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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동 개성 김치 손만두

걱정 한아름일 때 개운한 김치만두국 한 그릇

by 황섬

그날은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내가 하는 걱정들의 아이템은 한정되어 있으니 아마도 거기서 거기였을 것이다.

돈 걱정 아니면 일 때문에 애들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해결책 찾기, 내집 마련 걱정, 철딱서니 없는 시댁 식구들 처리 등등... 남들도 다 하는 고만고만한 걱정들이다. 워낙 내 성격이 해결을 웬만큼 짓지 않으면 밥이 입으로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예민한 편인데, 이날은 어쩌자고 걱정을 한아름 안은 상태로 만두국집을 찾았다.

고덕동에 있는 개성 김치 손만두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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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봄날씨가 한창일 5월. 밭에 김매러 며느리 내보낸다던 바로 그 봄볕을 맞으며 일착으로 도착했다. 오전 10시에 영업을 시작하는데, 어지간히 아침에 부지런을 떤 모양이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컴퓨터 폴더 속에 이 개성김치 만두집 사진들이 한 3개월은 잠들어 있었다. 아, 이집 맛있었는데 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이날의 사진을 살펴보는데...마음이 무거운 채로 찾아간 것은 기억이 나는데,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까맣게 잊었다. 신기하다. 분명히 그 일이 해결이 됐거나,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아도 되는 상태로 진전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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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른 시간에 만두국을 주시려나 하고 머쓱한 상태로 들어간 가게. 역시나 사진의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 넘어 있다. 방금 청소를 마쳤는지 대형 청소기가 밖에 나와있다. 다른 곳도 아주 깔끔했다. 양념통이나 테이블도 끈적이지 않게 아주 청소가 잘 되어 있다.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된 곳을 오면 일단 마음이 놓인다.

주방에서 어머님, 아버님께서 만두를 만들고 계시고, 홀에서는 따님이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주신다. 백종원이 음식점은 음식만 맛있게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좋은 기운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어떤 우울한 기운이 지구 내핵까지 뚫어버릴 듯한 아주머니에게 얘기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세 가족이 어찌나 즐겁고, 활기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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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딱 4가지. 떡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김치만두 한 가지만을 빚어 내신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가격! 이 동네 고덕동 주택가에서 25년 넘게 장사를 하셨다고 하는데, 맨 처음 열었을 때의 가격이 이 정도 되지 않았을까?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올린 적이 없음직한 착한 가격에 또 한 번 놀라고.

이런 것을 가성비가 좋다고 표현을 하는데, 예전에 친한 지인과 술을 마시며 가성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도대체 가성비는 누가 만들었는지. 만든 음식을 사먹는 손님들이야 가성비 따질 수는 있다. 적은 비용을 들이고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야 말로 기분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손님들의 입맛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다르다. 거기에 일일이 다 맞출 수는 없다. 하지만 가성비 얘기는 외식업자가 먼저 꺼낼 얘기는 아니다. '맛있다, 맛없다' 부터 얘기를 꺼내야 그게 진짜 음식 장사하는 사람의 마인드 아니겠냐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여하튼 5000원이라는 서울 바닥에서 보기 힘든 가격을 걸고 어떤 음식이 나올지 궁금했다. 익히 이 집 만두의 내실은 여기저기에서 듣고 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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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국을 시켰다. 잡뼈로 고아낸 사골국물 베이스의 만두국. 간이 아주 딱 알맞게 배어서 나온다. 따로 소금 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고명으로는 김 조각, 한술 뜨면 웬만해서는 몽글몽글하기 어려운 알줄 풀은 계란이 나온다. (이 계란 알줄 치는 것이 예상 외로 꽤 고난이도의 스킬이라는 것은 집에서 감자국이나 계란국 끓여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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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온지 3개월이나 지난 집인데도 와, 이날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만두를 한 입 베어물면 고기맛보다는 신선한 두부맛이 압도적이다. 예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었는데 이북식 만두의 맛은 뭐니뭐니 해도 두부에서 판가름난다. 두부가 관리가 안 되거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쓰게되면 살짝 상한 맛, 쉰 맛 같은 것이 나서 먹기 어렵다. 고기랑 당면 혹은 부추 등으로 승부를 보는 다른 만두랑 이북식 만두의 이것이 틀린 점이다.

어려서는 밀가루든 쌀가루든 뭐든지 위장아 컴온!! 다 쓸어넣고 먹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소주를 장복해서 그런지 가끔 만두 먹을 때 신물이 넘어올 때가 있다. 만두피 때문이다. 그런데 이집 개성만두집 만두는 정말 속이 편했다. 이것은 이집의 최고 장점!

옆 테이블에 나이가 지긋하신 여사님들 세 분이 만두국을 정겹게 드시는데, 두분은 동네분들이고 한 분은 타지에서 건너오신 듯 하다. 이곳에 살다가 이사가신 분인데, 이사가기 전날까지 이 집 만두 생각나서 와서 드셨다고 할 정도로 이 동네의 소울푸드 담당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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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만두집이니 김치가 맛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 '당연함'은 이미 정복된 듯. 일주일에 30포기 정도 손수 김치를 담그시는데, 더운 날 배추 비쌀 때는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김치만두집이 김치 안 담그면 어쩌냐신다. 맞네. 또 날 더워지면 만두도 조금 덜 찾기도 해서 괜찮다신다. 이북식 만두집은 이렇게 곁찬으로 김치를 많이들 주신다. 왜 단무지는 안 주시는 걸까. 만두 하면 단무지인데 말이다. 단무지야 힘을 내.

만두국을 신나게 먹으면서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신선한 두부맛.
두부를 쪼개도 국물에 안 풀어짐.
김치가 새큼하게 아주 잘 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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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만두국은 만두를 반으로 가르면 만두소가 밖으로 튀어나와 하얀 국물을 빨갛게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맛도 나름대로 맛있다. 일부러 하얀 국물에다가 김치 적셔서 빨갛게 해서 맛있게 먹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데 신기하게 개성 김치만두집의 만두국은 끝까지 하얀 국물로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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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맛있게 한 그릇 싹 비웠다. 만두 정말 맛있었다. 김치까지 한 번 더 달라고 해서 다 먹어버렸다.

도대체 이날 내가 했던 걱정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기억해보려 하고 다이어리를 뒤져도 이날 새벽 무거운 걱정의 무게에 짓눌려서 잠을 깨고 찬물을 마시게 했던 그 고민이라는 괴물 녀석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두맛은 이렇게 생생하게 생각이 나서 글을 쓰면서 군침을 흘리고 있으니... 지금 천둥 번개만 치지 않는다면 당장 고덕동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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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도 하나 기억 난다. 만두국을 먹으면서 사진을 여러방을 찍어대는데, 이날은 딱 내 마음결에 걸린 것이 바로 이 두 녀석이다. 국물에 풀어진 계란과 김 고명. 얘네들은 만두국의 조연들이다. 김 싫어서 안 먹는 사람들도 만두국을 시켰으면 만두는 먹는다. 국물에 계란 풀어져 있는 것 싫어하는 사람도 봤다.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이지만... )

조연이 된다는 것. 인생의 단역이라는 것. 서러울테지. 아니 서럽다. 그렇지만, 너무나 상대적인 배역인지라 어떤 사람의 인생의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단역, 초초단역, 혹은 무대에도 올라간 적도 없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무대에서는 나 따위는 뭐.... 하고 입다물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그 무대의 주인공이었다는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다. 뭐니뭐니 해도 내 삶의 무대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 잘 대접하고 아껴줘야 할텐데 말이다. 최고의 여배우들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 붙어서 대접 받는 것처럼 말이다.

아, 만두국 한 그릇 먹으면서 생각이 너무 나갔다.



걱정.jpg 얘는 왜 돈걱정은 안하지? 돈은 잘 있으니까. 내 걱정이나 하면 돼.


만두국을 먹고 나오는 길, 잠시 잠깐 만두 삼매경에 빠져 신선이 된 듯 했다가 현실로 되돌아갈 생각에 한숨이 나왔었다. 차안은 봄볕에 제대로 달궈져서 아주 오븐같이 되어버렸고. 한숨은 분명히 쉬었는데, 연유가 생각이 나지 않으니 신기할 뿐.

행복에 겨웠다, 지금. 앞으로 또 다른 새로운 걱정들이 나를 기다리고는 있겠지만...


일요일은 휴무.
아침 10시 부터 7시. (재료 소진되면 문 닫는다고 해요)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635-3 (차 몰고 가서 대중교통 잘 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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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만두국, 찐만두 같은 것들만 소개해서 재미없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에는 군만두나 왕만두 쪽도 소개해보겠습니다. '한 번 가보고 싶은데, 검증이 안 되어 못 갔다' 하는 곳이 있으면 댓글로 소개해주세요.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서울 이외 지역도 모두 오케이!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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