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얘기를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종종.
오늘 오전, 병원에 가서 되게 원초적이고 어리석고도 웃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우리 아이, 자폐 맞죠?"
이게 오늘의 내 첫 질문이었다. 당연히 자폐 맞지. 벌써 10년 넘게 아이를 키웠는데 그걸 모르겠나. 그런데도 "자폐가 아니라 천재입니다." 이 소리까지는 아니어도 그저 희망찬 메시지를 듣고 싶은 거다. 돌아오는 답은 "네, 자폐의 소견을 보이고 있습니다."였다.
눈 아래 지방 주머니가 두둑해서 많이 피곤해 보이던 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성심성의껏 답을 이어나가셨다. 단조로운 특유의 어투, 한 가지 주제에 꽂힌 이야기들(안 그래도 평소에 좋아하는 롯데월드의 온갖 놀이기구 이야기와 자기는 접영과 배영을 잘한다며 수영 이야기를 했단다), 눈은 마주치기는 하지만 뭔가 조금 들떠있는 시선들, 그리고 말은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의사소통 등등....
"아이가 어디에 하나 굉장히 꽂힌 것이 있을 텐데요?"
"아... 네 버스랑 전철 노선 다 외우고요..."
"그렇죠?"
내가 평소 걱정했던 틱은 보통 중학교 이상 올라가면 확 꺾이니까 많이 걱정하지 마시라고 한다. 이제 틱을 할 것 같은 느낌이 오는 걸 알아채는 때가 도래한다고 한다. 그 느낌이 오면 다른 행동을 하던지 참던지 한다고.
그래도 지켜보는 내가 너무 힘이 들어서 약을 먹는 것은 어떻냐고 물어봤다. 마치 잘 걷지 못하고 맨날 뒤로 자빠져서 뒤통수 찧는 아기들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 보행기에 태우는 심정으로... 수영을 한다고 말씀을 드리니 발달장애 선수들이 여기에 정말 많이 온다며 도핑에 안 걸리는 약물인지 아닌지 검색을 해주신다.
당연히 혜성이는 자폐 스펙트럼 내에 있는 친구다. 여전히 중증 장애 복지 카드를 가지고 다닌다. 여기에 병원 다녀도 어쩔 방법이 없다. 약이 없다. 이전에도 아이 데리고 왜 병원 안 다니냐며 의아해하던 분들이 주변에 꽤 있었는데, 솔직히 아이의 자폐 정도가 양호(?)한 편이라 내가 잘 모르는 것인지 몰라도, 정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혜성이한테는 약이 없다. 자폐를 약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행동을 낮추는 약을 처방받는 것일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어려서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다녔던 감통치료니 언어니 다 끊었는데 그건 잘한 것 같다. 아주 다행히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몹시 즐기는지라 지금은 4학년 3반의 비장애 친구들, 사랑반 친구들 맞닥뜨리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다.
어머니가 원하시면 틱 약도 처방해 드리겠다고 하셔서 그냥 비상용으로 받아서 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이 약은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 것이라 곧 대회 앞두고 있으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 대회 마치고 복용할 것을 권하셨다. 그냥 안 먹일 심산이다. 이거 먹는다고 틱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 보기가 힘들어 먹이는 것일 뿐인 셈이니.
지지난 주에는 같은 발달장애 청소년을 키우고 있는 친구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폐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옆에 누군가 활동 지원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혼자 버스 타기', '세탁소에 옷 맡기기', '코인 노래방 가서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 '미용실에 혼자 가서 머리 깎기', 'ATM 기계에서 돈 뽑기', '신용카드 쓰기, 혹시라도 카드가 오래되어 칩이 안 먹으면 쓱! 긁어보기',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건 사기', '대형 마트 가서 장 보기', 심지어는 '복덕방에 가서 살 집 알아보기' (아아~ 이건 너무 고난도다~) 이런 것들이다. 연습을 해야 한다. 성인이 돼서는 적당하게 맥주도 마시고 돈을 내고 호프집을 나오는 연습도 해야 한다. 그리고 비장애 어른들도 가끔 실수하는 것인데 술을 마시고도 아무 이성한테 들이대지 않기! 이런 소소한, 하루를 살아내는 기술이 진짜 우리 발달 장애 친구들에게 연습이 필요한 것들이다.
오전에 일하다가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15년 동안 지적 장애 조카를 오빠 대신 키웠는데, 마흔이 넘어 진정한 사랑을 만나 결혼을 하고 싶다는 여성분의 사연을 봤다. 아니, 멀쩡하게 엄마랑 아빠가 있는데 왜 장애아 아들을 이 고모가 키워야 하는지 이해도 안 됐다. 처음에 데려온 이유도 세상에...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거벗은 몸으로 그냥 옷도 안 입고 강보에 싸여 있더란다.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나니까 엄마, 아빠는 슬퍼서든지 속상해서든지 어떠한 이유로 손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불쌍한 상황을 보고 고모가 집으로 데려왔단다. 그날이 이 15년 세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마흔을 훌쩍 넘긴 고모가 사랑하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고 한다. 집에다 결혼해야겠다고 하니까 젠장, 엄마라는 사람이 하는 말, 이 아이 네가 데리고 가라고 하더란다. 아니, 이런 집구석이 다 있냐, 진짜. 딸이 마흔 넘어 진짜 좋은 사람 만났고, 설령 이 아이 내가 데려가겠다고 하더라도 엄마가 그러는 것 아니라며 뜯어말려야지.
중학교 2학년, 장애를 지닌 남학생... 조카를 기관에 보내고 결혼을 할까 생각도 했단다. 정말 비참한 일이다. 이 천사 같은 고모의 앞길을 이 아이가 막는 꼴이 됐으니... 정말 막은 것은 주변의 가족들이다. 비정상적인 가족들 가스라이팅에 15년 당하신 것 같다.
이 여자분의 사연에서도 보다시피 결국 장애인을 키우는 것은 그저 가족 안에서 '폭탄 돌리기'일뿐이다.
오늘은 작업하는 시나리오에서 장애아 아들을 죽이고 자기도 모닥불에 풀썩 엎어져서 죽는 장면을 쓰는데 너무 힘들었다. 내가 왜 이 아들을 죽여야 하지, 그동안 발달장애 아이를 죽이고 함께 죽었던 부모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계속 헤아려봤다. 그런데 자꾸 혜성이를 사랑해 주었던 마음 좋은 활동지원 선생님들이 떠올라서 시나리오에서도 죽이기가 어려웠다. 나락... 그래도 이 땅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나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혜성이 7살 이후, 11살이 된 지금까지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이 계셔서 그분들의 도움으로 하루를 정말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고 마냥 불행한 일만도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만 '우리 아이 보다 단 하루만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절규는 나도 한다. 마음으로...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