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가 자기네 반에 피겨 스케이팅을 타는 선수 기집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나보다. 김연아도 안다 그러고, 집도 부자랜다. 얼마 전 걔네 집에 갔었는데, 우리 곰돌이가 엑설런트 아이스크림을 좀 많이 먹었다나.
곰돌이 말로는 맘껏 먹으라고 포장을 까놓기에 정말 맘을 놓고 먹었는데, 나중에는 막 화를 내면서 돈 내놓으라고 했단다. 그래서 또 우리 딸은 용돈 모아 놓은 것 3000원을 줬다고. ㅡㅡ^
안 그래도 그간 곰돌이는 그 아이를 멀리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걔가 와서는 뜬금없이 화를 내며 우리 딸에게 이러더란다. - 너 우리 엄마 이혼녀라고 무시하는거냐? 그래서 우리 딸은 지지 않고 또 이랬단다. - 야! 우리 엄마도 이혼녀야. 까불지 마." (이것들이....ㅠ)
그 아이가 또 '양파'라는 이름으로 몇몇 애들을 모아서 클럽을 만들었단다. 그랬더니 곰돌이는 얼마 전 동요 대회 같이 나갔던 애랑, 또 다른 순딩이 한 명하고 이렇게 셋이
대항 클럽을 만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끼리끼리 일진 짓은 권하고 싶지 않다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 했고,
성원이 또한 초딩들은 아직 일진 짓을 하기에는 이르다고 그런다. -_-; 그런데, 딸 소속 순딩이 클럽 이름을 듣고 빵 터졌다.
#다진마늘
이렇게 우리 곰돌이는 고맙게도 아주 당차게 엄마의 위치와 사회적인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남편이 있고 그에 따른 또 다른 가족이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딸은 여전히 반쪽은 결핍이 되어 있는 상태다.
엄마니까 나는 그 비어있는 반쪽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딸이랑 단 둘이서만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찾아 먹으러 다니면서 이야기할 시간을 충분하게 확보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과는......
딸의 삶이 나중에 이야기해주겠지.
딸이 만들어낸 '다진마늘' 클럽은 와해된지 오래다.
그래도 곰돌이가 설립한 클럽의 맵싸한 설립 취지와 쏘울은 영원하리라!!!
지난 글에서도 남겼듯 곰돌이는 자칭 '15년 째 모쏠'이라고 한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그랬다.
너 같이 이쁜 아이가 그렇게 오랜 기간 모쏠일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곰돌이는 킥킥대며 엄마 세상 모르는 말 좀 하지 말라고 입틀막이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남자 친구들도 많았고, 심지어는 7살 그 꼬꼬마 때에도 좋아하던 남자애도 있었으며, 인기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온갖 요망을 다 떨기도 하곤 했었다.
그런데, 딸은 아무리 관찰해도 나와는 영 다른 것이다.
아이와 내가 자란 환경을 세세히 짚어봐도 다르다.
나는 학교에서 '아빠 직업'을 조사해오라고 하면 정말 생기발랄, 기세등등 열심히 해갔다.
가족 그림을 그리라고 해도 가운데 파마한 엄마, 양복 입고 안경 낀 아빠, 그 밑에 나, 동생......
이렇게 전형적인 네 식구 로열 패밀리(?)였다.
그러나, 곰돌이에게 이런 숙제가 떨어지면 엄마인 나는 학교 홈페이지에 항의 서한을 쓰기에 바빴다.
요즘 한부모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눈치 없이 숙제를 내 주면 엄마나 아빠가 없는 아이들의 박탈감은 어찌 할 거요 운운하며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똑같은 남녀 공학 중학교 출신인 모녀는 너무나 다르다.
혹시 곰돌이에게 조금은 남 다른 성 정체성이 있을지 살펴 보았지만, 지금 이성이고 동성이고 간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아이에게 최고의 관심은 '홈런볼'을 위시한 '먹을 것'으로 관찰되었다.
곰돌이가 아주 어려서 대여섯 살 때 쯤, '새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곰돌이는 외할머니 댁과 나와 새 남편의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다.
아무리 아빠라고 해도 피 한 방울 섞인 것은 아니니까 조심해야겠다는 본능적인 경계심이 발동을 했었던 까닭이다.
당시 그 남편은 아이를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고,
조카가 있긴 해도 하는 일에 바빠서 별 관심도 없었던 듯 했다.
그래도 나와 결혼을 결심한 이후로는
곰돌이를 다른 이들에게 '딸'이라고 소개하며 정을 붙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나 또한 이 조합이 골수 이식을 하는 것만큼 힘든 조합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갖은 노력을 다해보았다.
거의 매 주말이면 셋이 함께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가면 아무래도 삶의 터전에서 느끼는 지루함이나 무기력함에서 좀 벗어날 수 있고, 그러면 가족을 비롯해 주변인들에 대한 시각도 좀 달라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나, 예측대로 새아빠와 딸이 '가족'이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새엄마와 딸, 새아빠와 아들이 아닌 성별이 다른 것도 큰 걸림돌,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거꾸로 생각하면, 엄마인 내가 먼저 이렇게 딸을 둘러싸고 남편을 경계하고 있는데 그 어떤 장사인들 이 마음의 벽을 깰 수 있었겠나 싶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가장 후회되는 것이 우리의 결혼식날 곰돌이를 억지로 화동을 시킨 일이다.
엄마 결혼식을 할 때 너가 화동을 하면 예쁜 드레스를 입을 수도 있고, 머리도 예쁘게 묶어준다고 약속했다.
예쁜 꽃가루도 앞에 뿌리고 걸어가면서 사람들의 박수도 받을 수 있다고 꼬심꼬심......
결국 한다, 안 한다, 울고 불고 하다가
결혼식 당일에는 드레스 입으면서 신나가지고 꽃도 펄럭펄럭 잘도 뿌려주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면서 곰돌이도 어떤 날은 새아빠와 함께 깔깔대고 재미나게 놀기도 하고, 한 번은 둘이서 먹을 것을 사러 가게도 갔다 오기도 했다.
정말 아이를 전적으로는 아니어도 중간중간 함께 놀아줄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질마저도 확 올라갔다.
이래서 신은 아이를 키울 때 남자와 여자, 2인 1조 만들어 놓으신 건가......
이 모든 것은 사실 어린아이였던 곰돌이의 노력이 80프로 이상이었던 것, 잘 알고 있다.
꼬마녀석이 엄마와 '새아빠'를 위해 일부러 노력해준 것이었던 것, 안다.
피치못할 이유로 그 남편과는 1년도 채 못 살고 헤어졌다.
그냥 내가 마음에 걸려서 예민해져서 그렇게 느끼는지 몰라도
그 이후로 곰돌이는 남자 어른을 향해 전혀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이어 학교를 가도 남자애들하고 그냥 친구처럼 놀기는 해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설렘을 느낀 적이 없었던 듯 하다.
그것이 혹시 나 때문인가 싶어 말은 못해도 스을쩍 아릴 때가 있다.
대놓고 이야기하면 엄마 때문에 남자는 어려서부터 아주 질려버렸나 싶은 걱정이 드는 것이다.
가끔은 평창 스키장 근처 숙소에서 주인아저씨가 숯불 내어주시면서 아우, 이 집 딸래미 똘똘하게 생겼네요 하니까 곰돌이를 바라보며 "네! 제 딸이예요!"하면서 껄껄대고 활짝 웃던 그이가 가끔은 생각이 났었다.
'제 딸'이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렇게 고마우면서도
내 딸을 '제 딸'이라고 훅 치고 들어오는 것에도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곤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