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홍대 두리반

혼술의 전당, 끝까지 투쟁하여 지켜낼 만두

by 황섬

이 곳을 처음 들른 것은 한 7-8년 전이다. 밥집 혹은 막걸리집으로 찾았다. 첫 자리는 아주 긴장되고도 불편한 자리였기에 기억한다. 아주 잠시 잠깐 출판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작가님께서 신간을 내셨던 것. 대표님과 작가 선생님과 셋이 막걸리를 한 잔 하던 자리였다. 두 번째는 아마 점심 때 보쌈과 함께 밥을 들었던 것 같은데 누구와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낮술로 막걸리도 한 잔 했으려나.


두리반이 나의 뇌리에 딱 남게 된 것은 그 이후 세 번째 방문 때이다. 내게 두리반은 너무나 훌륭한 '만두집'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더 찾았을 때에는 그나마 과하지 않은 돈을 치르고 편하게 '혼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삼기로 했다.

아! '과하지 않은 돈'이라고 쓰긴 했지만, 마음이 몹시 켕긴다. 몇 년 전 시사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렇게 씌어있다.


두리반 사장 부부의 뇌리에는 밀가루 20㎏ 한 포대에 1만6000원 하던 때가 남아 있다. 지금은 2만6000원이다. 오른 물가에 맞추려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버는 보람이 있으려면, 좀 쉬려면 음식 값이 올라야 한다. 칼국수 한 그릇 이문이 맥주 한 병 파는 것보다 박한 세상이다. (시사인 2018. 12. 18.)


여하튼 '만두집' 두리반으로 출발해본다.


KakaoTalk_20200816_141458979.jpg


두리반이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제 2의 용산'으로 알려진, 바로 '두리반 철거 투쟁'을 통해 지켜진 그곳이다. 두리반은 처음에 홍대 입구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롯데 시네마 있는 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건이 터진다. 지금 이미 개통되어 잘도 다니고 있는 홍대 입구역 경의선역 공사로 건설사와 시공사는 2009년 두리반 측에 이사 비용 300만원을 줄테니 나가라고 했단다. 자, 여기가 홍대다. 가게를 내려면 녹록지 않은 땅이다. 두리반의 주인장 내외 유채원, 안종녀 씨도 이곳에 권리금만 1억 3천만 원을 들여 온 곳이었단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거의 2억이 넘는 돈을 두리반 오픈에 들였을 터인데 뭐라? 300?

200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결국 용역 업체에 의해서 쫓겨나버렸단다. 그때의 심정은 어땠을 지.

하루 지나 12월 26일. 남들이야 박싱데이니 뭐니 즐거움에 떠들 때 안종녀 씨가 용역 업체가 세운 펜스를 뚫고 들어 갔다고 한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며! 그렇게 두리반의 투쟁은 시작된 것이다.

같은 처지의 철거민, 그리고 문화예술가들의 연대 속에 그리고, 지난한 투쟁 끝에 결국 재개발 업체로부터 '상식적인 수준'의 보상을 받는 데에 성공했고, 2011년 12월 1일 다시 두리반을 열었다.

참 겨울과 연이 깊은 가게다.


KakaoTalk_20200606_175821041.jpg
KakaoTalk_20200606_175821041_01.jpg


두리반에 오면 홍대의 문화 소식이나, 대자본의 횡포에 대항한 투쟁 소식들을 흘끗흘끗 접할 수 있다. 밥집에 투쟁이란 단어가 떨어졌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이렇게 아늑한 불빛 속에서 어떻게 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중간중간 한쪽 벽에 빼곡하게 붙여진 포스트잇의 응원의 메시지들을 읽는 것도 재미다.

홀의 서빙을 맡고 있는 소설가 남편분은 그 편안함을 배가시켜 주신다. 요즘도 계속 소설을 쓰고 계신지 모르겠다. 두리반 영업 시간이 짧지 않아서 말이다. 오전 11시에 시작해서 밤 10시에 끝난다. 밥집이라 점심 장사를 포기할 수 없으시단다. 한 5-6시부터 자정 정도까지 음식의 단가를 올리고 영업을 한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앞 테이블에 앉은, 혼밥하러 온 젊은 사람들에게 밥상 내어주시는 모습을 보면 아, 천상 밥집이다. 밥집. 음식의 질 뿐 아니라 손님에게 한 끼 내어주시면서 밥을 대하는 모습이 정성을 넘어 공손하기까지 해서 한참을 보고 있던 기억이 난다.


혼자 갔으니 무얼 먹을까. 이렇게 나홀로 만두 기행은 자유롭고, 메뉴 고르는 데에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주 큰 장점이지만 문제는 전골과 같은 2인 차림은 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 먹고 싶어서, 혹은 그것밖에 마땅히 시킬 것이 없어서 '그냥 전골 주시고, 남는 것은 싸갈게요.' 해도 극구 말리는 집이 있다. 아무래도 맛의 관리가 안 되기 때문일 터다.


두리반에는 혼자 가서 술 한 잔 해도 좋을 메뉴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냉면에 보쌈 4조각 세트도 마음 뿌듯하고, 만두 또한 워낙 큰 왕만두인지라 한 판 다 시키지 않아도 부담스럽지 않게 맛 볼 수 있도록 1/2 판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KakaoTalk_20200816_141458979_01.jpg


두리반의 시그니쳐는 보쌈, 칼국수 그리고 만두라고 한다. 주인 아저씨께서 아주 자랑스럽게 말씀해주신다. 그러나, 이 날은 유기농 야채 비빔밥과 만두 반판을 시켜보았다. 술을 한 잔 하고 싶었는데, 소주에 만두와 야채라면 이거, 근사하지!!!


내가 혼술을 좋아하게 된 연유가 있다. 술이야 원체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2014년도에 우리 아들, 만두 녀석이 태어났는데, 아니 이 녀석은 다른 내 자식들과는 달리 너무너무 키우기 힘든 것이다. 낯도 너무 가리고, 예민하고, 다른 아기들에 비해 들어 안기도 무거웠다.

사실 다른 이들과 술약속을 잡으려면 이렇게 아이 있는 집은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가야 한다. 사실 그 전에는 애 키우는 엄마라는 생각을 다들 잊을 정도로 애들 어디다가 잘도 맡기고 나갔다가 바람처럼 집으로 들어오던 자였다. 그러나, 이 만두녀석이 태어나면서 상황은 급변. 엄마나 아빠,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 정도를 제외하고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바람에 외부 술자리의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아이가 밤에 잠은 끔찍히도 안 잤다. 늘 각성이 되어 있는 상태여서 자정이 넘어서도 신나는 놀이시간이 이어지고... 그러다보니 저녁 시간은 술의 힘이 필요했다. 알콜성 타임랩스. 아이를 돌보려면 알콜의 힘이 필요했고, 결국 그것이 우리집을 '혼술의 전당'으로 만들어버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특히 아이 세 살 무렵은 정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지옥의 나날들이었다. 나중에서야 자폐의 특성을 지닌 아이들이 그리 수면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긴 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잠을 재울 방도를 찾아내기도 했고...

그 세월을 거치면서 남은 것은 나의 혼술 지향적 생활방식과 '언제 어디서도 외롭지 않아' 증상. 혼자 술 마시는 것이 훨씬 편하다. 외부 약속도 꼭 만나고 싶은 이들 아니면 잘 잡지도 않는다. 아이 봐줄 사람을 굳이 매번 찾기도 어렵고... 그래서 가끔 이렇게 훌쩍 나와서 밖에서 고급지게(?) 수행하는, 나만의 종교적 의식과도 같은 혼술의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KakaoTalk_20200606_175821041_04.jpg
KakaoTalk_20200606_175821041_02.jpg
KakaoTalk_20200606_175821041_03.jpg
혼술의 전당


먼저 기본 찬 세 가지가 나왔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안주가 되어준다. 김치도, 나물도 모두 두리반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거란다. 김치 맛있는 집이라면 다른 음식 안 봐도 대략 솜씨를 가늠할 수 있는데, 두리반 밑찬들은 조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깔끔하면서도 또 '너무 과하게 맛있어서' 주연의 무대를 해치지 않는 그런 겸손한 맛 말이다.

비빔밥 등장. 밥그릇 안에 밥이 담겨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따로 주시니 밥양을 조절할 수 있다. 비빔밥에 계란 후라이 없으면 섭섭지. 집에서도 분명히 계란 후라이 실컷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데도, 이리 밖에 나와서 한 장 얹어 주시면 그게 그렇게 신나고, 고맙다. 500원 받고 판다고 해도 천 원 주고 두 장 사먹을 정도다.




이날의 주인공 만두. 처음에는 굴림만두인줄 알았다. 피가 너무 얇아서 말이다. 굴림만두는 따로 피를 반죽하고 늘려서 싸듯이 만드는 형태의 만두가 아니고, 만두소를 둥글둥글하게 빚고 밀가루에 굴려서 삶아 만든다. 그래서 굴림만두라고 한다. 칼국수를 내시니 면과 만두는 한 동아리인지라 만두도 직접 빚으시는 건데, 그 수고가 보통이 아닐 듯 하다. 만두만 전문으로 해서 하루종일 만두만 빚어 손님들에게 내는 것도 소 담당, 피 담당 나누어서 만드는 집도 많은데, 조리법이 확연히 다른 다른 메뉴들도 함께 꾸리면서 만두를 찌는 것은 쉽지 않다.


KakaoTalk_20200606_175821041_06.jpg
만두.jpg


한 입 베어물면 한눈에도 들어오는 가득한 부추의 식감이 특이하다. 안에 양파가 들은 것인지 단맛까지 풍미를 더한다. 지금 내 사진이 형편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떻게 이렇게 피를 얇게 할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워낙에 음식 솜씨가 좋았던 부엌의 대표께서 어떻게 하면 만두를 좀 더 맛있게 빚을까 궁리하다가 종로 일대를 다니면서 만두 빚는 법을 배워 가지고 오셨고, 결국은 이렇게 소를 넉넉히 두고 피를 한 번, 두 번, 세 번 감아 마는 중식 만두 빚는 방식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나중에 만두 공부 하러 갔을 때, 마침 두리반을 취재하셨던 음식문헌학자 고영 선생님의 자료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KakaoTalk_20200813_120828820.jpg


가히 만두의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안종녀씨의 만두는 음식에 대한 기나긴 탐구 정신의 결과물이다.


- 이 자리 들어오기 전부터, 15년 전 동교동 때부터 만두 했죠. 점심 장사를 마치고 이제 오후 장사하려고 만두를 빚었는데, 용역 깡패들이 그냐앙 들이 닥쳐서 그 생만두를 하얀 눈바닥에 패대기쳤어요. 하얀 눈 내린 그 바닥에 하얀 만두가 그냥 쏟아져 있는데... 참. 이게, 이 만두가 그 슬픔이 어린 만두예요.


홀에서 손님을 맞이하시던 유채원 님의 느릿느릿한 말씀이다. 평소 조용조용하시던 주인 아저씨께서 슬픔이 어린 만두 이야기를 하실 때에는 목소리가 조금은 높아진다.


KakaoTalk_20200606_175821041_07.jpg
KakaoTalk_20200816_141458979.jpg


이 만두 두 덩이, 지금도 당장 달려가서 먹고 싶다. 얇은피 만두 편을 왕창 들고 있는 내 식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 호젓이 혼술을 하고 싶어서 말이다. 하얀 대낮에... 이곳 저곳에 혼술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를 심어 놓는 것은 아주 흐뭇한 일이다.


KakaoTalk_20200818_130546608_01.jpg
KakaoTalk_20200818_130546608.jpg


이 사진은 그 한두 달 전 좋은 분들과 함께 했던 두리반의 모습이다. 만두 전골에다가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인 보쌈을 함께 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쌈고기의 자태는 찾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두리반으로 가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그리고 그때그때 지져내는 전들도 겉바속촉, 장인의 기술이 그대로 발현되니 누려보시기 바란다.


그러나, 그 누가 뭐라 해도 두리반은 내게 '만두집'이다. 혼술의 전당, 나의 만두집.


홍대 입구역 3번 출구에서 나와서 주욱 내려오다가 메리골드 호텔 보이면 우회전, 그리고 첫번째 만나는 골목길에서 좌회전해서 가다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두리반을 만날 수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