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 춘보만두

만두국물의 신비를 밝혀보자!

by 황섬

가끔 보면 '사람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매력적이냐, 우호적이냐를 떠나서의 문제다. 그냥 사람을 끌어모은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포장마차가 있어 보니 사람이 없다. '아, 잘 됐네' 하고 오뎅이나 몇 개 먹고 나오자 싶어 호주머니 뒤져 현금이 있나 보고 스윽 들어간다. 오뎅 한두 개 먹다보면 앞에 떡볶이가 보인다. 떡볶이도 한 접시 시킨다. 정신없이 먹다 보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 어깨에 겹치고, 낑겨서 아, 꼬마 김밥 한 줄 더 먹고 싶었는데 그냥 떠밀리듯 나오는 경우도 생긴다.

순대국집에 가도 그런 상황이 생긴다. 분명히 혼자 앉아 있었는데, 가족이 들어오고, 단체까지 몰려온다.

이런 사람이 바로 '사람을 모으는' 사람이다. 내가 이 사람이다.

한두 번 정도의 경험이면 뭐 우연이겠거니 하는데,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벌어지는 현상이라 뭐라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규칙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정의내렸지. 나는 '사람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여름 끝물이어서 아주 시원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후덥지근하지도 않았던 날 오전, 나는 따끈한 만두국이 먹고 싶었던지라 슬슬 검색을 시작했다. 멀리는 못 가겠고, 가까운데 없나 봤더니 '춘보만두'라고 아주 화사한 이름의 만두국집이 있다. 나는 이름에 '춘'자만 들어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네비를 켜고 가다보니 차를 가지고 나온 것이 민망할 정도로 우리집이랑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 같은 만두맨이 이 집을 몰랐다니 등잔 밑이 어둡고나.



문 연지 얼마 되지 않은 건지 원래 손님이 없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자리가 넉넉했다. 홀에 나와 계신 아저씨께 '나 혼자'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머릿속으로 뭔가 계산을 하시는 듯 두리번거리더니 자리를 잡아 주신다.


홀은 아저씨가, 주방은 아주머니께서 담당하시는 전형적인 가족 운영 만두집이다.

매장 곳곳에 아저씨와 아주머니 부부의 사랑이 담긴 아이템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쪽 공릉동 쪽에 오래 사셨는지 아저씨의 이름 앞으로 지역 발전 공로 표창장 같은 것도 많이 걸려 있다.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경찰서에서도 표장을 받으셨다. 뭔가 정의로운 분이신가보다.


아저씨, 아주머니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앉아서 만두국을 기다리다 보니 어라? 사람들이 점점 찬다. 예외 없다. 내가 들어오면 다들 따라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가는 가게의 주인분들은 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이리 손님을 불러다주니' 이 생각을 할 무렵, 아저씨께서 오셔서 조심스럽게 물으신다.

- 저, 여기 합석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코로나 시국인지라 사람들하고 가까이 앉는 것은 좀 저어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만두국 드시러 오신 손님을 돌려 보낼 수도 없고 말이다.




춘보만두의 만두는 김치만두 단일이다. 평양만두 전문점이라고는 했지만, 평양만두에 이리 빨갛게 김치가 들어가 있는 것은 보지 못한 터라 갸우뚱. 그러나, 평양식 만두라고 해서 꼭 꿩에다가 두부 으깨어 넣는 것만도 아닌 것일텐고, 돼지고기도 넣고, 닭고기도 넣고, 그러다 보면 매운 김치도 들어가고 그렇겠지.



그런데, 특별히 이야기할 것이 있다. 이 집의 영업시간. 오전 11시에 가게를 열고, 딱 오후 2시까지, 점심 장사만 한다. 처음부터 그런 건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5-6년 전에는 필요하면 오후 5시부터 1시간 30분 정도 영업을 했었다고도 하는데, 지금은 딱 세 시간만 만두국을 내고는 문을 닫는다.

아, 궁금했다. 하루에 3시간만 장사를 한다? 그리고 앞뒤로 만두를 빚고, 식재료를 다듬어 준비하는 시간... 합치면 하루에 6-7시간을 일하는 것인데, 그럼 얼마나 벌이가 될까. 자꾸 계산기를 두들기게 된다.



김치도 어머님이 손수 담그시는데, 와. 정말 맛있다. 블로그 찾아 보니 다들 배추김치가 더 칼칼하다, 깍두기가 더 맛있다 의견들이 첨예한데, 나는 원래 배추보다는 무김치를 더 좋아해서 깍두기 승. 국밥이나 설렁탕집에 가도 깍두기를 더 많이 먹는다.

드디어 만두국이 나왔다. 춘보만두의 큰 특징은 커다란 만두도 만두지만, 이 국물에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사골국물 같아 보이지만, 한입 떠서 먹으면, 이건 사골이 아니다.
가게 처음 했을 때는 사골로 국물을 우려서 냈었는데, 손님들이 하도 많이 남겨서 지금 국물로 바꿔서 오늘날 이 맛으로 정착했다고 하신다. 무슨 재료 가지고 만드셨냐 물어도 절대! 안 가르쳐주신다. 그냥 혼자 추측하건데, 흰콩같은 것을 쓰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여름 별미라고, 메뉴판 옆에 붙인 것이 바로 콩국수. 나의 추측이 과연 맞는 답이 아닐까? 각설하고 정말 맛있다. 이 집은 만두 포장도 좋지만, 국물 때문에라도 꼭 와서 먹어야 한다. 꼭.



만두국에 저렇게 커다란 만두가 일곱 개나 들어있다. 떡만두국은 만두 다섯 개에 떡 잔뜩 담아 내주시는 모양이다. 만두에는 김치 외에 두부,

국물 맛이 하도 좋아서 국물로 배를 채우느라고 만두는 모두 클리어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만두소로 빚어진 아삭아삭 칼칼한 김치맛에 크리미한(?) 국물맛이 어우러져서 자꾸 다음 한입을 재촉한다.



점점 손님이 많아지고, 아저씨의 몸놀림도 덩달아 빨라진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밖에서 아주머니를 자꾸 불러내어서 뭔가를 시키니, 나와서 일은 도우면서도 신경질을 살짝 내신다.

- 아, 나 지금 들어가서 국 끓여야되는데 왜 자꾸 불러... 아이 참...

이 모습이 불쾌하기는 커녕 되게 귀여워 보인다. 투닥투닥...

주방을 살짝 들여다 보니 세 분 다 가족인 듯. 따님인 듯한 분이 아주 능숙하게 만두국을 끓여서 그릇에 담아 내신다. 아무래도 어머니, 아버지의 만두국 기술을 전수 받아 운영하는 것 같다. 이렇게 대를 이어 하는 음식점이 참 좋다, 나는.


고명에 얹은 깨, 김도 잔뜩!


내가 만두국을 다 비우기도 전에 사람들이 꽉꽉 들어찼다. 아무래도 이번 가게는 내가 사람을 몰고 온 것 같지는 않다. 원래 이 집은 점심 시간이면 북적이는 데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내가 그 북적이기 시작하는 시간에 오게 된 것이고. 이렇게 맛있는 만두를 하루 딱 세 시간 안에 맞춰 와서 먹을 수 있다니, 나 같은 '사람을 모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유 있는 리미티드, 한정판 마케팅의 승리!



든든하게 맛있는 곳이다. 조금 여유롭게 만두국을 즐기고 싶다면 11시 오픈 시간에 딱 맞춰 가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혼자 간다면 나처럼 저리 합석은 숙명일 듯.

가게 한쪽 벽에 걸린 춘보 만두 시가 재밌다.

시를 보면 아무래도 이 시의 저자는 춘보만두집과 각별한 사이일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사장님 어머님이 이북분이시고, 그 분께 전수 받은 만두 기술인가 보다. 사람이 북적이는 집은 일일이 사장님 붙잡고 이런 것 못 물어본다. 결국 나는 만두집에서 명탐정 콜롬보가 되든, 홈즈가 되든 해야 한다. 늘 안테나를 늘 바짝 세우고 있어야 하지.



그렇다면 이쯤에서 왜 춘보만두일까 생각해 본다. 정답은 시에서도 찾을 수 있었고, 영수증에서도 얻을 수 있었다.



가게 간판을 보면 사람이름 '춘'에 보배 '보'자다. 한문이 짧아서 '춘보'가 아저씨 성함인지 몰랐다.

맛있는 만두국집 춘보만두. 주소도 영수증에 있으니 시간 맞춰서 한 번 가보시길. 직장 다니시는 분들은 토요일에 맞춰서 가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태릉입구역에 하차해서 3번 출구로 나온 다음 먼저 소리를 질러본다.

- 만두엄마야!!!! 만두 먹으러 같이 가자!!!!!!
그러고 나서 대답이 없으면, 공릉 국수거리 쪽으로 주욱 앞만 보면서 걸어 올라온다. 국수거리 간판을 보고 오른편으로 꺾어 조금만 걸어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춘보만두를 만날 수 있다.

모두 맛있는 만두국을 즐겨 보시길 바라며. 굿 럭.


아 참, 그리고, 나 같이 '사람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덜컥 가게 내면 그거 망한다. 내 기운만 믿고, 내 가게 내면 이상하게 사람이 안 몰린단다. 즉, '사람을 모으는' 또 다른 사람이 귀인처럼 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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