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깨달음을 준 만두국
날씨 때문인 걸까. 금요일 오후, 유명한 만두국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청주로 향했다. 두 시 경에 출발했으니까 대강 네 시나 조금 넘어 도착하면 이른 저녁으로 만두 식사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이게 웬걸. 서울에서 청주까지 네 시간이 넘게 걸리는 강행군, 이건 무슨 복병인지! 길이 너무너무 많이 막히는지라, '시속 몇 킬로미터 단속 중'이라는 네비 언니의 말씀마저도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거의 일곱 시가 다 되어 껌껌할 때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쓰레빠를 끌고 나선 길. 꼭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숙소에서 만두국집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피곤한데, 아주 잘 됐다!
간판을 보니 오래 된 노포였다가 옆에 간판 하나 만들어 추가로 달고, 리모델링을 한 것 같다. 내부는 보다시피 매우 깨끗하다.
주인장의 자부심이 엄청 느껴지는 '만두 맛있게 먹는 법'을 보라! 콩기름, 돼지 비계 들으로 육즙을 내는 만두가 아니라고 딱 못 박으신다. 고랭지 배추로 담근 김치와 괴산고추로 만든 지고추가 만두소의 주인공이 되겠다.
그런데, 상호부터 매운 냄새가 솔솔 풍기는 이 고추만두국집은 5-60대 아저씨들로 가득차서 땀 뻘뻘 흘리며들 한 그릇씩 뚝딱 하고 계실 것 같지만, 예상 외다! 젊은 커플들이나 2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이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테이블 한쪽에 케이크가 놓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특별한 날, 기념일이나 생일 정도 되는 날인 듯 한데, 저녁 만찬을 뭐! 고추만두국집에서!?
저 커플 말고라도 '맛있어, 존나 맛있어, 매운데 존나 맛있어' 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아~ 젊음!
고추만두국에다가 찐 고추만두 하나를 시켰다. 워낙 만두가 매우니 따로 어린이 떡국도 마련해두시는 센스! 매운 낙지집에 가면 꼭 돈까스 같은 어린이 메뉴가 하나씩 끼어 있는 배려가 좋았다. 혹은 막국수 집에서도 아기가 한 그릇 다 못 먹으니 작은 양의 '아기 막국수'라는 이름의 귀여운 메뉴를 마련하시는 정성!
재료를 봐도 만두에 들어가는 두부콩이 미국산인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산으로 올킬!! 워낙 국내산이 비싼지라, 나도 우리집에서 소고기 쓸 때에는 한우 못 사고, 호주산을 사는데...
그런데, 참 궁금한 것이 같은 소라도 바다를 건너오면 맛이 달라지는 걸까? 지방이 사라지는 걸까? 가공 과정 중에서 가격 차가 나는 것일까? 확실히 한우가 맛있긴 맛있는데, 고기의 퀄리티가 높아서 기름지고 맛있는 것일까, 아니면 질 좋은 상품은 자국에서 소비하고, 나머지 등급을 수출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고기에 대해서 앞으로 조금은 공부를 해두어야겠다.
주문을 하고 조금 있으니 이렇게 기본찬이 나온다. 김치, 단무지, 간장. 김치야 고랭지 배추로 담근 것이니 아삭하고, 무난한 맛이었다. 관건은 단무지! 나는 만두집이라면 응당 최고의 단무지를 주문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두와 단무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환상의 짝꿍이다. 만두집에 가서 주는 단무지는 꼭 한 봉지씩 더 받아서 집에 와서 술안주용으로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는다. 그때, 단무지에서 상쾌한 신맛이 나면 참 기분이 좋다. 가끔은 비닐 봉지에 넣어 꼭 묶어 놓고는 실온에서 오래 놓는 바람에 걸레 같이 너덜너덜 상해버린 단무지를 먹다 뱉었던 기억이 있어 더욱 예민하다.
먼저 찐만두부터 나왔다. 얼마나 칼칼하고 맛있게 매울지 기대되는 순간! 접시에 가지런히 놓아준 모양이 예뻐서 기분이 좋아졌다.
자, 얼마나 매울지 한번 맛을 보자! 역시나 한 입 먹으니 매운 기운이 훅 입안으로 끼친다. 그리고, 중간중간 파고드는 고추맛! 그렇지 이건 고추만두라 하였으니 고추맛이 나는 것은 당연할 테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고추가 보이지 않는다. 지고추를 아무리 잘게 다졌다 해도 왜 고추가 안 보일까. 생각만큼 아주 맵지 않은 적당함, 상쾌한 매운 맛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만두피와 만두소가 따로 놀거나, 만두소의 식감을 두꺼운 밀가루피가 눌러버려 떡처럼 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고추만두 패스!
다음 선수! 오늘의 주인공인 고추만두국이다. 찐만두에서 맛보았다시피 육즙이 줄줄 흐르는 부드러운 만두는 아니지만, 만두를 반으로 갈라 빨간 국물에 적셔 먹으면 기가 막힌다. 배가 많이 고팠던지라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골국물도 아니고, 장칼국수 국물 같은 것도 아닌, 그냥 힘찬 고추장 국물! 아주 얼큰하고, 시원하다. 먹으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나이가 드니 자꾸 뭘 먹을 때 땀 흘리고, 코 흘려서 미치겠다. 이제는 냉면을 먹어도 땀 닦게 생겼다. 게다가 숟가락은 입에 왜 그리 조준이 안되는지... 점점 눈, 코, 입, 이마 온통 뭔가를 흘린다. 서럽지는 않다. 입만 즐거우면 되니까!
워낙 싱겁게 먹고 마시는 내 입맛에는 살짝 짜지만, 좋다. 여리여리 곱디 고운 만두국이 아니고, 힘찬 스웩을 시전하는 사나이의 맛이다! 만두소에 꽉 찬 저 고랭지 배추를 보자! 숭덩숭덩 썰어놨다. 먹기 좋게 자잘하게 다지는 것 따위! 저 아삭한 식감은 주인장께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리 부드러운 식감의 만두는 아니지만, 또 다른 매력을 준다.
땀, 콧물 흘려가며 진격의 만두국을 먹다보니 갑자기 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안 좋은 운대를 겨우 지나가면 또 다른 산등성이가 나오겠지. 삶이 팍팍해서 힘들어 죽겠으면 이런 만두국 따위 위로는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집 떠나와서 맛있는 만두국집을 쫓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이것도 내가 지금 살만 하니까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급작스럽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반복해서 다가올 산등성이를 어떻게 넘어야 할까 생각에 안 그래도 매운 만두국이 더 맵게 느껴지고...
너무나 좋아하는 만두를 먹으면서 글을 쓰는 행복한 사람. 멀리 멀리 느리게 느리게 돌아온 나의 행운에 감사드린다.
아, 어쩌다보니 기승전 착한말이 되어버렸다.
월요일은 휴무,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가게문을 연다.
청주 서문시장 근처에 위치한다. 정문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대로변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