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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회령 손만두국

꿈★은 이루어진다

by 황섬

집이 서울의 북쪽에 자리한지라 주말의 지긋지긋한 교통 체증을 제외하면 인근 교외로 나가기 참 편리하다. 그래서 간단히 아이 데리고 가평이나 양평을 가는데...

오늘은 내게 각별한 양평의 회령 손만두를 소개할까 한다.


아무리 다른 만두집을 간다 하더라도 나는 매번 그 집에 맞는 이야기와 글감이 떠올랐다. 고민이 아주 많았을 때 갔던 만두집이라든지, 혹은 만두집에서 만두를 먹다가 만세!! 소리가 나올만한 좋은 소식을 들었다든지... 혹은 이 만두를 어느 좋은 사람이랑 먹었다거나... 나와 만두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적는다. 그냥 그것이 만두 에세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 양평 회령 손만두국은 별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이 집은 내게는 '만두로드'의 발상지로 강렬하게 자리잡은, 내 인생 만두집이라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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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 도서관쪽에서 용문산 가는 길, 도로를 주욱 따라가다 보면 왼편에 이렇게 낮으막한 만두국집이 나온다. 이집 주인장의 시어머니가 이북 회령분이시라고 한다. 지금은 따님과 아무래도 며느님처럼 보이는 분도 함께 하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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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만두방이라고 해서 저렇게 어떤 아주머니 분이 앉아서 차분하게 만두를 빚으신다. 안에서 만두국을 내주시는 분께 저기 만두방에 계시는 분이 혹시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가게에서 오래 일하시는 분'이라고 답을 해주셨다. 분명히 나는 그렇게 들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려고, 참고 삼아 허영만의 백반 기행 46회 양평편을 보니 어랏!!! 회령 만두국집 사장님 박경숙 씨라고 한다. 시어머님께 물려 받은 회령식 만두 만들기 40년 인생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내가 헛것을 들은 것인가?

가운데는 내가 찍은 것이고, 오른쪽은 백반 기행 방송을 찍은 것이다. 두 분이 다른 분일까? 앞치마는 빨간 것이 똑같고... 두건이야 음식을 만드는 분들이니 각자 쓰신다 치더라도 아무리 봐도 두 분은 다른 분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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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백반 기행' 방송 나가면서 흔적을 남겨두고 가신 허영만 아저씨와 장현성 배우.

허영만 아저씨의 입맛은 내가 그 방송을 하도 많이 봐서 아주 훤히 잘 안다. 그냥 아무 음식이나 다 방송용으로 와! 맛있다! 이러면서 엄지척 하시는 것 잘 못하시는 솔직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아저씨는 매운 것 잘 못 드시고, 이렇게 밍밍하고 슴슴한 국물을 좋아하신다. 만두는 굳이 찾아서 드시지 않는 음식이라고 하시는데, 이날 방송에서는 국물 한 번 떠서 드시고는 와! 맛있다!를 연발하시면서 아주 잘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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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장기라는 김치 등장!

과연 물김치는 국물이 최고로 깔끔했다. 멀리 회령에서 온 시어머니의 김치 레시피에서 충청도 며느리의 손길이 합쳐셔 고춧가루 국물이 좀 더 진해졌다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김치가 바로 이 석박지다! 좀 커다란 크기의 깍두기라고 봐도 될까.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서 석박지와 깍두기의 차이점을 알아봤는데, 역시 크기의 차이가 구분점이고, 석박지는 배추 김치 담다가 무가 남아서 그 양념으로 버무린 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깍두기 양념이 좀 더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이집 석박지 굉장히 맛있다. 따로 판매하시면 사가지고 오고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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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국 옆에 특이 붙은 것은 무엇인지 여쭈어보니 일반은 만두가 5개, 특은 7개가 들어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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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두국 등장! 쇠고기 양지를 푹 고아 만든 만두국. 고명도 그저 파 밖에 없다. 음식을 만들어서 내는 이들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국물 하나로 정면 승부! 참 깊고, 개운하다. 허영만 아저씨는 이야~ 이거 냉면 국물 같다~ 하시면서 참 맛있게 자시던데, 일면 동의한다. 그리고, 북한식 냉면 국물 또한 같은 방식으로 끓여 식힌 것이니 크게 다른 점은 없으리라 추측해본다.

정말 이 집은 전날 술 많이 마시고 가야, 저 국물에 속이 쫘악 풀리면서 본전 건지고 나가는 집이다. 나 또한 저 밍밍해보이는 국물이 이렇게 철 되면, 때 되면 족족 기억이 나니...


2015년 겨울,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회령 손만두국집은 다른 가게들보다 조금 일찍 연다. 아침 8시.

이집 한 켠에 에서 만두국을 먹으면서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으니...

내가 만두를 이렇게 좋아하니, 만두집에 다니는 족족 글로 남겨보자. 꼭 만두나 역사에 대한 학술적인 자료가 아니어도 좋고, 또 궁금하면 찾아봐도 좋다.

비록 북한까지 아직 올라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남한은 누벼보자. 그리고 내 발로 다닌 만두로드의 흔적을 남긴 지도를 만들어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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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손만두국집의 테이블에는 그 흔한 간장이나 고춧가루가 비치되어 있지 않다. 딱 하나 후추만 있다. 국물 한 번 떠 먹어보고, 이렇게 후추도 팍팍!! 허영만 아저씨께서는 국물 본연의 맛을 느껴 보시겠다면서 파도 안 넣어드시던데...

회령 만두소에는 물기 뺀 두부, 참깨와 더불어 평양식 만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숙주, 그리고 김치가 들어간다. 숙주는 따끈하게 끓고 있는 물에 잠깐 담궜다가 5초도 안 돼서 건져낸다. 여기에 고기를 계란과 마늘로 버무린 것은 나중에 투하한다. 처음부터 집어 넣으면 많이 퍽퍽해지고, 이런 부드러운 식감을 살릴 수가 없다고 한다.

만두를 쪄서 그릇에 담고, 팔팔 끓는 육수를 부어서 이렇게 내주신다.


KakaoTalk_20201023_170136581_11.jpg 아, 너무 예뻐!!!


이렇게 복주머니 같은 모습의 예쁜 손만두를 쪄내면 바닥에 만두피가 흘러내리듯한 특유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달리 보면, 만두가 꼭 상투 튼 모습과도 같다 해서 '상투만두'라고도 부른단다.

평양식만두라고 해서 커다랗고, 두꺼운 만두피만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회령 손만두국집의 만두는 딱 한 입에 먹기 좋은 아담한 크기인데다가 부드러워서 입안으로 쉬지 않고 쏙쏙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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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작은 손만두국집에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5년 뒤 이렇게 매주 쉴 새 없이 전국을 누비며 만두를 먹으러다니는 만두 엄마의 만두로드로 실행될지는 나도 전혀 몰랐다. 지금은 이곳 브런치에 25개의 글로 정리되어 올라왔고, 썩 불친절하거나 맛이 내 기준에 함량 미달이거나 혹은 성의가 없어 글로 남기지 않았던 집들까지 합치면 아마 50곳 가까이 다녔던 듯 하다.

만두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굳게 결심한 것이 '이집 만두 맛 있다, 없다 평가하지 않기'였다. 수많은, 외식업 현장의 가게들은 SNS 홍수에 노출되어 있다. 이미 나 아니어도 '평가질'은 수없이 당하고 있을 것이다. 극찬을 받는 곳도 있겠지만, 섣부른 판단 하나, 글 하나가 얼마나 사람들의 밥줄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나까지 거기에 숟가락을 얹고 싶지 않았다.

만두 엄마의 만두 에세이는 철저하게 만두와 나의 이야기, 만두와 나 사이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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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바쁘게 살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양평의 회령 손만두국집, 내 평생 이 집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무르익은 가을, 용문산에는 올해도 단풍이 잔뜩 들었다.

만두국 먹고 용문산에 들러 산책하면 딱 좋은 코스다. 용문면에는 용문산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그쪽 못 미치는 곳에도 작지만, 호젓하게 멋을 뽐내는 계곡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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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양평의 단풍과 만두국을 즐겨보시길.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 161-7

오전 8시에 문을 열어 오후 8시에 닫는다.

매주 수요일은 휴무.

지난 봄에는 양평까지 만두국 먹으러 날아갔다가 당연히 열 줄 알았던 수요일에 휴무라는 사실을 알고, 그냥 돌아선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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