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헛제사를 지낸 후 먹는 만두의 맛은?
8월 말, 드디어 내 첫 책, '시나리오 쓰고 있네'가 세상에 빛을 본 이후로 마음이 많이 분주해졌다. 첫 책 2쇄 찍는 사람도 드물 뿐더러 책 한 권으로 사람 '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책이 따끈따끈할 때 셀프로 홍보를 하고 다녀야 그나마 어찌저찌 좀 팔릴 것이라는 생각에 약간의 조급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좋은 분 도움으로 책을 영화 제작사들에 보내 두었는데, 그 중 몇 군데에서 거짓말 같이 연락이 왔다!!!!
어느 날, 회의를 하다 말고, 모르는 번호가 뜨기에 나는 차 빼달라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사 PD님!!! 전화를 받고 정말 손을 벌벌 떨었더랬다.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굽신굽신 거리면서 "네" 한 번만 말해도 될 것을 "네네네네네... 네네네네...." 입이 멈추질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지금 쓰신 글들, 제가 인터넷으로 찾아 봤는데요, 이야기가 많이 매력적이어서요..." 말에, 글로만 읽어왔던 표현, '이게 꿈이야, 생시야'를 살면서 처음으로 외쳐봤다. [Dear My Husbands]라는 제목의 내 졸작이 하나 있는데, 그걸 인터넷으로 찾아보신 모양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날 바로 그동안 써둔 원고를 보냈다. 아, 이제는 뭔가 잘 풀리려나? 어떻게 이 일이 흘러갈까? 원고를 보고 반응은 어떠려나? 어느 작가나 다 그렇겠지만, 어디다 내 원고를 보내고 나면 꼭 피드백을 받고 싶은 심정이 든다. 물론 좋은 피드백이면 금상첨화고!
마음이 붕 떠서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게 되었다.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연락이 오려나.
그 마음을 안고 찾아간 안동. 안동에 봉정사라는 절이 있는데, 나는 어느 지역을 가든 절이 참 좋아서 꼭 찾게 된다. 특히 사람 손 많이 안 탄 조그만 절이면 더욱 좋다. 예전에는 소박했던 절들이 무분별한 기와불사나 시주에만 혈안이 되어 변해버리면 씁쓸한 마음이 가실 데가 없다.
여하튼 붕 뜬 마음을 가슴에 담고 간 봉정사.
대웅전 앞에다가 내 책을 놓고 기도도 했다. 나는 불교식으로 절 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그냥 부처님 바라보면서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했다. 지금 종교가 무어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부처님, 예수님, 하느님, 알라, 아니면 인도의 소까지 다 호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적으나마 돈을 들여 촛불도 켜보고, 올라가는 길에 저렇게 소원돌도 얹어보고, 또 추가 5천원 내고 소원도 써서 매어 달았다. 할 수 있는 한, 별 짓을 다해봤다. 그리고, 이리 간절한 기다림 속에 혹시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평안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예전부터 '우리 딸 대학 붙게 해주세요' 류의 기도는 미안해서 안 하고 싶었다. 대신 '대학 떨어지더라도 또 다른 기회를 보여주세요' 혹은 '크게 마음 상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정도의 선에서 타협을 했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영 욕심이 생기는 거라. 부처님께 말이야 저렇게 써놨지만, 대웅전 앞에서 아주 대놓고 빌었다. 제발 영화제작사에서 연락 좀 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 시나리오 한 편만 쓰고 죽게 해달라고... 진짜 귀여워서... 원... 이게 반백살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기도 맞나?
이렇게 셀프로 간절하게 기도 올리고 제사를 드리고 나서 헛제삿밥 먹듯 만두를 먹으러 갔다.
헛제삿밥은 많은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살던 안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평소 음식이 부족했던 그 시절, 제사 정규 시즌이 아닌 때에 일부러 헛제사, 즉 가짜 제사를 드려 제에 올린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생겨났다고도 하고. 아예 안동은 헛제삿밥을 간장 비빔밥 세트의 형태로 70년대 중후반부터 상품화시켰다고 한다.
각설하고, 오늘 간 곳은 안동에서 유명하다는, 옥동에 위치한 짱만두.
새우만두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보니까 만두의 모양이 길죽길죽한 것이 속초의 이정숙 찐빵 만두집의 만두와 똑같다. 신기하다. 이런 만두 빚는 법을 가르쳐주시는 스승님이 계시는 걸까. 그리고 내부로 들어와서 메뉴를 보니 찐빵과 왕만두가 따로 있고, 길죽한 만두도 함께 구비된 것 또한 똑같다. 이런 류의 만두 계보가 따로 있는 듯. (이건 내 추측이다. ^^)
내부는 이렇게 한두 테이블 정도 밖에는 없고, 좁아서 주로 싸가지고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먹는다고 해도 너무 조용해 쩝쩝 소리마저 민망할 것 같다. 그래도 내부가 아주 깨끗하니 선택은 자유!
나는 고추새우만두, 새우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이 네 가지를 찐만두로 주문했다. 젯밥 골고루 먹으며 조상님께 기원드리듯, 나도 여기에 있는 만두들 하나하나 일일이 먹어보고 싶었다. 배불러 죽었다는 사람 이야기는 못 들어봤으니.
지금 사진에서 만두를 능숙하게 싸고 계신 분은 일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사장님께서는 바로 근처 웅부 공원 앞에 짱만두 웅부점을 또 하나 오픈하셔서 그곳 일정이 바빠 안 계시고. 여자분께서는 만두를 찌고 포장하는 동안 새로 연 가게가 훨씬 넓고, 근사하니 꼭 한 번 가보시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아니 얼마나 멋있는 만두집이기에...
(후에 '짱만두 웅부점' 검색해보고 기절할 뻔 했다. 사장님께서 무려 '연금술사 카페'를 이어받아 손 보시고 연 가게라고 한다. 와우. 지금 만두가게에 신비의 유리구슬을 놔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각자 검색해 보시길!)
코로나 시국, 어려운 때에 남들은 가게문을 닫네 마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리는데, 사장님께서는 경기 안 타시고 잘 운영해오신 것 같다. 관건은 '맛'이겠지. 그리고 가까운 지역 '배달'과 '포장'이 주 판매 방법인 것이 주효한 듯 하다.
포장을 받아서 차로 들어왔다. 이 네 가지 중에 역시 나는 김치만두를 먼저 집게 되었다. 김치만두를 제일 좋아하니까...
사진에는 나오지는 않지만, 만두를 먹을 때 뜨거운 원두커피와 함께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녹차도, 다른 어떤 차도 아닌 커피와 함께 먹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한 입 베어문 말랑한 김치만두. 정말 깜짝 놀랄만큼 맛있어서 사실 짱만두 2호점 가보려고 했었는데, 당장 접었다. 이 정도 맛있으면 됐지, 가게 구경이 뭐가 중요하겠나 싶었다.
매운 것을 아주 잘 먹는 내가 먹기에도 살짝 얼얼한 맵기였다. 그게 더욱 마음에 들었다. 호오~ 하고 매운기를 밖으로 빼다가 한 모금 들여마시는 커피맛이 얼마나 좋은지.
마치 홍어를 먹을 때 알싸함이 쏴아아아 하고 입안에 퍼져 두개골까지 올라갈 무렵, 탁주를 들이부어서 훅 가라앉히는 원리와도 같달까.
숙소에 들어와서 다른 만두들을 꺼내 보았다. 이 만두집의 장기가 바로 새우만두라고 하는데, 지금 시그니쳐 메뉴가 아닌 것도 이 정도의 만족감이 들면 새우만두 맛의 수준은 어떨지 기대됐다.
맨 위부터 새우만두, 중간에 파란 스티커 붙은 것이 고추새우만두, 그리고 맨 밑이 고기만두다. 김치만두를 한 팩 더 사오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삼삼하게 생각이 난다.
짱만두는 피가 굉장히 얇다. 어떤 집 만두들은 밀가루가 너무 두꺼워서 조금 먹기 불편하고, 심지어 조금씩 신물이 올라오는 곳도 있는데, 짱만두는 그냥 호로록 들어간다. 배도 하나도 부르지도 않고, 거북하지도 않은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고기만두, 고추새우만두, 새우만두 순서다.
만두의 알싸한 매운 맛을 좋아하는 나는 고추새우만두의 맛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고기만두 또한 양념이 아주 잘 되어서, 맛이 딱 균형잡혀 있다. 새우만두? 만두에 새우 들어갔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전국으로 만두로드를 다니다 보면 거리상 어쩔 수 없이 1박 내지 2박을 할 때가 있다. 혼자서 숙소에 앉아 만두를 먹는 기분은 어떨지 예상들이 되시는지. 아이를 낳아놓은 터라 어쩔 수 없이 이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아이들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눈에 밟힌다. 아마 죽을 때까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한 늘 마음 쓰일 것 같다. 그것이 아마도 숙명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만두 녀석은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마음을 써야 할테니...
그래도 혼자서 고즈넉하게 숙소에서 먹는 만두맛은 최고다! 좋으니까 다니지. 그 시간이 좋아서 그렇게 기를 쓰고 먹으러 다니는 것이다.
안동의 짱만두는 미리 만두를 빚어 놓고, 찐만두를 주문하면 앞에서 바로 쪄주시고, 군만두를 주문하면 구워주신다. 미리 찌거나 굽지 않고 개별 포장한다.
나는 군만두를 주문하지 않아서 비주얼을 몰랐는데, 검색해 보니 짱만두의 군만두는 이런 미친 비주얼!!을 지녔다! 가서 군만두를 먹어보는 것도 아주 탁월한 선택이 될 것 같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고, 일요일은 쉬신단다.
그리고 전화번호는 054-857-0606. 미리 연락해서 주문하고 도착해서 바로 가지고 나갈 수도 있다.
짱만두 하나만 먹는 것만으로 안동 다시 가야 할 이유가 된다. 내게는....
아참! 영화사에서는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그러기에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했지.
결과는 애타게 기다릴 때 결코 쥐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 다 포기하고 허허로우면 슬그머니 자기가 뒤따라와 뒷주머니 구멍난 틈을 찾아 저절로 꽂히는 것이다.
에세이 '시나리오 쓰고 있네' 156페이지에 씌어 있는 글이다. 내가 이걸 써놓고도, 왜 그리 애타게 기다렸을까. 하하하! 사람 마음...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