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다보니 매번 가는 만두집이 죄다 서울 경기권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만두가 북쪽에서 내려온 음식이라 아무래도 이쪽에 많다는 것 정도.
그래도 아랫동네 만두집들이 너무너무 궁금한 것이다. 남쪽은 명절에 만두국 안 먹고, 떡국 먹는다는 이야기도 듣고, 만두로 그다지 유명한 맛집 없다는 풍문도 들었던 터라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3일 동안 가고 싶은 만두집을 찾아서 리스트를 짜고, 부산 지하철 노선도를 프린트해서 동선을 정리했다.
이거 작성하는데, 눈이 얼마나 침침하던지...
부산 지하철 노선도에다가 이것 저것 메모를 하는데, 눈이 얼마나 침침하던지... 요즘 들어서 노안이 더 심해졌다. 나이 들면서 하나 둘씩 뭔가 고장이 나기 시작은 한다지만, 딴 곳이 아니라 두 눈이 점점 기능이 덜어내는 것을 느끼니 아쉽고, 또 아쉽다. 결국 다리의 기능이 끝으로 가기 전에 맛있는 것 많이 먹으러 다니고, 시간 알토란같이 쓰며 재미나게 살 일이다.
2박 3일이 아주 긴 시간 같지만, 하루 세끼에 한정된 내 뱃고래는 하루에 두세 군데에서의 만두식사 밖에 허용하지 않는다.
많이 다녀봤자 5군데 갔다 오겠다는 계산으로 중국식 만두집은 제외, 호빵집도 제외 시켰다.
부산에 도착해서 제일 첫 방문지는 바로 '태산 손만두'!
선택의 접점에서 무조건 '느낌'으로 만사를 결정했던 나. 타 만두와 비교불가 막강 비주얼에 홀린 나머지 꼭 가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한 '태산 손만두'를 첫방으로 꼽을 수 밖에 없었다.
명장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가다보면 무슨 맨션이라고 쓰인 아파트가 나오는데, 거길 왼쪽으로 끼고 올라다가보면 이렇게 멀리서 '태산 손만두 칼국수'집이 나를 반긴다. 메뉴로만 보아도 전형적인 한국 만두집이다.
혹시 토요일에 안 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미리 전화를 해보고 온 참인데, 내가 아침 11시 첫 손님이다.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드는 첫 느낌. 와 깔끔하다. 잘 닦여서 반짝반짝한 깔끔함도 있지만, 주인장께서 정리의 달인이신가 보다. 모든 물건들이 다 제자리에 놓여 있고, 사방에서 '각잡았음'이 느껴진다. 이런 공간에 들어오면 나는 무척 편안함을 느낀다.
깔끔한 내부. 모든지 제자리, 나란히.
김치만두와 고기만두 찐만두로 각 1인분씩 주문을 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보니 내 눈을 사로잡는 양념통! 와. 이렇게 깨끗할 수가 없다. 하나도 끈적거림 없고, 고춧가루도 마치 좀 전에 새로 담아둔 것 같다. 우리집 양념통도 이렇게 말끔하지 않은데... 딱 보니 주인 아저씨께서 잠시도 쉬지 않고, 행주로 뭔가를 계속 닦고 다니신다. 그러니 이리 세세한 부분도 청결 관리가 되는 것이다. 어디 하나 먼지 한 톨도 없다. 대중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젓가락, 숟가락은 꼭 밥 뚜껑 위에 올려 놓거나 찝찝한 것 알면서도 냅킨 위에 올려 놓게 되는데, 이 만두집은 그냥 안심하고 테이블 위에 젓가락을 놓았다. 편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양념통! 경외심을 금할 수 없는지라 사진 사이즈도 풀로 키워버림!
만두집에 가면 이제는 눈치가 생겨서 이집은 주인장 이야기 들을 수 있겠다, 없겠다 계산이 나온다. 가장 좋은 경우는 자연스럽게 만두국도 먹고, 만두를 만드신 주인장이 나와 계셔서 그 순간을 포착한 후 만두에 대한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인데 사람 일이란 것이 그림처럼 이렇게 꿰어 맞춰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법은 사실 도 아니면 모다.
- 이번에 만두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어서요...
이 말로 운을 떼면, 자신의 만두 인생을 줄줄이 푸는 분도 계시는가 하면, 그냥 시큰둥, 혹은 어색해하거나 어떤 분들을 나를 경계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냥 돈 내고 만두 먹으러 온 사람인데, 궁금한 게 많아서 그러는데...
그래서 나도 컨디션 별로 일 때는 굳이 캐서 묻지 않고, 만두만 먹고 나오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오픈 때 가면 찬찬히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올 때도 있다.
주문을 받으면 미리 만들어두었던 찜기의 만두를 가져다가 한김 쪄서 내주신다. 역시 만두에는 간장, 식초 그리고 고춧가루 뻑뻑할 정도로 많이! 이 조합이 내 입맛에는 최적인 듯 하다. 그리고, 노란 단무지 또한 빼놓을 수 없지.
아저씨께서 만두를 들도 나오시는데, 와!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른 블로그에서 보고 느꼈던 그 느낌과 아주 똑같이 재현되어 화려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는 크기가 좀 작았지만, 만두, 진짜 아름답다.
얇은 피 만두를 더 좋아하는데, 이 만두집은 얇은 만두피의 정교함이란 정교함은 모두 보여주고 있다.
다른 때는 한 입 베어물거나, 숟가락으로 반 갈라서 사진 한 번 신경 써서 찍고 다시 한 개 다 먹으면서 시작하는데, 이 만두는 반 가르기 조차 할 여유 없이 빠르게 입속으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이다.
김치만두 안에도 고기가 많이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매콤한 김치만두의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 시뻘겋고, 걸죽한 부산 음식답지 않게 맛이 강하지 않다. 이것이 뜻밖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고기만두로 오면 그 육질이 제맛을 발휘한다. 만두피는 만두소에 녹아서 없어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어딜 가나 매운 김치 만두만 편애해 왔는데, 태산 만두집에서 그러한 나의 식생활의 편견이 깨지려고 한다. 고기만두 참 맛있다. 참 맛있어.
지금 만두들 뒤에 비치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너무 맛있어서 첫번 째 만두로 반가르기 작업을 하지 두세 개 정도 순삭 후 정신 차리고 찍은 사진이다. 만두소야 우리나라 만두답게, 고기에 부추, 양파 잔뜩 들어가 있다. 배도 부르지 않고, 속이 부담스럽지도 않을 것을 보면 재료도 참 좋은 것을 쓰는 듯 하다. 좋은 식재료는 입에서만 재미나게 놀고, 내 몸은 모르게 몰래 어디론가 흡수된다. 대표적인 고열량 음식인 만두를 먹으면서 이 가벼운 느낌을 느끼다니...
그런데, 아뿔사..... 내가 생각을 미처 못 한 것이 있었다. 나는 만두집 아저씨,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말을 건 것인데, 만두 맛을 심판하러 온 사람처럼 느끼실 수도 있겠다. 그냥 소박하고 친절한 아주머니의 마음으로 내어주신 음료수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또 괜한 소리 했나 하는 죄송한 마음에 '이거 한 병 드이소' 하는 아주머니 얼굴에서 부담이 보인다.
하루에 80인분, 즉 한 판에 12개라고 치고, 대략 960개에서 1000개의 만두를 빚어내는 태산 만두집 아저씨, 아주머니. 이 가게가 시작된 것은 17년 정도가 되었고, 전 주인이 전수해준 레서피로 이 분들이 운영하신 것은 5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만두집을 물려 받으신 아저씨, 아줌마에게 전 주인의 레서피는 진짜 보물이겠다 싶다. 그리고, 이를 오롯이 물려준 전 주인에게도 지금 분들은 귀인이다. 이렇게 단도리 잘 하고 깔끔하게 운영을 이어하셔서 '태산 손만두'라는 이름에 누는 커녕, 나처럼 팬을 양산하고 계시니 말이다.
정말 근사한 만두 경험은 남은 만두를 포장해가지고 오면서 마무리되었다. 좋은 만두랑 좋은 커피는 식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