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넷, 새색씨 기억 속의 만두전골
삼청동 북악스카이웨이를 구비구비 지나면 정릉이 나온다. 한때, 나는 이 정릉 산 몇 번지의 주소를 지닌 아파트에서 산 적이 있었다. 당시 전남편이 청와대 경비대대에 근무를 하고 있어서 군인 아파트가 정릉 산자락에 자리해서 시작된 생활이었다.
처음 결혼하고 꿈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아무리 서울이라도 산 속에 아파트가 있으니 저녁이 되어 바람이 살랑 불면 나무 솔향기가 후욱 끼쳤다. 이사하던 날 집 정리를 다 해놓고는 마냥 좋아서 남편 팔짱을 끼고 놀이터 앞에서 이런 망언을 뱉은 기억이 난다.
- 아, 우리 콘도로 놀러 온 것 같다. 그지?
그때는 펜션의 개념이 없었을 때이니 콘도로 놀러간 것 같은, 철딱서니 없는 마음이었다. 이 철부지 새색씨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몰랐으니.
삼청동 다락정은 남편이 근무하던 부대 바로 옆에 있었다. 지금도 보니까 '나 군부대요'라는 티는 싹 없애고, 그냥 무슨 큰 회사가 하나 있구나, 가끔 군복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구나, 공무원들인가 그런 생각하게 하는 의아한 건물이 하나 있다. 거기가 경비대대였다.
신혼 때라 가끔 택시나 마을버스를 타고 넘어와서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그 앞에서 기다리곤 했는데, 그때도 만두를 좋아했던 나는 남편과 다락정에 자주 왔었다.
이 멋진 벽돌 건물이 다락정이다. 담쟁이 넝쿨이 29년 된 다락정의 역사를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한참 다니던 때가 1998년 무렵, 그리고, 다락정이 문을 연 것이 1991년이라고 하니 그때에도 만두집 8년 차의 구력을 보여주던 때였다.
사실 한 동안 이 집 만두 맛이 그렇게 그리웠으면서도, 거의 이십 년 가까이 가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다락정이라는 존재를 까먹기에 이르렀는데...
98년 추석, 결혼 처음 하고 시댁인 부산에 용감무쌍하게도 혼자! 내려갔다. 남편은 명절 잘 챙길 수도 없는 직업인지라 어쩔 수 없기도 했고 말이다.
가 보니 제사는 의성 쪽으로 가서 지내고, 다시 부산에 돌아오면 손님 맞이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때 한참 임신 중이라 계속 전 부치고, 고기 굽고 하는 것이 영 고역이었다. 제사 마치면 좀 나물에다가 고추장 넣고 한 그릇 칼칼하게 비벼 먹어야지 했는데, 어르신들이 영 김치도 안 내놓고, 고추장도 안 주시는 것이다. 우리집은 제사 마치면 바로 고추장 종지랑 새로 담은 김치가 등판했는데... 우리집이랑 좀 다르구나 생각하고, 저 고추장하고 김치 좀 주세요. 했다가 그만...
- 서울 며느리라 뭘 모르나보네. 제사 지내고 고추장 비벼 먹는 것 아냐. 고춧가루 보면 귀신이 못 와요.
결국 고추장 비빔밥은 얻어 먹지도 못하고, 이것으로 계속 놀림만 당했다. 그때 경북의 제삿밥 문화를 처음 알게 되었다. 제사 지내고 나면 빨간 고춧가루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는다. 밥도 그저 간장에 비벼 먹을 뿐...
귀신도 느끼해서 도망가게 생겼구만...
그 뒤로 세꼬시 회를 접시에 담는데도 내가 소복하게 담았더니 어머님은 사람들 앞에서 이거 하나도 맛 없어 보인다면서 다 펼쳐 놓으시는가 하면, 갈비를 재면 누가 양파를 이렇게 둥그렇게 썰어서 집어 넣냐면서 다시 촙촙촙 잘게 써셨다. 뭐 내가 다 부족한가 보다 해도 늘 사람들 앞에서 나를 혼내고, 나랑 둘이 있으면 다정하게 말 한 마디 안 거시니, 나는 나대로 속이 굉장히 상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피아노 위에 아들 생각하며 매일 떠 놓는 정화수만 바라보고 계속 두 손만 '파리처럼' 싹싹 비셨다.
정작 보고 싶은 아들은 안 내려오고, 넘의 집 딸인 며느리만 내려오니 그게 마음이 불편하셨었나 보다. 게다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며느리한테 별 정도 들지도 않았을 테고.
내 기억에는 예전에는 저렇게 테이블이 없고, 모두 앉은뱅이 상이었던 것 같다. 확실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내부는 깔끔하고, 천정은 저렇게 한옥의 방문으로 고즈넉한 멋을 부렸다. 저쪽 들어오는 입구 쪽에 커다란 북어도 가게의 대박을 기원하며 위에 예쁘게 얹혀져 있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어서 나가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까먹고 말았다.
다락정의 시그니쳐 메뉴는 만두전골이다. 김치와 토장 이 두 가지가 마련되어 있다.
워낙 혼자 만두 먹으러 다니니 만두 전골은 언감생심. 그런데, 다른 데는 몰라도 다락정만은 꼭 그 만두 전골, 옛날맛을 찾고 싶었다. 혹시 몰라서 김치만두전골 1인분 해주실 수 있냐고 물었더니 사장님께서 흔쾌히 그렇게 해주시겠단다. 야호!
꼭 명절 아니어도 전 부쳐서 먹기 좋아하는 나는 모듬전까지 시켰다.
기본 찬은 이 네 가지. 하나하나 정말 훌륭하다.
멸치 볶음은 내가 썩 좋아하는 반찬은 아니지만, 그래도 짭쪼름해서 전골 나오기 전까지 계속 손이 갔다.
어묵 볶음은 어떻게 하면 저렇게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지, 한 번 삶아서 볶아야 저런 부드러움이 살까. 마늘쫑이 들어간 것도 셰프의 킥!
무생채는 여기 생채만한 데 못 봤다. 다른 데는 그냥 거칠게 맵기만 생채를 내놓는 곳들이 많다. 간혹 생 마늘 씹히는 맛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다락정 생채는 따로 사오고 싶을 정도다.
김치는 포기 김치를 가지런히 잘라 내온다. 이거 먹다가 남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소곳이 담겼다.
반찬 이것 네 개만으로도 밥 한 공기 뚝딱 하겠다.
이게 1인분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만두국 정도 양을 생각했었다가 이런 전골그릇이 나오니 놀라지.
명절에 차례 마친 날 저녁이나 다음 날이면 칼칼한 김치에 저렇게 전을 넣어서 끓여 내는 찌개를 정말 좋아했는데, 다락정 전골이 바로 그 형태다. 아무래도 모듬전이 메뉴에 있으니 이렇게 넣어주시지 않을 리 없다.
모듬전에는 나오는 형태와는 조금 다른 동그란 고기완자전이 전골에는 들어가 있다.
여기서 잠시!
찌개, 전골, 탕, 국 차이점을 알아보고 넘어가자.
나는 국립 국어원에서 이러쿵 저러쿵 이건 맞다, 이건 틀리다 하는 것에 굉장한 알러지가 있다. 사실... 말이란 것이, 특히 맞춤법이나 쓰임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에게 편리하게 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찌개는 재료 다 때려 넣고, 고추장, 된장, 새우젓 등등으로 양념해서 바특하게 끓여내는 형태를 가리킨다.국물이 걸죽하다.
전골 또한 이렇게 재료를 넣고 국물이 끓이다보면 걸죽해지는 것은 동일하지만, 부루스타나 작은 화로 같은 곳에 얹어서 상에 서빙이 되어 옆에서 계속 끓이면서 떠 먹는 점이 다르다.
탕은 찌개 보다 국물이 훨씬 맑고, 양이 많다. 건더기와 국물의 비중 차이라고 한다. 그리고, 상 위의 개인 국그릇에 미리 떠서 나온다.
국은 탕의 한글이다. 탕을 보고 국의 존대어라고 하는 글도 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어르신들 이야기 하는 탕국은? 서울역전앞?
아.. 다락정 만두. 김치만두 추억의 그 맛이다. 부드러운 칼칼함. 국물도 먹다 보면 숟가락으로 부족해서 국자로 퍼먹게 된다. (물론 1인 전골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멍게랑 미더덕으로 낸 육수라 하는데,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부산에서 시어머니께 그렇게 구박을 받으면 버틴 5일... 결국에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펑펑 울고 말았다. 나 정말 너무 집에 가고 싶다고 말이다. 지금이야 에잇, 차례도 끝났는데, 내가 왜 여기 계속 있냐! 하면서 기차표 끊어서 당장 올라왔겠지만 그때는 그러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일정대로라면 하루 더 버텨야 할 것을 남편 도움 겨우 받아서 올라올 수 있었다.
(아니, 왜 이러한 일부 시어머니들은 별로 예뻐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며느리를 오래 끼고 있으려는지 이해 불가다. 오래 오래 갈구고 싶은 심술궂은 마음일까)
올라오자마자 집에 가방 놓고 바로 찾아온 곳, 다락정.
남편은 부대에서 나와 이곳 다락정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쫑알쫑알 '니네 엄마' 욕을 하기 시작했고, 그 엄마의 아들은 말 없이 웃으면 전골을 먹는다. 배불뚝이가 된 어린 아내가 고생 많이 하고 왔는데, 별반 수고 했다는 말도, 힘들었겠다는 위로도 없다.
벌써 22년 전 이야기다. 다 지난 이야기.
다락정 전도 일품이다!! 동태전, 호박전, 고기완자.
어려서는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다들 안 먹는 호박전을 만들어대나 했더니, 이것이 일품 재료라는 것을 안 것이 얼마 안 된다. 구우면 아주 달다. 이제야 호박맛을 알게 되었으니 어른이 된 것일까.
이 호박전이 만두 전골 국물에 흠뻑 적셔져 나오면 또 얼마나 기가 막힌지!!!
전골에는 이렇게 슥슥삭삭 밥 비벼 먹는 맛이 있다. 그리고, 쫑쫑 썰린 돼지고기까지 풍미를 더해주니 한끼 든든한 식사가 되었다.
내가 사진을 이리저리 열심히 찍어대니 꽁지머리를 하신, 음식 내주시는 분께서 다가오시더니 슬쩍 이러신다.
- 맛있게 드시고, 소문 좀 여기저기 내주세요.
백종원 아저씨도 그러셨고, 음식점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 뿐 아니라, 좋은 기운을 받고 가야 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인이 목소리가 크거나, 우울해서 푹 가라앉아 있으면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사람들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신기하게도 손맛은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기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내오는 사람의 마음을 백 프로, 그 이상 반영한다.
그런데, 여기 음식 내주시는 꽁지머리 아저씨를 뵈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의 오너거나, 가족이 아니면 이렇게 더 이상 활기차고 밝게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쭈었다.
- 아, 저는 이 집을 여신 형님을 일찍 만나서 이곳이 91년 가게를 열었고, 저는 92년부터 합류해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형님께 인수를 받았구요.
역시 사장님이셨구나! 밝고 유쾌한 사장님이시다.
- 어머,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지금 거짓말 하고 계시겠니.
-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한 곳에서 너무 오래 일했죠.
역시 유쾌한 농담도 잊지 않으신다.
직원이었다가, 결국 식당을 물려 받으신 입지전적의 인물이시다!
나 또한 이 집 98년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심지어 큰 애 태교 음식이기도 했는데, 중간에 사정이 생겨서 발길이 잠시 뜸했다가, 만두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다락정만은 도저히 뺄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왔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작년에 딸이랑 몇 번 오기도 했고.
그랬더니 만두 에세이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시면서 혹시 다락정이 소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책 나오면 꼭 연락 달라고 하신다. 당연히 드리겠다!
이어서 매주 화요일, 아니면 수요일은 만두 빚는 날이라 만두 빚는 것을 보여 드릴 테니 오라고 하신다. 당연히 가겠다!
다음 번에는 만두국과 녹두 지짐을 먹어보려고 한다.
다락정. 여전히 변하지 않아서 너무 고맙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127
매일 오전 11시 ~ 오후 9시 30분
휴무: 추석, 설날 연휴 전체
차를 가지고 오시는 분들은 삼청동 주차가 장난 아님을 각오들 하고 오시는 거겠지만, 다락정 건너편 씨유 골목으로 들어가면 공영 주차장이 있으니 대고 오시면 됨.
물론 나만 아는 골목길 주차가 있지만 찜찜할 수 있으니 안 가르쳐 드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