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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 없는 애들은 어떻게 공부해요?

학생이 학교를 안 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by 황섬

평소 아무리 뒤꽁무니 끌어다 놔도 지가 유레카!를 외치지 않으면 영 버릇이 안 드는 것이 공부라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게으른, 아니면 무책임하기까지 할지도 모를 신념이 있다. 그래서 슬슬 곰돌의 주변을 맴돌며 "요즘 학교 어때?" 하고 잽만 날리는 엄마로 살아왔다.

나는 정말 중학교 내내 공부 하는 방법도 모르고, 목표를 성취해내는 재미도 없다가, 고등학교 때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어느 날 하루만에 '아, 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개 같이 들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인간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진 상황! 그래서 사람한테는 모두 다른 '유레카!' 타이밍이 있는 것임을 그때 알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치더라도, 이건 내 상황이고. 어쩌면 엄마 개인의 '강렬한 경험' 때문에 아이의 인생도 같은 색깔로 칠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주 가끔씩 걱정도 되긴 하는데, 여하튼 곰돌은 현재,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행복한 중학생이다.


곰돌의 학교는 지금까지 줌을 이용한 실시간 수업이 아니라, 녹화된 수업을 일정 시간 안에 온클(온라인 클래스)에 들어와서 듣는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다보니 아침 느즈막히 침대와 합체된 몸을 부스스 떼어내서 온클 틀고 옆에 놓고 푹 잠들어버리는 패턴이 거의 매일 반복되는 것이다. 제 공부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관뒀다. 한참 잠 많은 나이, 저거 일으켜 세운다고 해서 제대로 머릿속으로 들어오겠나 싶고.

어렸을 때 아침에 늦잠 자던 날을 기억한다. 엄마한테 왜 나 안 깨웠냐고 빼액! 소리지르고 학교로 달려가던 날 아침. 선생님한테 또 혼날까봐 마음은 방망이질을 치는데, 몸만은 완전히 개운하지 않았었나. 복도에서 벌 서고 교실에 들어서면 늦게까지 푹 잔 덕에 선생님 말씀이 쏙쏙 들어왔었지.


- 엄마, 이제 실시간으로 수업한대. 아 씨...

- 언제부터? 그럼 줌으로 수업듣는거야? 너 이제 수업 틀어놓고 자는 짓 따위는 못하겠네.

- 어... 완전 빡세질 것 같아.


바로 오늘 아침의 대화다. 귀여운 녀석... 쌤통이다........... 하다가 보니 어랏! 얘는 지금까지 뭘로 수업을 들은 거지? 줌 하려면 카메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엄마가 애 공부에 관심없다손 치더라도, 환경마저도 이리 열악하게 굴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는 지금까지 초등학교 때 씽크빅 했을 때 사용했던 타블렛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기계가 문제없이 돌아가니 와이파이만 잘 터져준다면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었단다. 그리고, 문제는 곰돌이는 노트북이 없다는 사실. 왜 아이한테 노트북을 사줄 생각을 못 했을까. 게다가 나는 하루종일 노트북 가지고 노는 사람이라 아이한테 잠시 대여하지도 못하는 형편인데...

그런데, 마음과는 다른 소리가 훅 튀어 나왔다.


- 줌, 핸드폰으로도 돼.

나를 아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곰돌.

- 엄마, 어떻게 수업을 하는데, 핸드폰 이렇게, 이렇게 보면서 하라는거야?

- 왜. 엄마도 회의 줌으로도 해봤어.

한숨을 푸욱~ 쉰다. 곰돌.

- 그리고, 지금 이 타블렛 자꾸 '웅진 씽크빅'이라는 화면만 나오고 잘 뒤로 움직여지지도 않어. 카메라도 안 될걸. 어떡하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대면 실시간 수업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기기를 마련하기 어려운 친구들은 오늘 저녁까지 선생님께 카톡을 드리면 마련해주신다고 했단다.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지금 내 노트북이 50만원대도 안 되는 무척 무척 보급형인데다가, 구매한지 이미 3년이 되었다. 용량은 주변 분의 도움을 받아 늘려는 놓았지만 전국 방방곡곡의 만두 사진으로 가득가득 차서 그런가 뭔가 내 성미만큼 얘의 속도가 따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키보드가 말을 안 들어서 갈아주기도 했는데, 지금 뒷판 나사 2개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카페에서 일할 때 화장실을 가면서 지갑은 놓고 가도, 노트북은 꼭 챙겨갈 정도로 소중한 내 밥줄인데 지금 조금 불안불안했던 상황이긴 했다.

말하자면 식당을 오픈해 놓고, 기본 주방은 세팅이 되어 있지만 식기 세척기나 대용량 냉장고 등 장사의 효율을 높일 기자재들이 부족한 격.

내가 노트북을 새로 사고,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을 비워서 곰돌을 줄까. 아아. 이건 지금 카메라 기능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럼 카메라를 따로 사서 달아야 하는 것인가. 너무 싸구려를 사니 이리 불편하구나.

쿠팡을 들어가서 노트북을 검색해보니 적어도 100만원은 넘겨야 쓸만한 것이 있겠구나 하는 계산을 하게 됐다.


초기 컴퓨터의 형태라고 한다. 디자인이 나름 매우 매력적이다. 저 까만 창....



- 노트북 사지 마. 정말 돈 아까워. 그거 가지고 딴 것 맛있는 것을 사먹자.

곰돌? 정말?



오후에는 볼일이 있어 은행을 들렀다 2층 대출 코너에 가서 앉아 있는데,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직원들이 정말 쉴 새 없이 상담을 하고 있었다. 상담을 하는 와중에도 전화벨을 계속 울린다. 숨막히는 광경이다. 나는 대출을 받으러 온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타는 속들이 다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서 지옥이 여기 있구나 싶었다.

직원이 받는 전화 통화 내용도 모두 짐작컨데 '재촉'이다.

언제 처리 돼요? 결과 언제 나와요? 언제쯤 알 수 있어요? 빨리 처리 부탁드려요. 이번주까지는 꼭 해주세요.

아. 그 안타까운 목소리들... 은행, 특히 대출 업무를 받는 직원들의 말 한마디는 돈이 급하게 꼭 필요한 서민들에게는 지옥과 천당을 오가게 하는 티켓과도 같다.

나도 지지난 주 금요일까지 결과 알려준다고 해서 하루종일 전화기만 손에 꼭 쥐고 있다가 연락이 오지 않기에 주말을 무겁게 보냈다. 추석 명절 전 월요일에도 전화를 해볼까 말까 하다가 너무 재촉하면 안 좋아하겠지? 하고 그냥 꾹꾹 참고... 그래도 해볼까. 우는 아이 떡 하나 더주지 않을까 등등...

사람의 마음이 이리 조급해진다.


은행을 나와 요즘 너무 기력이 없는 듯 해서 오랫만에 몸 보양을 하려고 삼계탕집에 들어갔다. 나는 닭이 그렇게 잘 맞는다. 몸이 허할 때 닭국물에 땀을 쪼옥~ 빼고 나면 기가 보해지는 마법을 몇 번 경험했다.


녹두 삼계탕


그런데, 뉴스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의 온라인 학습 환경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학생이 학교를 매일 안 가는 시대가 됐다. 이렇게 온라인 학습, 비대면 학습으로 학교 수업 방식이 대대적, 전 지구적,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학교가 생긴 이래, 학생이 훈장님께 혼나며 훌쩍이는 김홍도의 그림의 풍경을 완전히 보지못하게 될 수도 있는 시대를 최초로 맞이했다. 아마 앞으로 오랜 시간을 거치며 학교가 주요 무대가 아니게 된 우리 아이들은 '친구'의 개념마저 바뀔지 모른다.


온라인으로 수업 형태가 전환되자 학생들의 학습력이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고 한다. 지금 우리애만 떨어진게 아니다. 우리 나라만 떨어진 것도 아닐 테고. 지금 지구촌에 살고 있는 우리 친구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다 떨어졌을 터이니... 경쟁 학습의 측면이 아니라 독해력이나 정보에 대한 이해 같은 기본적인 능력이 떨어질까 마음이 쓰이기는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늘 어른들의 예측을 뛰어 넘어주었지. 어른들이 그리는 능력치와 적응력의 범위를 항상 뛰어넘어 나를 놀라게 해주었다.


닭국물을 걱실걱실 떠먹으며 생각했다. 세상이 이렇게 완전히 변해버렸는데, 정말 집에 컴퓨터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 걸까.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는 조손가정 아이네 집은 와이파이 안 되는 집도 있을 텐데... 아. 복달임도 아닌 삼계탕을 먹고 있는데, 이 호사에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고등학교까지 아이들의 공부는 선택이 아닌 권리다. 학습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바다.


지난 봄,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비하여 서울시 교육청은 컴퓨터와 타블렛을 364억원을 들여서 52000여 대를 구매해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지원한다고 했다. 아마 곰돌네 반 선생님이 준비하기 어려운 학생은 선생님에게 오늘까지 알려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때 마련한 컴퓨터들이 아닌가 싶다.

디지털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차원의 사업이라고 하는데, 지금 한참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이 핸드폰 줌 켜가면서 눈 나빠지게 코 박고 공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일단 우리집은 집에 돌아가서 씽크빅 타블렛이 잘 되는지 확인하고, 그 다음 생각해보려 한다. 아니... 이참에 노트북을 한 대 구매를 해서 곰돌에게 '생애 최초' 컴퓨터를 지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방, 내 공간 한참 중요한 나이인 중2 소녀. 할아버지 컴퓨터, 내 컴퓨터 메뚜기 지금까지 잘도 하며 자랐다. 나만의 컴퓨터가 한 대 있어야겠지.

마침 아까 들른 은행에서도 희망의 사인을 보여준다.

행운이 코로나 시대, 우리 모두에게 내려와 앉아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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