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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골역 미도락 칼국수 왕만두

우리 동네 숨은 보석 같은 만두집

by 황섬

내 아무리 만두를 먹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해도, 그라운드 위의 박지성 같이 전국 만두집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만두가 본디 북쪽에서 내려온 음식인지라 내가 사는 서울, 경기 지역에 만두집들이 밀도 높게 포진해 있다는 점이랄까.

코로나 여파가 여전히 지속되고는 있지만, 계절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미치도록 아름다운 날씨를 선사해주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주말이 되면 구리쪽으로 해서 가평, 양평 가는 길은 물론, 서울을 관통하는 길도 꽉꽉 들어찬다. 남양주 쪽에 맛있는 만두국집이 있다고 해서 가볼까 하다가 포기, 그렇다면 개성만두로 유명한 집이 있는 인사동 쪽으로 가볼까 하다가 포기. 모두 네비 지도 상에 보여지는 빨간 길을 도저히 뚫고 갈 자신이 없었다.

토요일 오전, 세차를 맡기고는 맛있는 만두가 먹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 두리번거리던 중...

아! 내가 왜 여길 생각 못했지? 하고 머리에 번개가 내리친다.



바로바로 우리 동네 칼국수, 왕만두집 '미도락'이다.

이 골목이 묵1동 주민센터가 자리한 곳이어서 매번 드나들면서도, 이 집의 이름도 몰랐고, 올 생각도 못해봤던 것이 신기할 정도다.



들어와서 자리에 앉으려고 신발을 벗다보니 아, 이 집이 그집이구나 하고 이제야 기억이 난다. 한 5년 전 만두 녀석이 많이 아파서 입원했을 때였다. 병원 침대에서 잠 자고, 아침이 되어 잠깐 집에 들리려 왔던 일요일.

병원밥은 영 맛이 없고, 뭔가 좀 입맛 돋굴 것이 없나 싶어 급히 김밥을 사고 나서 휘휘 둘러보다가 이 집에서 왕만두를 샀더랬다.

아, 생생하다. 5년이 이리 겁이 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그때 내가 한 손으로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링거병을 들고 주사를 맞히러 가던 아기는 지금은 40킬로에 육박하는 커다란 쟈이언트 유치원생이 되었다.




이 아이를 보고 도저히 '만두'라는 별명을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하도 정신이 없어서인지 그때 먹었던 왕만두 맛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만두국을 시켜보았다. 왕만두는 포장해갈 요량으로...

미도락의 큰 특징은 '직접 만든'이라는 말이 강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부심이 느껴진다. 냉면도 직접 만들었다고 하고, 만두도 당연히 아주머니께서 직접 빚으신거란다. 아저씨도 설마 함께 하셨을 것이라 믿는다. 실제로 날이 더워 이제 슬슬 콩국수 주문이 많이 들어오던데, 받자마자 아저씨께서 테이블에서 천천히 일어나 냉장고에서 불린 콩을 꺼내서 믹서기에 위이이잉~~ 갈기 시작하셨다.


아저씨의 탐구생활



그런데, 참 재미난 것이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계속 덜그럭덜그럭 분주하신 반면에 아저씨는 차분하게 앉아 뭔가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계셨다. 물론 워낙에 내게 손님을 끄는 에너지가 있어서 내가 들어가 앉는 가게는 얼마 안 있어서 제법 차게 되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님이 계속 한둘 씩 드는 바람에 일어나시기 전까지 아저씨가 보시던 것은 바로 지도책!! 이곳이 배달이 되는 음식점이 아닌데도 벽에 저리 커다란 동네 지도가 붙어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저렇게 열심히 손으로 짚어보면서까지 지도책을 보는아저씨의 취미도 재미있다. 네비나 구글 지도로 간단한 터치 하나면 길 다 찾을 수 있는 요즘에 지도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니!





칼국수집답게 김치는 알아서 먹을만큼 떠서 잘라야 한다. 배추김치 맛은 내가 상상하던 마늘 폭탄에 고춧가루 범벅인 달달한 명동 칼국수식 김치는 아니었다.




드디어 만두국이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딱 봐도 진한 사골국에 만두 열 알이 들어 있다. 만두국용 만두는 크기도, 모양도 왕만두랑 다르다. 개성식 만두국집은 찐만두나 국만두가 같은 만두를 쓰는 집들이 많은데, 미도락은 따로 빚어냈다. 이렇게 6천원 받으셔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골 맛도 좋다. 살짝 쿰쿰한 것이 직접 고아냈다고 한다. 딱 시골집 맛이라서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 만두집이 부담없이 푸근한 이유는 주머니 사정 신경안 쓰고, 이리 대접받듯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특히 만두 안에 들어가 있는 부추가 살짝 억센듯 느껴졌지만 오히려 식감이 강해 그것이 더 좋았던 듯 했다.

백종원은 '한국 만두'와 다른 나라 만두를 구분할 때 특징은 당면이라고 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것 웬만한 것은 다 때려 넣어서 돼지고기랑, 아님 신김치 있으면 씻어서 탁탁탁 채썰어서 같이 반죽하면 그게 딱 우리식 만두라고 하면서 "쉽쥬"를 연발하는데, 무척 공감했다.

보통 칼국수집에서 만두 메뉴를 함께 내놓는데, 물론 국물 요리와 구색이 맞아서도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반죽'이다. 반죽은 세계 요리사에 있어 놀라운 발견이다. 밀을 가루 내어서 물을 넣어 치대니 글루텐이 형성이 되면서 쫄깃쫄깃하게 뭉친다. 그것을 넓게 잡아 늘여서 선형으로 만들고 물에 삶아 먹는 것이 국수, 뜯어서 물에 퐁당퐁당 집어 넣은 것이 수제비, 그리고 이렇게 동그란 보자기 같이 피를 만들어서 소를 감싸서 먹는 것이 만두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쉽쥬?"를 반복하는 백종원도 웬만하면 집에서 만두 만들 때 만두피는 사서 하라고 한다. 제대로 만들어보겠다고 밀가루 치대서 만두피 만들다간 다시는 집에서 안 해먹게 된다고. 갑자기 2020년 1월 1일에 내가 했던 빙구짓이 떠오른다. 아침 9시 30분에 만들기 시작해서 밤 9시 뉴스 할 때까지 계속 일했다. 얼마나 힘들던지 중간에 낮잠도 한 번 자고...


이때까지만 해도 만두의 꼴을 갖추고는 있다.


집에 가져가려고 주문한 왕만두는 나오자마자 찍었어야 했다. 받자마자 아주머니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포토타임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버려놨다.



게다가 찐만두 자체의 열기 때문에 집으로 가지고 오는 동안 만두피 안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또 익어버린다. 그래서 아까 만두국을 먹었을 때 접했던 만두소의 신선한 색감이 사라져서 안타깝다.

아주머니는 내가 핸드폰을 들이밀면서 자꾸 사진 찍고 그러시는 것이 못내 불편하신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의 손님층은 모두 60대 이상. 지금 이곳에서 만두집을 운영하신지는 15년 정도 되셨다고 한다.

내가 자리 잡고 앉으니 바로 할아버지 세 분이 들어와서 아주 능숙하게 "여 칼국수 셋!"을 외치신다. 칼국수가 나온다고 해도 이분들이 핸드폰을 들이대며 칼국수를 이쁘게 찍을 리 없다.


- 저 누구야, 이상훈이 있잖아.

- 어. 왜, 뭔 일 있어? 풍 한 번 맞고 힘들었잖어.

- 아니아니, 뭔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이상훈이는 말야, 이렇게 속에다가 극약을 가지고 다녀요. 명대로 끝까지 사는 것도 못 볼 꼴인거라.

- 죽는 것도 힘들어. 맘대로 못 죽어. 그랬다면 난 버얼써 뒤졌지.

- 글치. 그래서 극약은 가지고 다니면서도 그렇게 그걸 못 먹고 못 죽는 거야.

- 사람이 건강해야 살맛 나지, 나처럼 다쳐서 장애인이 되면 그게 또 죽을 맛이예요.


칼국수가 나왔다. 명대로 끝까지 살고 싶지 않으신, 삶이 죽을 맛이라 괴로우신 할아버지 세 분은 더이상 아무 말 없이 칼국수를 맛있게 드신다. 일부러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쩝쩝 소리가 참 맛있게 들린다.


이 집에서 만두를 맛있게 먹고 돌아온 뒤, 여운이 남아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역시나 블로그나 다른 맛집 사이트에도 리뷰가 없다. 주요 고객층의 연령대가 너무 높은 탓일 터이다.

그러다가 인터넷 저 한 구석에서 딱 한 군데 이 집에 대한 리뷰를 발견했다. 2014년도 리뷰다.


묵동삼거리에서 태릉중학교 올라가는 길에 있는 미도락 칼국수(묵동 173-46)

같은 자리에서 20년 넘게 책방 하시던 아저씨가 책방 그만두고 연 집입니다. 하지만 아주머니 음식 솜씨가 좋으신지 책방 하던 집이라고 상상 못할 정도의 맛입니다. 칼국수 왕만두 쭈꾸미볶음 모두 맛있고 가격도 칼국수 왕만두 5000원으로 저렴합니다.

특히 추천하는 것은 왕만두인데 저도 전국 곳곳 다니면서 어지간한 맛집은 다 다녀봤다고 생각하지만

이 집 만두 맛 따라가는 곳 얼마 못봤습니다. 피도 엄청 얇고 속이 꽉 차서 정말 맛있어요.



내게 행운이 따르는 하루였다.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만두집을 발견해냈으니 말이다.

책방을 접고, 부랴부랴 만두를 배워서 이 집을 문 열었을 시절, 부부의 모습이 상상된다.

아, 도저히 안 되겠다. 이 글 올리고,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 왕만두가 먹고 싶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여기에도 '직접 만들어'란 구절이...


으악. 일요일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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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다시 갔다.

왕만두 본좌의 자태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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