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만두로드는 양평을 지나 춘천을 건너 가려고 했지만, 이 좋은 가을 날씨를 만끽하려는 나들이 손님들이 도로를 꽉 매운 관계로 양평은 패스! 바로 춘천으로 건너왔다. 마침 춘천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터라, 좋은 분의 배려로 영화도 한 편 예매하고... 야호!
만두로드를 떠나기 전에는 당연히 그 지역의 만두집을 검색하고, 그 중 리뷰가 좋은 집 순이 절대 아닌, 그저 나의 느낌이 가 닿는 곳을 찾아 떠난다. 그런데, 나의 느낌은 아주 유명해서 건물을 새로 올린, 대기업화 된 만두집(그러한 곳은 주로 만두전골을 중심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다) 보다는 작고 오래된 만두집에 주로 꽂힌다.
그리고, 하루에 한 집을 들려서 만두를 맛있게 먹고, 나머지 한 집은 굳이 테이크 아웃 전문인 곳으로 찾아가서 포장을 하고, 나중에 출출해질 때쯤 숙소에서 먹는다.
배부를 때 먹는 만두는 '시장'이라는 반찬이 없어서 아무리 맛있게 빚어도 그 맛이 떨어진다. 이건 만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거의 반년 이상 전국 '만두로드'를 다니면서 알았다.
보통 한 지역에 가면 1박 2일에 한 세 군데, 2박까지 하게 되면 많게는 다섯 군데까지도 돌다가 온다. 물론 풀무원이나 비비고의 후원을 받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내돈내산'의 전형적인 사례 되겠다! 여기에 '내좋'까지 붙이면 정확하다. 내 돈 내고, 내가 좋아서, 내가 사먹는 만두.
이번 춘천 만두로드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춘천에는 '왕만두'라는 상호를 지닌 만두집이 거의 다섯 집이 넘는 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왕'자가 붙은 만두집을 따지자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만두집은 '우리는 그 집 아니예요'라는 설명을 붙여 놓기도 한다.
이 기현상은 무엇일까? 미투 전략으로 우리 모두 다 같이 묻어가자는 전략일까?
1979년에 열었다는 '왕만두'집에 왔다.
1979년이면 2020-1979= 41, 40년이 넘은 가게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사람은 바로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반복한 사람이다. 바로 이 만두집 사장님이 그런 듯 하다. 가게 간판에도 '1979년 봄 이후'라고 씌어져 있다.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가게에 들어서니 3시 이후에 만두 나온다고, 그때 다시 오라고 하신다. 내가 알기로는 분명히 중간 브레이크 타임이 없었는데... 서울에서 춘천 넘어 오는 데 4시간이 넘은 터라 아침부터 정말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등짝이 뱃가죽에 들러붙을 지경이었다.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저쪽 설렁탕집을 가냐 하나 생각 하는 순간...
- 그래도 홀에 있는 사람들까지는 주문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거 먹으려고 서울에서 어머니 모시고 온 거예요.
나랑 똑같이 서울에서 만두 드시러 온 어떤 굵은 바리톤 목소리의 아저씨가 점잖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살았다! 딱 내가 꼴찌로 주문을 하게 되었다.
이 집은 원래 조양동, 춘천 시청 앞에서 사장님의 누님이 '왕만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가게란다. 이후, 그 가게에서 누님에게 만두 빚는 법을 전수 받고, 후에 운영을 일임 받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것인데, 지금 사농동 가게는 확장해서 옮긴지는 몇 년 안 되었다.
맨 먼저 자리에 앉으면 보이는 단무지와 양념통들.
너무 배고파서 단무지부터 그릇에 잔뜩 담아서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는데, 이 집 단무지 무척 맛있다. 좋은 것 갖다가 쓰신다. (설마 단무지마저 만드시지는 않겠지)
왕만두 집의 메인 메뉴는 역시 '왕만두'. 내가 간 날은 왕만두가 이미 떨어졌다고 한다. 하루에 40인분 정도만 빚어 놓고, 인당 1인분 이상 팔지 않는고로, 이미 점심을 훨씬 넘긴 시간에 왕만두가 남아날 리가 없다.
그래서 왕만두 제외하고, 통만두(고기만두) 김치만두와 더불어 야채비빔만두 이렇게 세 메뉴를 시켜보기로 했다.
야채비빔만두의 위용!
우리가 주로 '군만두'로 부르는 만두는 이 집은 '튀김만두'라고 호기롭게 불러버리는 데에 이유가 있었다. 딱 봐도 만두를 팬에 구운 것이 아니라 기름에 튀긴 만두다. 메뉴에 있는 '튀김만두' 보다는 모양은 조금 다르고, 작다. 저 야채의 비빔 소스는 분명히 쫄면에도 넣는 소스일텐데, 무엇보다 하나도 '달지 않고' 새콤했다. (단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지라 비빔면류를 아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밖에서는 주인장이 소스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어 선택하기가 망설여진다) 썩 맘에 들었다.
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찍! 육즙이 튀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더 깜짝 놀랐다. 정말, 그동안 내가 왜 군만두를, 아니 튀김만두를 왜 좋아하지 않았을까. 나의 경험치가 단번에 높아져 버리는 마법이 펼쳐졌다.
다들 나보고 맛있는 만두집을 소개해주시면서 한 번 가보라고 하시는데, 주로 중국식 군만두여서 '한국 사람들은 군만두를 되게 좋아하나 보다' 하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발걸음은 잘 향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집만 그런 것일까? 아니면 모든 군만두, 아니 튀김만두들이 다 맛있는 것일까?
예전에 이연복 셰프가 아드님하고 함께 만두 만드는 영상을 한 번 봤었는데, 중국식 만두는 고기소를 만들 때 물을 자작자작하게 부어서 통통 튀는 육즙을 만들어냈었다. 왕만두 집도 육즙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지금도 춘천으로 쫓아가서 이 집 비빔만두 먹고 싶다. 정말 맛있다.
나도 이제 군만두 좋아한다.
튀김만두가 그렇게 맛있었으니 고기만두는 평타 이상이겠다 싶었다. 역시나! 부담스럽지 않은 고기만두소와 쫄깃한(아, 이 표현 밖에 뭐라 다른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피가 따로 놀지 않고 그냥 입에 들어가면 녹는 것 같다. 그냥 내 입천장에서 고기만두가 녹아버린다.
특히 왕만두 사장님이 나오신 '생활의 달인' 방송에서 만두피 반죽물에 대한 비법이 소개되었는데, 잠깐 소개할까 한다.
만두피를 반죽할 때 넣는 물은 그냥 물이 아니다. 뭔가 풀어져 있는 뿌연 물이었는데, 비밀의 식재료는 바로 닭가슴살! 닭가슴살을 찜기에다가 놓고 찌는데, 그냥 찔리가 없다. 닭가슴 살에 무려 죽순(!!!)과 마늘쫑을 송송송다지고, 전분과 조청을 버무려서 찜기에 올려진 닭가슴살 위에 골고루 묻힌다. 그냥 묻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처덕처덕 발라놓는데, 닭 특유의 냄새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게 푹 쪄가지고 나온 닭가슴살은 다시 끓는 물속으로 퐁당! 그럼 아주 맑고 투명한 닭육수로 탄생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육수에서 닭가슴살을 과감하게 빼버리고, 찹쌀을 넣어서 5시간 정도를 끓여 곤죽을 만드는데,이제야 반죽물 완성!!! 감동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방법이 1979년 만두집을 열었을 때 누님에게 전수받은 방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긴 세월 만두집을 운영하면서 계속 만들어보고,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반죽해보고, 맛도 맞춰보고 하면서 개발한 방법 아닌가! 나는 음식하는 분들의 이러한 연구하는 자세,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내어 놓은 음식이 너무나 아름답게 여겨진다.
이집 김치만두가 또 명물이다. 모양을 보면 평소에 보던 만두 빚는 방법과 다르다. 약간 삼각형 같아보이기도 하고, 복주머니 같아 보이기도 하고... 찜기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것을 보면 참 다소곳이 예쁘다.
그런데, 하얗고 예쁜 만두를 한 번 먹어보면 말이 달라진다. 아주 "나 김치!" 하면서 성을 내고 있단 말이야. 이김치맛을 보면 하나도 안 익었다. 갓 담은 김치로 만든 김치만두다.
처음에는 내가 예상하던 빨갛고 알맞게 익은 김치가 아니고 아주 시뻘겋고 고집 세게 생긴 매운 맛이어서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첫 맛에 썩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호기심나는 맛, 계속 집어 먹어보면서 얘의 정체를 알고 싶은 맛이다. 그런데, 왕만두 집에서 식사를 거의 다 마칠 때쯤, 나는 이 만두맛이 좋아졌다. 이렇게 생김치의 고집을 잔뜩 담고 있는 이 맛의 매력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야~ 희한하네.
다른 것은 몰라도 만두소 만들기와 만두피 반죽은 꼭 사장님의 손을 거친다고 한다. 이날 갔을 때에는 외국인 직원분께서 만두를 빚고 계셨고, 사장님은 홀에 계셨는데, 목청이 아주 크셨다. 음식점에서 사장님이 목소리가 크면 나는 소화가 좀 안 되는데, "지금 내 얘기 들려? 여덣 번에 김치 하나 나간다고!"하고 고함을 지르시는 통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냥 나왔다.
이렇게 한 상, 만두 플렉스를 흡족하게 마치고, 남은 만두는 고이 잘 싸서 숙소로 가지고 갔다. 차갑게 식은 만두를 먹어보니 역시 왕만두. 특히 저 고집센 김치만두는 식어도 그 고집, 맛 그대로다. 식어도 맛이 변하지 않고, 풍미 그대로 가지고 있다.
1983년 5월 5일.
승객 100명을 태운 중국민항기가 춘천 미 공군기지에 불시착했다. 타이완으로 망명하려던 중국인 공무원 6명이 무장해서 납치를 한 사건이다. 이들은 기장에게 타이완으로 가라며 명령했지만, 기장은 그를 거부하고는 평양 쪽으로 향했고, 총격까지 가하면서 위협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춘천에 떨어진 것이다.
그때 중국은 전쟁 이후 우리와 수교 관계가 있을리 만무한 중공, 중국 인민 공화국. 국내에 있는 타이완 영사관과 우리 정부는 재빠르게 움직이며 무장 납치범 6명을 제외한 나머지 승객들을 맞이한다. 그러나 첫날, 춘천에 있는 모든 음식점들이 이들의 방문을 거부했다고 한다. 중공이 가지는 이미지는 나도 80년대에는 소련 못지 않게 무서웠으니까.
그러다가 통역을 맡고 있었던 화교협회장의 재치로 이 왕만두집 사장님 김영달 씨에게 밤늦게 연락을 해서 새벽부터 만두 80인분을 만들어서 가져갔고, 이 사건은 신문의 네 컷 만화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일화가 됐다. 그리고, 만두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이 이 만두 환대에 기뻐했고, 뭐 이야기 다 그렇게 흘러가듯이 92년 한중 수교의 초석이 되었다는 미담이다.
(혹시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꼭 말씀해주세요)
이 일로 '왕만두'집은 춘천에서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졌고, 춘천에 새로운 만두집이 생기면 모두 아류 마케팅, 미투 전략을 써서 무슨무슨 왕만두 집으로 조금씩만 살을 붙이고, 떼서 상호를 짓게 된 것이다.
CGV 건물 안 왕만두, 주안이네 왕만두, 우두동 왕만두 등등...
이 스토리가 바로 춘천의 수많은 왕만두집 존재의 비밀(?)이다.
식사를 다 하고 나오니 그제야 문 밖에 오후 3시 이후에 오시라는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그 3-40분 동안 다들 모여서 식사들을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