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떤 여자에게 사기로 고소와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신이 아픈 사람에게 묻지마 고소를 당한 것이다. 마치 교통사고와도 같이...
처음에는 내 팬이라고 하면서 내가 쓴 글 하나하나 다 댓글 남기고 반응하면서 좋아하다가 자기가 생각한 것만큼 내가 친하게 굴지 않으니 악에 받쳤던 것이다. 그 여자가 쓴, 절규 어린 고소장을 보면 이렇게 씌어있었다.
'저는 열심히 살고, 그래도 작가님 같이 가난하다고 연극은 하지 않아요! 가난뱅이 코스프레는 하지 않아요. 다른 모든 사람들은 작가님이 가난한 줄 알고 있어요. 그것 다 거짓말 아닌가요?'
도대체 가난이란 것이 뭘까.
불안이다.
딴 것 없다.
불안이다.
같은 고민을 하더라도 부자가 고민하는 것이 상황은 천 배 만 배 낫다고 생각한다. 부자들은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보다 다양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가 있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단 한 번도 '부자'라는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기에 그들의 고충을 잘 모르겠지만, 해결책 마련이라는 측면에서는 백 프로, 천 프로 확신한다. 돈 있는 것이 낫다고. 나는 지금도 차문도 집 현관문도 잘 안 닫는다. 들어와서 훔쳐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십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이 생에 부자는 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욱 정확히는 '중산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맞다. 사기도 1억 단위로 맞고, 몇 천 단위로 맞는다는 이 세상에서 나는 사실 그 돈이 없다. 그래서 사기를 맞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행일까. 그저 이렇게 전셋집에서 소박하게만 살다가 갈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라고 해도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여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다음 달 살 돈이 생길지 말지 몰라서 불안했으니까. 지금은 적어도 다음 달, 다다음 달까지는 빚을 내어서라도 버틸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가난하다'는, 연극.
오늘은 이것에 꽂혀서 조용히 생각해 봤다.
"내 신파는 지우고 싶은 과거지만, 가난을 자신은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 정도로 여기며, 신성불가침 영역이 된다. 신파에 돌을 던지는 이는 없고, 동정이 가득할 테니까. 다른 이의 신파는 참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겪은 가난보다 힘든 일은 없었을 거라 자부할 테니, 가난하지도 않은 자들의 신파는 견디기 힘든 모욕적인 일. 그래서 고통에 차등을 두고, 덜 고통스러운 자, 더 고통스러운 자를 가린다. 실제 가난 앞엔 장사가 없다. 계속 가난한 자는 사람들 사이에 끼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 죽고, 갑자기 가난해진 사람들은 절망 속에 죽는다. 이런 차이가 있을 뿐, 가난은 삶을 병들게 만든다."
한 페친 님이 쓰신 글이다.
한때 어쩌다가 가난은 내 특권이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가난과 그에 따른 불편을 토로한 글에는 '좋아요'도 많이 얻고, '예쁜 척, 아닌 척하면서, 자주 올리는 비루한 셀카' 만큼이나 호응도 많이 얻는 자극적인 권력이었다. 실제로 페북 친구들에게 용돈도 받은 적 있고, 옷도 받은 적 있다. 그리고 먹을 것도 얼마나 많이 선물 받았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혜성이도 어린 데다가 형편은 어렵다고 하지, 게다가 자폐 진단까지 받은 터라 많은 분들이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셨었다.
그래서 생긴 아픈 에피소드도 있다. 5-6년 전, 미국에 계신 한 페친에게 큰 선물을 받고 난 다음 달,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유후인 여행을 딸과 함께 갔다가 엄청 욕을 먹기도 했었다. 그분 보시기에 괘씸했었던 것이다. 가난한 주제에, 겨울에 입을 옷과 돈까지 지원을 받은 주제에 일본 여행을 가다니.... 아주 대놓고 나를 저격하셨었다. 그리고, 창피했다. 마치 가난한 집 아이 구제 장학금이나 쌀 줘 보내는데, 교단 앞에 나와서 다른 친구의 격려 박수 속에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구제해 준 사람이 막 나를 욕한다. 방학 때 끼니 채우라고 저소득 가정 자녀들에게 쿠폰을 줬더니만, 뭬야? 그걸로 돈까스를 먹어?
이 사건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가난과 상실을 우리는 어떻게 '즐기는지' 혹은 '향유하는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 뭐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없으면 말짱 황.
나는 아직도 아이에게 돈이 없을 때에는 솔직하게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안 한다. 가난을 숨기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를 키울 때 지키고 싶은, 그저 내가 정한 방침이다. 옳고 틀리고는 잘 모르겠지만, 내 아이들에게까지 불안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돈이 없으면 당신의 뇌에서는 불안 담당 구역이 또 뻘겋게 붓는다니까. 아직도 나의 가장 예민한 불안 버튼은 '돈'이다. 그리고, 가장 밀리고 싶지 않고, 지키고 싶은 약속도 '돈'이다.
오늘, 당신의 계좌는 괜찮은가요.
작년 8월에 쓴 글인데, 툭 튀어나와서 한 번 다듬어봤다. 기승전결이 있어야 좋은 글이라는데, 가난에는 '결'이 없다. 그저 안부만 쉬쉬 묻고 끝날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