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수유리다. 세 살 때부터 스물 다섯 살까지 한 동네에서 자랐다. 눈 뜨고 코 베어간다는 서울 사람이지만, 자칭 '강북 촌년'. 조선시대까지 수유리는 경기도 양주 소속이었다고도 한다. 그렇게 서울의 변두리에 있는 동네다. 오죽하면 '수유동' 보다 '수유리'가 전국민들의 입에 익었을까. 어려서 택시를 타면 '수유리 갑시다.' 하던 젊었던 아빠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대학교 다닐 무렵, 십 년 넘게 이어오던 아빠의 사업이 내리막을 탔고, 결국 빚만 지고 문을 닫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쫓기듯이 엄마 아빠는 경기도 남양주 집으로, 나는 학교 앞 자취방으로, 동생이야 학교 기숙사로 갈기갈기 찢어져서 살게 되었다.
살던 집은 나 열세 살 때 엄마, 아빠가 공들여서 완성한 집이었다. 이 집을 떠나던 날 이삿짐 챙기던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여어가 내가 어뜨케 공들인 집인디...' 그 얘기만 계속 반복했다.
나는 혹시나 엄마 우는 건 아닌가 하고 계속 살폈다.
오랫만에 우리 동네, 그 집을 찾았다. 한 10여 년 만인 듯 했다. 가끔 나 살던 벽돌집이 꿈에 나타나면 훌쩍 이곳으로 날아가곤 했었는데, 지난 10년 정도는 잊고 살았었나 보다.
대문 앞에 서서 어엄마~ 문 열어어~ 주세요오오오~를 외치면 덜컹! 하고 열릴 것 같은 우리집. 저 문도 30년이 넘게 그대로다. 이 집 지을 때 달았던 현관문인데, 아주 관리가 잘 되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자꾸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
'이집 우리집인데...'
지금 누가 살고 계신지는 몰라도, 집 주인 분들께 염치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온통 뒤덮고 있는 우리집, 나에겐 '우리집'이었으니까.
2층 방을 가리고 있는 저 키 큰 나무도 그대로다. 스무 살 때는 남자친구가 새벽에 저 나무를 타고 내려와 엄마 아빠 몰래 도망가곤 했었단 말이다. 그런 알싸한 비밀을 나랑 저 나무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저 집은 우리집, 우리 나무가 아니다.
수유리에 온 김에, 어디 가까이에 맛있는 만두국집이 있나 살펴보았다. 그래서 찾은 보물 같은 집.
수유리의 예와 손만두이다.
놀랍게도 이 집은 우리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밖에 안 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지?
내가 수유리에서 산 세월이 몇 년인데, 이 만두국집을 전혀 몰랐을까? 아무리 옛날 이름이 두메손국수라고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하긴 어린 시절의 외식이란 결정권이 무조건 부모님께 가 있는 터라, 엄마가 만두국을 싫어하시거나 안 드시는 분이라면 나까지도 먹을 도리가 없었을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중학교때부터 동네 분식집에서 아무리 라면에 공장만두를 넣는다 해도 꼭 떡라면 아닌, 만두라면을 골랐었는데...
이때가 마침 추석연휴 직전이라 슬쩍 마음이 들뜨던 때였다. 명절되어도 오는 손님도 없고, 어디 가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추석, 설날,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그냥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돋곤 한다.
예와 손만두는 명절 연휴 다 쉰다. 일요일은 정기 휴무. 들어가는 입구에는 저렇게 영업시간을 잘 보이도록 붙여 놓았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이어서 그런지 가게에는 나밖에 손님이 없었다.
이쪽 홀 말고 안쪽에 방 같은 데에 식탁이 마련되어 있어서 구석에 자리해 앉았다. 해가 가면 갈수록 자꾸 구석으로 가서 몸을 맡기게 된다.
음식점 가면 늘 보는 곳. 양념통 구석구석... 예와 손만두집도 예외없이 깨끗하고 광이 났다.
이 곳은 김치와 더불어서 고추지를 내어주시는데, 주인 언니(?)께서 간장을 부어서 찍어 먹으면 맛있다며 힘주어 설명해주셨다.
가끔 칼국수집에 가면 이렇게 가게에서 손수 고추지를 만들어서 내어주시는 곳이 반갑다. 고추지 혹은 지고추라고도 부르는데, 첫 서리 전에 딴, 익지 않아 파아랗고 힘센(?!) 청양 고추를 소금물에 포옥 담가서 몇 달 삭히면 색깔이 노랗게 흐려진다.
저리 고추지 간 것은 식감도 아삭하고, 고추의 매운기도 깔끔하게 흘러서 순대국이나 칼국수 드실 때 자꾸 버릇처럼 김치 씻어서 얼큰하게 만들어 드시는 분들께 강추다.
사진과 같이 간장에 섞어서 찍어 먹어도 좋고, 아예 국 위에다가 잔뜩 얹어서 섞어먹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입에 침이 고여 죽겠다. 오후 3시.... 출출할 때가 되었다.
깔끔하게 매운 고추지
예와 손만두의 메뉴는 사진과 같다. 사골 손칼국수에서 보다시피 국물은 뽀오얀 사골 베이스고, 한우 아롱사태로 수육 메뉴는 준비하는 것을 보면 고기를 아주 잘 다루는 집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1982년 부터 음식을 한 구력이 얼마인데!
이때면 내가 9살,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왜 이 집을 몰랐을까. 이렇게 집에서 지척에 두고도....
지금 이 가게를 맡아서 운영하시는 분은 딱 보니 내 나이 또래 정도 되어 보이셨다. 이런 전통있는 만두국 집을 이어 나가시기에 솔직히 많이 젊다는 생각이 들었던지라 언제부터 이어받으셨는지 물어보니 외숙모님이 처음에 운영을 하실 때 일을 배우다가,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까지 맡아서 이끌고 있다 하신다.
하긴, 성북동의 할머니 만두국집도 지금 3대가 물려 내려와서 아주 젊은 여성분이 이제 주방에서 만두국을 만들어내는 엄마에게 운영을 물려받을 차례가 되는 것을...
드디어 만두국이 등장했다!
사실 이 전에 수유리의 다른 만두국집에서 이미 맛있는 김치 찐만두를 한 판 시식하고 온지라 자신이 없었는데, 탐스러운 사기그릇에 담겨 나온 김 모락모락 나오는 만두국을 보니 급 전투력이 상승했다.
일단 만두 보다도 힘차디 힘찬 (?) 고명의 기개가 눈에 들어온다.
노른자 지단과 김도 그렇지만 나머지 저것은 무엇인가 떠서 먹어보았다. 설마 전복을 썰어 놓은 건가 싶어서 냉큼 숟가락으로 떠서 자세히 보았다. 손만두국 7500원 짜리 한 그릇에 그 비싼 전복이 들어갈리가.
역시 먹어보니 버섯이다. 만두국에 이렇게 버섯을 풍성하게 넣어주시는 곳은 드물다. 아니, 내 기억에는 예와 손만두가 최초인 듯 하다.
예와의 만두는 무척 단단하다. 김치만두는 없고, 고기만두 한 종류인데, 고기가 속안에 꽉 찼다. 얼마나 꼭꼭 뭉쳤는지 만두를 국물 안에서 반으로 갈라도 흩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작지 않은 크기의 만두다 다섯 알이 한 그릇에 들어가 있다. 꽉 찬 고기만두의 속재료 덕분에 두어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사골국물은 무척 진하고 깔끔하다. 어떤 분들은 사골국물에서 꼬리한 냄새 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특히 어르신들이 그런 터프한 맛을 좋아하시는데, 이 집의 사골국물은 초깔끔 그 자체!
예와 손만두가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이 두텁고 고급진 사기그릇이었다. 만두 그릇이 두꺼워서 쉬이 식지 않는 점도 좋았지만, 이렇게 반찬그릇에 종지까지 통일해서 고급진 플레이팅을 보여주니 뭔가 굉장히 대접받는 느낌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나 혼자 먹을 때는 그저 바쁘다고 김밥 쥐어 먹고, 스티로폴 도시락 그릇에 찐만두 사와서 대충 먹고 때우는 일이 잦은 데, 이렇게 제대로 밥상 한상 차려주시는 데에 오면 기분이 무척 좋다.
만두국을 시키면 이렇게 자그마한 밥그릇에 조밥이 조금 곁들여진다. 밥에다 김치만 얹어 먹어도 맛있고, 특이 이 고추지 맛은 이 집의 장기다! 고추만 파신다면 당장 한 항아리 얻어 올텐데....
예와 손만두국. 맛있게 한 그릇 비우고 나가는 길.
카운터에 서서 계산을 하는데, 자꾸 이 주인 언니야도 그렇고, 주방에서 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도 그렇고 자꾸 눈에 익는다. 일하시다가 손님이 없으니 나와서 종이컵에 믹스 커피 한 잔 드시는데, 특히 저분은 정말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고 그냥 뒤돌 계제가 아닌 것이다.
혹시 인수 국민학교 나오셨어요? 물어보려다가, 에유, 그래 이 동네에서 오래 사신 분들이겠지, 그래서 어린 시절 내가 오며 가며 지나쳤겠지 싶은 생각에 관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글 지금 쓰면서 알았다. 주방에 계시는 아주머니는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려서 단발머리였던 6학년 6반 친구였다. 3반이었나? 와아~ 반이 기억이 다 나다니. 그리고 목소리도... 여전히 가늘지는 않은 목소리에, 웃으면서도 이마를 찡그리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졸업 앨범이 남아 있다면 좋겠는데, 수십 번 이사하면서 없어졌다. 중학교 앨범도 겨우 건졌는걸.
이렇게 하루, 만두국과 함께 참 묘한 추억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기억이 돌고, 또 돌고... 고향에 가면 가끔 이렇게 뜻하지 않은 놀라운 조우를 하게 된다. 아니 그 동네로 갈 때부터 이미 이런 만남을 기대하고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골목에서 내가 어려서 좋아하던 오빠를 마주친다든지...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4.19로 40-8 4.19탑 사거리에서 4.19탑을 바라보고 오른쪽 보도로 올라가시다 보면 오투인가 하는 모텔 나오고 그거 지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막 길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4.19탑 못 미쳐서 커다란 카페(그냥 커다란 카페라고 해도... 아 여기구나 아실 거예요)나오면 바로 오른쪽으로 꺾으세요! 그러면 바로 앞에 정겨운 '예와 손만두' 간판이 보입니다.
차 가지고 오시는 분들은 절대 옆 카페 자리에 대시면 안됩니다. (디게 뭐라고 하더라구요, 끙. 막 쳐다보고...) 차라리 4.19탑 주차장에 세우시고 슬슬~ 내려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