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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이정숙 왕 손만두 찐빵

하얀 김 모락모락, 한국 만두란 이런 것이다!

by 황섬

아들이 고성 22사단에서 근무하는 터라 속초에 자주 오게 되었다. 바다가 있어서 그런가, 아들이 아닌 내가 이십 대부터 이곳은 참 나와 잘 맞는 곳이었다.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 근무했던 곳도 바로 고성 22사단이었던 터.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도 뚫리기 전, 한계령, 미시령을 빙글빙글 돌아 5시간 버스 타고 오던 곳이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아들도 강원도 고성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니 참 신기하다.

이리 속초에 왔으니, 내가 이 지역 만두를 살피지 않을 리 없다. 검색도 해보고, 속초가 고향인 친구에게도 물어봤다. 그들의 대답은 단연코 하나였다.


- 이정숙 만두집 가봐. 거긴 가봐야 해.



1968년 10월 24일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 쪽에 큰 해일을 맞았더랬다. 그쪽 지역 주민들은 모두 하루 아침에 '이재민'이 되어 버렸다. 정부가 이 큰 물난리에 대책을 세운 것이 이들을 모두 속초 해수욕장 남문 근처로 터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2달 만에 이들의 생활터는 지금의 '새마을'이 되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들 이 곳에 모여서 새 삶의 터를 일궜다고 한다. 그래서 '새마을'이라 이름지어졌을까.

'새마을' 하면 바로 초록색 크로바 잎파리와 박통이 생각나서 썩 기분은 좋지는 않지만, 여하튼 이들 속초 주민에게는 벌써 40년 넘게 함께 하는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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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 어렸을 때 집 대문 같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문에 '개조심' ㅋㅋㅋㅋ 개조심씨!! 개조심씨!!! 계십니까!!

70년 대에는 저녁 어스름해지면, '카시미론' 집에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아씨, 수사반장, 여로, 전우와 같은 내 기억에도 아스라한 드라마를 봤단다. 아마 카시미론 집이 동네 솜틀집 같은 데 그곳에 테레비가 있었나보다. 주인이 돈 깨나 버셨었나? 말하자면 동네 영화관 같은 곳이었겠다.

나 어려서도 친구들이 동네 골목길에서 놀다가 누구네 엄마가 "누구야!!!" 부르면 우르르 몰려가서 '요술공주 세리', '말괄량이 삐삐' 같은 프로를 보고 집으로 돌아 왔더랬다. 한참 재미나게 테레비를 보고 있는데, 부엌에서 카레 냄새가 나면, 그날은 완전 따봉! 조금만 그 집에 비비고 앉아 있으면 걔네 엄마가 카레 먹고 가라고 김 모락모락 나는 흰밥을 떠 주셨었지. 그게 얼마나 신이 나던지.


다시 속초로 돌아와서...

현재의 항아리 물회집서부터는 완전히 뻘밭에 논밭에다가 외옹치항까지 외길이 주욱 이어졌다고 한다. 어제도 이 물회집 옆을 지나갔지만 지금 '항아리 물회집'은 '청초수 물회집'과 더불어 속초의 핫 플레이스다. 대기줄이 어마어마하다.

마을 아이들은 어려서도 일을 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오징어도 손질하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구정물통을 수거해서 집으로 나르는 궂은 일도 마다않고 했다. 그때 오징어를 손질하던 소녀가 바로 오늘의 '이정숙 왕 손만두 찐빵'의 이정숙씨다.

새마을로 옮겨와서 정말 허허벌판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이 만두집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어느 기사에서 읽었다.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는 만두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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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화려하게 감싸고 있는 게첨물을 보라!!! 제빵 직종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자부심이 느껴지는 수상 내역들이다. 특히 제빵 기능 올림픽 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대표 유재희씨는 바로 이정숙 씨와 경찰로 근무하시는(지금 하시는지 모르겠다) 남편분의 따님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늘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자랐을 것이고, 서당개가 풍월을 읊듯 이런 실력자를 배출해냈을 터.

그래서 그런지 이 만두집 앞에 가면, 찐김 사이로 나는 호빵의 내음이 너무너무 좋다. 아주 잘 발효된 반죽에서만 나는 신선한 빵냄새! 요즘은 약을 먹고 있는 까닭도 있고, 이모저모로 밀가루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나 이집의 빵냄새를 맡으면 진짜 본능대로 한 입 딱 욱여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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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이정숙 씨는 만나지를 못했다! ㅋㅋㅋㅋ (자료를 제공해주신 여러 사이트와 지역 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이 집에 속초 올 때마다 세 번을 갔었는데, 아주 아주 호탕한 알바 분이 나를 늘 반겨주셨다. 손도 어찌나 빠르던지 오래 근무하신 내공이 느껴지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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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천 원짜리 만두와 찐빵은 말하자면 한손 가득 들어오는 크기의 그 왕만두와 왕찐빵이다. 각개 포장해서 주신다. 그리고, 왼쪽의 저 작은 만두는 한 판에 5천원이다. 저런 쇼케이스에서 꺼내서 쪄주신다. 왕만두나 왕찐빵은 내내 찌고 있는지라 바로 가져갈 수 있다.

저 모락모락 나는 흰김. 나는 시장통에서 나는 찐김이 한국만두를 대표하는 특징이라 여겨진다. 저 찜통의 김이 아니면 한국의 만두를 설명할 수 없어! 옆에서는 아저씨가 뻥이요! 하면 흰 김이 대포쏘는 소리를 내며 터지고 이내 뻥튀기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듯, 이 만두 찜통의 한김도 우리들에게 추억으로 남은 특유의 정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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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두가 잘 쪄져서 나왔다. 각기 다른 비닐에 싸주신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이 비닐 색깔은 왜, 뭐가 다른 거예요?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정말 빵 터져서 웃으신다.


-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거 나만 알아보려고. 편하라고. ㅋㅋㅋㅋ 아하하하하하!!! 김치만두는 뻘건 거, 고기만두는 파란 거, 그리고 찐빵은 노란 거... 이래 구별하려구요.


예전에 왔을 때, 봄에 이분께 혹시 간판에 있는 '이정숙'씨냐고 여쭤봤을 때 나는 아니라고 하셨었는데, 잠시 아주머니 대답 때문에 이분이 주인이신 줄 알았다. 여하튼 각설하고, 비닐 색깔은 김치, 고기, 찐빵 구분에 따라 다르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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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왕만두. 신선한 호빵 냄새는 절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밀가루 특유의 답답한 맛은 다 사라지고, 매콤한 만두소랑 아주 잘 어우러진다. 녹는다. 김치도 아주 아삭아삭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주 걸죽하게 찐한 매운맛인데, 역시 우리나라 만두답게 당면하고 파도 실컷 들어가 있다.

내 뒤에 계시던 노부부는 김치만두 10개, 고기만두 5개 이렇게 사가시던데, 진짜 둘이 한 자리에 앉아서 다 드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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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렇게 작은 김치만두. 8개가 한 판이다. 이 만두 또한 만두피가 예술이다. 역시 제빵 기능으로는 이정숙 만두만한 기술이 없다더니 만두피의 반죽, 발효까지 멋지게 해내신다. (글 쓰려고 만드는 말이 아니라, 진짜 맛있다. 믿어줘!) 저 윤기마저도, 참 눈도 즐겁게 만들어준다. 식감도 얼마나 아삭한지 저 안에 깍두기 들었나 보려고 샅샅이 뒤집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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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집에 와서 열어 본 고기만두의 자태. 워낙에 김치만두를 좋아하지만, 고기만두도 아주 담백했다. 식은 만두라서 게임에 임하기 꽤 불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속으로 '이거 데워야지, 데워야지'하면서 식은 채로 서서 다 먹었다는 사실.

중국식의 묵직한 맛이 아닌, 가벼우면서도 담담한 고기만두를 즐기시는 분들께는 이정숙 고기만두가 으뜸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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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의 만두 삼매경에 빠질 수 없는 친구들. 커피와 단무지.

매운 김치만두를 한입 먹고 난 다음 마시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는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만두에는 김치가 아니라 단연코 단무지. 저런 노란 단무지는 색소 들어갔다고 안 좋다고는 하는데, 뭐 어쩌랴 싶다. 저런 강렬한 노란색이 또 만두 먹는 맛을 돋운다. 하얀 단무지 또한 좋기는 매일반이지만, 만두도 하얀데 너무 다들 희멀건한 듯 한 느낌이 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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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집의 대표선수인 찐빵을 소개하면서 맺으려 한다.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찐빵안에는 국내산 팥소가 들어갔고, 옛날 엄마들이 쪄주던 술빵 같은 맛이다.

그리고, 내가 계속 사진을 차 안에서 찍은 이유는 바로 이 집은 '포장 전문'집이기 때문이다. 정말 사람들이 끊임없이 계속 온다. 아주머니 쉬실 틈도 없이...

아, 그리고, 한 번 온 김에 많이들 사가시는데, 만두국용 만두도 따로 파니 그것을 가져가시거나, 그냥 식은 만두도 가져가셔도 좋다. 식은 만두는 종이에 이렇게 싸서 바로 전자 레인지에 한 2분 돌려서 먹으면 다시 첫맛이 난다고 한다. 나는 너무 맛있어서 식은 채로 먹느라고 안 데워봤다. 그리고, 찐빵은 물을 조금 뿌려서 돌리라고 하셨나. 한 달도 전에 들었던 설명이라 정확치는 않지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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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정겨운 동네다. 이곳.

있다가 서울 집으로 돌아갈 때 만두집 가서 잔뜩 사가지고 가야겠다.

맛있는 만두 먹으러 다니면서 글도 쓰고, 낯선 골목도 누비고 다니는 것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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