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만두가 야구공만한 분식점
전라도 쪽에 안 와본지도 오래 되었고, 그쪽 만두맛도 꽤 궁금했던지라 주말을 이용해서 익산으로 날아왔다. 손맛의 고장 전라도. 뭔가 만두에도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익산을 거쳐 전주를 돌아볼 예정이었다.
저녁 늦게 익산에 도착해서 오랜 시간 운전을 한 여독을 풀고, 다음 날! 희망에 찬 마음으로 갈산동의 '고려당'이라는 분식집을 찾았다. 고려당이라고 해서 빵집을 생각하시면 안된다.
여기에서 잠시! '분식粉食'의 뜻을 짚고 넘어가보려 한다. 워낙 분식집이라고 하면 우리 주변에 거의 한 집 걸러 하나 있는 '깁밥천당'과 같은 곳으로 알고 있다. 김밥이나 만두, 라면 등과 같은 간식 등을 파는 곳 말이다. 그리고, 가끔 간단하게 한 끼니 때우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 전 만두를 공부하러 갔다가 진짜 깜짝 놀란 것이 있다. 저 위에 분식의 한자를 보면 '가루 분'에 '먹을 식'이다. 즉 가루를 먹는다? 바로 알곡을 가루 내어서 반죽의 상태를 만들어 국수나 빵, 만두 등 최종의 형태로 만들어진 음식이 바로 분식이라고 한다. 쌀을 가루 내면 쌀가루, 밀을 가루 내면 밀가루. 20여 년 전쯤 우리 나라에 월남식 쌀국수 집이 들어와 인기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분식은 바로 밀가루로 만들어진 음식일 터였다.
사족을 붙이자면, 나라에서 혼분식 장려한답시고 도시락 싸가지고 오면 밥통 뚜껑 열어서 흰밥만 싸가지고 온 녀석 있나 검사하던 때도 있었다. 하루는 엄마가 깜빡 잊고, 콩이나 보리를 안 집어 넣고 밥을 한 바람에 아침에 나 울고 불고 했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엄마가 기지를 부린다는 것이 밥솥에서 같이 찐 흰김 나는 고구마를 꺼내어 손으로 조각조각... 그리고 밥 위에 꽂아 주셨던.... 또 엄마가 작게 예쁘게 조각을 낼 리가 없다. 숭덩숭덩 뿌러뜨려(?)서 밥에 꽂는데 이렇게 한심할 수가... 하지만 등교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에 대충 받아가지고 학교로 빨리 뛰어갔다.
4교시 도시락 시간이 될 때까지 가슴이 콩닥거려서 죽을 뻔했지. 떨리는 손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선생님의 그 퐈하하하하하하!!! 소리... 잊을 수가 없다. 오늘도 밥을 먹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쌀밥만 싸오는 애들은 선생님이 진짜 도시락 뺏어서 못 먹게 했었다. 야만의 시간들...), 선생님께 혼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등등이 원투쓰리 쿠션으로 밀려와 나를 감쌌다.
분식의 반대는 입식粒食이다. 쌀과 보리와 같이 알곡 그대로를 찌든 끓이든 해서 먹는 방식이다. 즉, 분식집의 대표 메뉴인 김밥은 엄밀히 따지면 분식이 아니라 입식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단어의 뜻도 사용처도 흘러흘러 달라지는데, 대세에 큰 영향 혹은 악영향이 없다 하면 쓰던대로 쓰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분식점 메뉴에서 김밥을 뺄리는 만무하고 말이다.
분식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고려당이 분식집임을 알려드린다는 것이 이리 말이 주저리주저리....
만두집에 도착해서 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늘 이 말을 한다.
- 저 하나요.
혼자서 전국으로 만두를 먹고 다니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신지가 그리 오래 되었는데도 가게의 입구 문턱을 넘을 때에 늘 넘어서야 할 묘한 저항감, 쑥스러움은 아직 완벽하게 극복되지 않는다.
이 날은 1시 조금 안 되어 도착 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 점심 시간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워낙에 이집이 줄 서서 먹는 집이라 한다. 다행히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앉자마자 보이는 것은 아주 깨끗하게 준비된 양념통. 음식점 들어갓을 때 제일 먼저 한 번 테이블을 슥 문질러본다. 끈적한 테이블, 양념 입에 다 묻어 늘어붙은 양념통들은 이내 식욕을 잃게 한다.
일부러 사진을 크게 그대로 놔두었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관리된 양념통하고 정갈하게 빛나는 테이블 좀 보시라고 말이다.
이 집은 소바와 만두가 시그니쳐 메뉴란다. 워낙 소바도 사이즈가 하나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대중소로 나누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옆 테이블 연인들이 소근댄다. 말투를 들으니 이집 꽤 오랫동안 다니는 이들같았다.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각잡고 찍을 수가 없어서 다 먹고 난 다음에 계산할 때 찍어야지 하다가 놓쳤다. 그래서 오른편 제대로 나온 메뉴는 다른 구글 검색을 통해서 퍼온 것이고, 왼쪽의 메뉴판이 바로 지난 주 버전이다.
다른 것은 변함은 없으며, 우동 콩국수, 온소바, 쫄면 우동, 온소면은 삭제 되었다.
그리고, 콩국수 간 못 맞추실 것 같은면 말씀해달라는 당부와 소바 주문 시 그릇으로 드실 건지 자루소바로 드실 건지 말해달라는 메모가 추가 됐다.
이 중에서 나는 만두와 메밀소바 대자를 호기롭게 시켜 보았다. 소바는 대자가 아니라 특대가 있어도 후루룩 들이켤 자신이 있는데, 만두가 워낙 크기가 큰 왕만두인지라 잠시 망설였지만, 정신을 다시 차렸다. 아, 내가 만두 먹으러 익산까지 온 거지...
이날의 하일라이트는 우리 주인 아저씨다. 사람이 이렇게 북적이는 만두집에서는 당연히 뒷이야기 취재가 거의 불가능하다. 허영만 아저씨처럼 카메라 다 준비되어 있는 상태에서 스윽 문 열고 들어가서 "안녕하세오우~~" 인사하고는 이내 주인장하고 독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그럼 이야기의 어떤 포인트에 맞춰서 만두를 먹어볼까 하고 조용히 궁리를 하던 중!
천운으로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손 씻고 나오는 길에 이 친절하신 주인 아저씨를 만났다. 잠깐! 하고 아저씨를 붙들고 속사포처럼 이것저것 물었다.
- 여기 가게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되게 오래 됐을 것 같은데...
- 저희 1972년 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저희 아버지하고 이모부님이 하시기 시작했구요, 이모부님께서 돌아가시고...
돌아가시고...에서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 고개를 살짝 까딱 하신다. 여전히 예의 바르고, 친절한 모습.
- 이모부님께서 돌아가시고, 지금 아들이 물려 받아서 하고 있는 겁니다.
아드님이 바로 이분이시다. 음식이 나올 때에도 그냥 입 다물고 놓고가시지 않는다. '실례합니다. 음식 놓아드리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정말 최고다!
메밀 소바가 나왔다. 백종원의 삼대 천왕에서 백종원이 극찬을 했던 소바라고 한다. 그냥 달디 단 쯔유에다가 물 탄 것 같은 맛이 전혀 아니고, 멸치, 디포리, 다시마 등등이 잔뜩 들어가서 한참을 우려냈을 듯한 해산물 국물 맛이다. 어떤 이들은 오히려 그런 강한 해물맛이 거북하다고도 하지만 나는 아주 그 향이 좋았다. 면도 좋았고.
드디어 만두 등판!!! 짜잔~~!
백종원의 삼대천왕은 촬영한 지 4년 정도 된 듯 한데, 그때는 이런 왕만두 8개에 6천원을 받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보시는 바와 같이 6개에 천 원 깎아 5천원이다. 만두 하나가 무슨 야구공만하다. 보기에도 너무나 탐스럽게 생기지 않았는가!!
한 입 베어물면 옛날 만두, 어려서 겨울에 먹던 만두 같은 느낌이 난다. 두툼한 만두피도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다. 만두와 밀가루는 서로간 숙명, 밀가루 안 좋은 것 먹으면 신물 올라오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만두를 좋아하면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고려당의 왕만두는 만두소랑 피랑 아주 찰싹 달라붙어서, 아주 식상한 표현을 써보자면 '아름다운 이중주를 연주해낸다'!
만두피 느낌은 눈으로도 보다시피 굉장히 포슬포슬하다. 이 표현이 딱이다 포슬포슬하다. 그래서 백종원의 삼대천왕 방송을 보면 백종원씨가 자꾸 먹다가 소를 흘리는데, 씨익 웃음이 나왔다. 나도 입 쩍 벌려 만두 베어 물고도 자꾸 소가 밖으로 빠져나와서 죽겠더라니까.
뭐가 들어간거지? 뭐가 들어갔기에 식감이 이렇게 포슬포슬한 거지? 촉촉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굉장히 이색적인 식감이었다. 당면은 잔뜩 들어갔고, 고기 당연히 들어갔고, 파까지 들어간 것은 알겠는데, 뭘까? 양배추일까?
고려당 왕만두는 간장에 찍어 먹을 수가 없다. 한 손에 만두 들고, 숟가락으로 간장을 떠서 끼얹듯이 먹어야 한다. 그러면 촉촉함이 배가가 된다.
아까 화장실에서 만난 아저씨께 여쭤봤다.
- 혹시 만두 식감 굉장히 특이한데, 안에 뭐 넣으신 거예요? 당면, 고기, 파 들어간 것은 알겠는데...
- 저희는 무를 넣습니다.
- 무요?
- 네. 말린 무를 넣습니다. 무 넣어서 만두 만드는 집은 우리집 밖에 없습니다.
말린 무가 바로 왕만두 식감의 비결이었다.
이쯤에서 백종원 아저씨의 고려당 만두 드시는 모습을 보도록 한다. 아저씨도 만두 위에다가 간장을 끼얹어서 드신다. 그리고, 저 말린 무의 비밀도 공개가 된다. 고기와 무맛의 밸런스!
남은 왕만두는 잘 싸가지고 돌아왔다. 너무 맛있어서 숙소에 놓고 그냥 돌아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냉장고에 만두 있다. 냉장고에 만두 있다. 놓치지 말자. 역시나 집에 돌아와서 다시 먹어보니, 굿!
늘 남기는 말.
좋은 커피와 만두는 식었을 때에 진가를 발휘한다. 역시 고려당 만두도 식었어도 무척이나 맛있었다. 여전히 만두소는 질질 흘리며 먹긴 했지만 말이다
전화번호: 063 - 856 - 8373
전국에 택배가 가능했으면 정말 좋겠는데, 조금 전 다시 한 번 확인하니 죄송하단다. ㅠㅠ 택배서비스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고려당 분식 맛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무래도 직접 익산으로 내려가보시는 것도 좋겠다.
가서 미륵사지 석탑도 보시고, 나바위 성당 가서 산책도 하고 오시길...
익산. 꽤 매력적인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