지 오래됐다. 그때는 지금처럼 신용카드로 쓰고 난 다음에 어떻게든 메꾸자.. 이런 유도리가 안 되는 철저한 현금 경제. 지하철 패스만 겨우 가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근처에서 외식이고 나발이고 뭐고 없이 그냥 집으로 꼴랑 들어오던 길이었다. 어느덧 날은 저물고, 오페라 공연 짧지도 않은 것, 끝나고 나니까 배가 고팠다. 게다가 나는 그때 2월 출산을 앞둔 만삭 임산부... 얼마나 배가 고프던지...

그때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시합하듯이 코트 주머니를 뒤져서 100원 하나라도 찾기 시작했다. 토큰이라도 나와도 그거 돈으로 바꾸자, 그 심산이었다. 그러다가 내 주머니에서 500원짜리가 튀어나왔다! 남편이랑 나는 와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ㅋㅋㅋㅋ (가여운 것들... ㅋㅋㅋ)


그때 우리는 정릉에 '복지 아파트'라는 이름의 군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파트 꼭대기에 달린 간판에서  갑자기 ㄱ자가 떨어지는 바람에 북악터널 가기 전 그 큰길을 지나가는 모든 시민들이 웁스! 를 외쳤다던 전설의 아파트! 아파트 들어가기 전 버스 종점이 있는데, 그 근처에 밤늦게까지 계란빵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는 주저 없이 그 500원으로 계란빵 한 개를 샀다. 그리고 나누어 먹었다. 지금도 왜 그 계란빵이 기억이 나냐면... 돈이 없이 가난한 시절도 시절이지만, 남편이, 지금 생각하면 그 스물다섯, 스물여섯 살 겨우 닿은 어린 친구가 임신한 아내에게 계란 있는 데를 싸악 손으로 도려서 나를 줬었다. 그래서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불쌍하고 고마워서... 그리고 자기는 밀가루빵 덮은 것을 반을 똑 떼어서 한 입에 쏙 먹었다.


지금 같으면 가정 경제가 이 지경이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때는 이렇게 계란빵 하나로 잘 견뎌서 살았다. 아마 지금보다 세상을 잘 모르고 패기 넘치는 젊음이 있었기에 그럴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다음 날 10일이 군인들 월급날이어서, 어디서 뭐 나올 구석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내 생각에 인생의 최고 승자는 역시 회사 구내식당에서, 혹은 우연히 들어간 자그마한 밥집에서 진심이 담긴 정갈한 음식을 내주셨을 때 큰 행복감,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만 원짜리 밥상 하나로 유명한 호텔 뷔페나 한 끼에 수십만 원 하는 오마카세 이상의 행복감을 느낄 줄 아는 이들(물론 뷔페나 오마카세 또한 너무나 행복한 미식 경험이다!), 정말 작은 것에 충만한 마음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들이 제일 부럽다. 그렇게 되고 싶다. 생각해 보니 1999년 어느 겨울밤, 계란빵 하나로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 내가 그립기도 하다.
이렇게 이날 하루, 지금은 멀리멀리 있는 전남편이 계란빵에서 계란 쪽 잘 떼어서 나 준 것이 생각나다니... 그냥 이 순간 한 토막만 생각하면 참 행복한데, 드론 올리듯 인생을 쭈욱 위로 올려서 길게 보면 너무나 처참하게 곪았고, 견디는 것조차 괴로워서 전체를 숭덩 잘라내야 할 때가 있다.


오늘은 계란빵 한 개를 먹으며 몇 입 베어 먹다가 나도 빵 안의 계란을 한 번 떼보았다. 잘 떼어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 간이 되지 않은 빵 안의 밍밍한 계란보다 노오란 밀가루 빵이 더 맛있다는 것. 게다가 2024년의 계란빵은 한 개에 1500원. 25년 동안 세 배가 올랐다. 나는 스물여섯 살에서 쉰한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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