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만두먹기는 너무 외로워!
워낙 이런 저런 만두집을 많이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되도록 빠짐없이 기록을 해두려 하지만, 이렇게 밀리고 또 밀린다. 한해가 다르게 기억력이 가난해짐을 느끼면서... 아쉬운대로 또 떠올려봐야 하겠다.
송파나 강남쪽으로 나가는 길은 때로는 구리를 거쳐 갈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박완서 선생이 생전에 기거하셨던 동네를 지나서 워커힐 호텔을 만나게 되는데, 어라? 가다가 무슨 큰 만두집이 하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주저않고 그 집을 들렀다.
바로 이 집, 구리에 있는 묘향만두이다. '김영숙' 씨는 워낙 1층짜리 조그만 만두집으로 시작하셨고, 이 건물은 2016년에 커다랗고 넉넉한 건물로 준공되었다. 지금은 너얿~은 주차장에 한꺼번에 100명의 손님도 받을 수 있을만한 공간이다. 바로 앞에 한강이 보이는 아차산 자락이다. 알고 보니 백종원의 3대천왕에도 나왔다고 하는데, 그때는 만두가 아닌 오이지국수라는 이 집 특유의 냉국수가 메인으로 소개가 된 모양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커다란 메뉴판이다. 손만두국과 찐만두가 가격이 같은 것이 특이하다. 나 또한 오이소박이 국수가 눈에 띄어서 찐만두랑 함께 먹어볼까 마음이 흔들렸다가, 지난 번 남양주에 있는 어랑 손만두국집에서 만두 뚝배기를 맛보지 못한 아쉬움이 생각나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 이집 국수는 나중에 와서 맛보자.
아, 그런데 2층으로 올라와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쿵 내려앉았으니... 갑자기 머릿속 필름이 뒤로 뒤로 되돌아간다. 나 이집에서 예전에 국수를 먹은 적이 있다.
한 3년 전, 우리 아들 만두랑 함께 1박 2일 여행을 떠나던 길이었다. 그때는 아이가 어리고, 또 사내아이인지라 산만하기 짝이 없고, 다루기 어려운 악동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날도 나 혼자 이 아이랑 1박 여행을 무사히 잘 갔다올 수 있을까 잔뜩 긴장하던 차였다. 그러나 그때는 나도, 아이도 운동선수가 근육을 단련시키듯 서로 극기(?)를 통해 단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라 1차 관문으로 '얌전히 밥 먹기' 코스를 택한 것이다. 음식점에 들어갔으면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먹는거야. 봐바. 다른 사람들도 다들 자리에 앉아서 먹고 있지? 신신당부를 하고 들어간 집이 바로 이 집이었다. 자리를 잡고, 오이소박이 국수와 만두국 그리고 국에 밥 말아서 아이 주려고 공기밥까지 함께 시켰던 기억이 난다. 지금 사진에서 아주머니가 바삐 지나가는 곳, 저 옆 테이블에 앉았다.
결론은 뻔한 것 아닌가. 아이는 결국 이 과하게 넓고 밝은, 생소한 공간을 견디지 못하고 악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 홀 바닥에 누웠다. 음식은 이미 나와서 김은 식어가고, 자빠져 있는 아이를 힘으로 끌어서 다시 앉히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엄마. 그냥 여기서 끝 내고 나갔으면 어쩌면 이 곳을 영영 잊었을 수도 있을 듯 하다.
힐끗힐끗 이쪽을 쳐다보는 손님들의 눈길을 느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그 한 달 전쯤, 아이 자폐성, 발달장애 검사를 아주 세밀하게 했다. 어느 순간 아이의 언어 발달이 멈췄고, 나는 원인을 제발 알고 싶었다. 마음이 급해서 우리 아이 결과 어떠냐고 물었는데, 병원은 그저 건조하게 오셔서 접수하시고 담당 선생님께 상담하시라고만 한다. 전화를 끊고나서 보니 검사 결과는 뭐... 지금 묘향만두 가게 바닥에 누워 있는 우리 아들이 잘 보여주고 있지.
먼저 기본 찬이 나온다. 열무 물김치의 열무가 참 달고 맛있다. 석박지는 조금 물렀지만, 그냥저냥하다. 아마 다른 테이블의 석박지는 아삭했을 수도 있다.
나는 아까 마음 먹은대로 묘향 뚝배기에 찐만두를 하나 시켰다. 조금 많은 양이지만 남으면 포장해서 갈 요량이었다. 뚝배기 만두는 순두부 찌개와 같은 양념인데 만두를 넣어 사정없이 으깨어서 내놓는 음식이다. 음식의 모양과 냄새로만 봐도 익히 예측되는 맛이지만,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먹어보기로했다.
너무나 세차게 부글부글 끓인 나머지 뚝배기 옆으로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묻기는 했지만 딱 보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개밥과 같은' 섞어찌개의 모습이다. 얼마 전 박찬일 셰프님의 짧은 강의를 하나 유튜브로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참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건졌다.
전 세계 어느나라도 이렇게 음식을 뜨겁게 만들어서 서빙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서양의 수프 정도?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수프를 내올 때, 우리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뚝배기 집개로 집어 내는 것까지는 아니다. 충분히 손으로 그릇을 들어서 식탁 위에 낼 수 있을 정도의 온도이다. 찌개나 국을 먹다가도 미지근해지면 '에이~ 이거 맛없어졌다'며 한 번만 더 끓여 주실 수 있냐고 부탁도 한다. 국물 떠 먹다가 입천장 한 번도 안 까져본 대한민국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아예 식탁에 불을 놓고 식사하는 내내 끓여 먹기까지 한다. 전골이나 찌개가 바로 그 예이다. 내 생각에도 우리나라 부루스타는 정말 최고의 발명품이라 여겨진다. 이토록 화끈한 민족에게 선사한 화끈한 발명품!
이날도 역시 나는 입천장을 데어가면서 호호 불어 맛있게 먹었다. 물론 만두 본연의 맛보다는 빠알간 국물에 이런 채소와 두부 등의 조연들과의 조화를 느끼면서 뚝딱 한 뚝배기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드디어 만두 등판! 만두의 참맛을 보려면 군만두도, 물만두도 아닌 찐만두로 진검승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거하게 만두 뚝배기를 먹으면서도, 하얗게 쪄낸 찐만두를 또 주문하는 연유다.
묘향만두집의 만두는 커다란 왕만두를 빚어 한 번 허리를 꺾어 접어서 만들기 때문에 가운데에 구멍이 생긴다.
백종원씨는 그 구멍에다가 간장을 쪼로로 따라서 먹었지만 나는 그냥 푹 찍어 먹었다. 이집 간장도 별미이다. 이렇게 파넣고,마늘 넣고,고춧가루 넣고 만들어져 나오는 주인장표 간장이 없는 집이라면 나는 간장과 식초 거의 1:1에다가 고춧가루를 뻑뻑하게 많이 넣어서 찍어먹는다. 아! 예전에 평양만두 만드는 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의 비법 또한 잊을 수 없다. 이렇게 두부와 숙주, 고기로 투박하게 빚은 평양식 만두를 먹을 때 꼭 한 번 시도해보시기 바란다. 바로 식초에다가 다진 마늘만 넣고 찍어 먹는 것. 간장 필요없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입에 군침이 돈다.
개성만두는 본디 호박, 양파 등의 야채들을 넣어서 깔끔한 뒷맛을 남기고 생김도 평양만두보다는 더 작고 올망졸망하다고는 하는데, 사실 큰 차이는 없어졌다. 북에서 내려온지 벌써 70년이 넘어가는 만두들의 정체성이 뒤섞인 것도 그렇고, 지역색을 강하게 띄는 집만두가 아닌 이렇게 '만두가게'에서 만들어서 손님들의 입맛에 맞춰 내는 세월이 오래되었기에 현지화된 것도 이유일 터이다.
간혹 듣는 질문이 있다. 내가 만두를 좋아해서 아들의 별명을 '만두'라고 지었냐고 말이다. 그것은 절대 아니고, 아이가 태어나서 보니 둥글둥글한 것이 만두같이 생겨서 부르다보니 자연스레 온 식구가 만두라고 칭했다. 그렇게 해서 내 별명도 어느새 '만두엄마'가 되었고, 이렇게 좋아하는 만두 이야기를 쓰다보니 '만두엄마의 어글리 딜리셔스'가 빚어진 것이다.
묘향만두에서 호젓하게 만두를 먹는데, 자꾸 만두와 여행한 그날이 떠올라서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다. 진땀을 흘리며 애를 질질 끌어다가 앉히면서 나온 음식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쫓기듯 나갔던 그날과는 달리 혼자 여유롭게 만두맛을 보고 있는 데도, 자꾸 바닥에 누워있는 아들이 보였다. 첫돌까지는 엄마, 성생님까지 이야기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리고 엄마라는 말을 다시 밖으로 내놓기까지 2년 여가 걸렸고,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일곱살인 지금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만두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계속 발전하고 있고, 남들에 비해 '느리다'기 보나는 '다른 길'로 가고 있다. 그리고, '만두'라는 별명과 '혜성이'라는 자기 이름 둘다에 반응한다는 것. 그리고, 만두는 먹는 것임을 알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기가 이렇게 탐스러운 만두같이 생겼는지도 알고 있을지. 나중에 커서 아이가 말을 더 잘하게 되면 물어봐야겠다.
왜 갑자기 말문을 닫았는지, 그리고 너가 이렇게 하얀 만두같이 예쁘게 생긴 것도 알고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