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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하루방 만두

서로서로 돕고 사는 마음으로 먹는 만두

by 황섬

전국으로 만두를 먹고 다닌다믄서 대전에 안 가보면 되겠나. 대전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외가집'이란 기억 속의 이미지는 모두 대전에 수놓았다.

대전 갈마동, 지금은 거기가 온통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하는데, 어려서는 완전히 시골시골이었다. 뒤에 작은 개천이 유유하게 흘렀고.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물찬 제비처럼 자맥질해서 나랑 놀아주시기도 했었다. 흐릿흐릿한 흑백영화처럼 그때 그 장면이 잔잔히 흘러간다.

어려서의 기억은 늘 눈이 부시지.

찬란하다는 뜻 뿐 아니라, 실제로 모든 어린시절에는 햇볕이 강하게 어린다는 이야기다. 조명이 강하다. 그래서 오랜 기억은 늘 실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는 것 같이 뿌옇다.


대전은 밀가루 음식, 특히 칼국수의 본고장이다.

어떤 친구는 이 동네에 뭐가 딱히 맛있을 것이 있을까 했는데, 멸치육수를 끝내주게 뽑아내는 고장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도 한다. 육수 뿐일까.

칼국수는 밀가루 반죽에서 밀어내는 면이다. 그래서 칼국수 가는 길에 만두도 따라간다. 분식의 최고봉!

어디어디 만두집을 들려볼까 동선을 잡아서 계획을 세우고 간 외가집, 대전가는 길.

오늘은 하루방 만두집에 가본다.


원래는 다른 만두집에 가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전에서는 호돌이 만두집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거기도 계획을 세워 두었다가 동선이 맞지 않아서 돌아선 곳. 이렇게 나와 맞닿은 연이 있어야 만나는 것이겠지.

그런데, 모 만두집 리뷰를 읽다가 어라, 정말 딱 한 줄, 이 별 것도 없는 한 줄 때문에 발길을 '하루방 만두'로 돌렸다.

- 지난 번 중촌동 만두집이 조금 더 맛있었던 듯.

정성스런 리뷰들이야 그냥 정성인 것이고, 나의 만두로드 만두집 결정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그 한 줄에 탁 꽂혔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인연일까.


가게에 도착하니 밖으로 뿜어내는 하얀 수증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만두집은 역시 부지런히 수증기를 뿜어내야 멋지지. 만두집의 패션은 맹렬하게 뿜어내는 하얀 김에서 완성되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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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면 두번째 손가락들고 늘 하는 말 "저 혼자인데요."

딱 이 순간만 지나가면 괜찮은데, 왜 그렇게 적응이 안 되고, 어색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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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 바로 옆 벽에는 하루방 만두를 들렀다가 가신 손님들의 손편지 메모들이 잔뜩이다. 경북 경산에서도 오고, 진해에서도 오고, 화천에서도, 분당, 심지어 우리 동네 가까이 중계동에서도 왔다 가셨다.

안그래도 지역주민들에게 맛있기로 소문이 났는데, '생활의 달인' 방송까지 에 나와서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집은 무슨 방송 탔네, 어디 나왔네 현수막까지 붙이는데, 이 집은 문 밖에는 그런 것이 일절 없다. 그냥 안에 들어오면 한 귀퉁이에 기사 나온 것들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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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를 기다리는 동안 간장, 식초, 고춧가루 잘 섞어서 소스를 만들어 놓았다. 평양 냉면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하여 식초, 겨자 안 치는 맛의 달인들도 계시지만, 나는 좀 다르다. 입이 조금 촌스러워서 냉면 국물은 겨자 맛이고, 만두라면 고춧가루 팍팍 쳐서 넣은 간장소스에 포옥 적셔 먹는 것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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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단촐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보통 떡만두국을 드시거나 떡국에 만두를 사이드에 놓고 드신다. 비빔만두도 꽤 많이 주문하신다.



오전 만두집으로 출발하기 전 한 언니와 넉넉하게 긴 통화를 했다.

언니가 기고하는 매체에 지난 늦여름에 나온 내 책 이야기를 쓴 모양이었다. 언니는 지난 번에도 페이스북에다가도 책 리뷰를 얼마나 근사하게 해주었는지 모르는데, 또 써준 모양이었다.


https://www.facebook.com/kym6952/posts/2457636751049053

(페이스북 링크)

언니가 가진 돈 닥닥 긁어 꺼내서 딱 책 옆에 놓고 사진까지 찍는 이 센스라니!!! 그 돈을 내가 실제로 집어서 지급에 넣어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내가 몇 년 동안 계속 발전시키려다 보이지 않는 이상한 유리천장에 부딪쳐서 진전시키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 시놉시스 정도로만 뼈대를 세워놓고, 조금 쓰다가 관두고, 또 쓰다가 관두고...

결혼을 다섯 번 하고 결국은 또 혼자가 된 보험설계사 여자가 딸 하나 키우다가 죽었는데, 그 전남편들이 장례식장에 모이는 데에서 스토리는 시작된다.

검은 양복을 입고 모인 이 다섯 남자가 바라보는 여자에 대한 시선, 그리고 그들만의 이야기, 남들은 아무도 모를 '부부간의 일'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현재 장례식장과 과거를 넘나들면서 진행이 되지 않을까 정도의 아이디어를 바탕만 깔아놓았다.


- 그거 잘 써서 영화나 드라마화 시키면 재미날 것 같아. 아주 상업적인 영화, 블록버스터는 안 돼도, '완벽한 타인' 같은 느낌으로 잘 해볼 수 있을텐데... 그거 초고라도 써놓은 것 없어?


없다.

시놉시스 쓰다가 자꾸 넘어진다. 자꾸 자기검열에 휩싸여서... 조금 더 재미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 자꾸 그 여주인공, 보험설계사가 나 같아서, 애 떼어 놓고 죽은 여자라고 욕 들어먹는 것 같아서 진전을 못 시키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들키고 싶지 않은 걸까. 그냥 거짓말로 노트북 위에서 뛰놀면서 재미나게 쓰면 되는데... 영화는 영화고, 드라마는 드라마 아닌가 말이다.


- 으구으구~ 만약 기회가 왔는데, 그때 보여줄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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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두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치하고 고기만두는 한꺼번에 찜기에 담겨 내왔고, 조금 뒤에 이렇게 화려한 모양새의 비빔만두가 나왔다.

나도 그렇게 만두를 좋아하면서 '비빔만두'라는 메뉴가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튀김만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역사 때문인 듯 하다.

비빔 만두는 말 그대로 쫄면의 새콤달콤 소스에 갖은 채소, 그리고 각 만두집 레시피마다 다르지만 실제 이렇게 완전체 쫄면과 튀김만두가 함께 나오는 곳도 있고, 예전 춘천의 왕만두처럼 소스는 쫄면 소스에 채소만 채썰어 나오는 곳,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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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입에 쏘옥! 쫄면의 쫄깃함에 군만두 육즙까지 더해져서 한입 가득 행복하다. 그리고, 눈은 전방의 고기와 김치만두로 향해 있으니 오감의 만족! 이보다 더 넉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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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만두 쪄서 나온 것 보고, 속으로 너무 귀여워서 웃었다. 일단 만두 빚으신 분이 뭔가 급하셨나 부추가 밖으로 다 튀어나와 있고, 고춧가루가 삐져나와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더 좋았다. 공장에서 기계로 딱딱 열맞춰 깔끔하게 만든 것보다 이렇게 손만두 티 팍팍 나는 것이 더 먹음직해보였다.

역시 김치 만두, 정말 맛있다. 피가 얇은 것이 김치소하고 딱 달라붙어서 한입에 꿀꺽 들어간다. 이것 사진 찍으려고 내가 반으로 쪼갠 것이지, 그 다음부터는 한입에 만두 한 개씩 쏙쏙 정신없이 들어갔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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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만두에 이어 고기만두도 좋다. 나는 돼지고기소에 생강맛 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떤 이들은 돼지고기 나쁜 것 써서 잡내 빼느라고 생강을 넣는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돼지 잡내는 아무리 미림에 생강 때려넣어 잡으려 해도 날 냄새들은 알아서 펄펄 난다는 사실.

김치만두에 이어 생강맛이 은은하게 퍼지는 아주 멋진 맛을 선물해준 하루방 만두집의 고기만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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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는다. 이제 나는 만두집에 혼자 들어가서 뻘쭘한 찰나를 극복하기만 하면 된다. 내 앞에 이것 저것 잔뜩 올라와 있어도 이제 '사람 한 명 더 와요.' 표정을 짓지 않고도 당당히 앉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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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에 포옥 담가 먹는 그 맛!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질의 집간장을 내와서 먹는 사람들에게 귀히 대접하는 만두집도 있지만, 이 간장이 샘표 진간장 업소용 대형 사이즈여도 나는 좋다. 그저 간장 + 식초 + 고춧가루 세박자만 쿵짜라라짜~ 갖추고 있다면 어떤 소스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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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방 만두는 단골이 많은 집이다. 위치도 동네 좁은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 지역 사람들 알음알음으로 35년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왼쪽 사진에서 보이는 저 키큰 할아버지도 오래된 단골이시란다. 자꾸 사진찍는 것이 방해가 되니, 죄송하지만 좀 비켜 달라고 하는 말이 아주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저리 정겹게 대화를 나누시니 어찌 그러겠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철저하게 분업하여 만두를 빚으신다. 아저씨는 밀대로 만두피를 만드시고, 아주머니는 만두소가 잔뜩 담긴 바구니를 옆에 놓고 만두를 빚으신다. 아저씨는 지난 세월 하루종일 손으로 만두피를 미느라 어깨 수술도 한 번 받고 요즘도 계속 정기적으로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다니신단다. 아주머니도 그 못지 않을 텐데, 그냥 웃으시기만 한다. (역시 여자는 소리없이 강하다?)

내가 얼굴 안 나오게 손만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아니아니 다 나오게 찍어도 된다고 하시면서 깔깔대고 웃으신다들.

이때다! 하고 이것저것 몇 가지 묻고 싶어서, 지금 내가 전국 돌면서 만두집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대전은 하루방 만두가 참 맛있는 것 같다고 추켜세워드리는 공력 발휘!


그랬더니만, 바로 남은 만두 싸주시면서 이렇게 콜라 서비스를 주시는 친절한 아저씨 아주머니.

에세이에다가 우리 가게 이야기 좀 잘 써달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맛있는 만두집을 왜 잘 써드리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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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도 그려져 있고 쇼핑백에도 있는, 이 만두 들고 가는 도날드 덕이 정겹다.

아차! 왜 하루방 만두집인지 그것을 물어보지 않고, 왔구나. 아무래도 이 두 분 결혼하셨을 때, 제주도에 가서 하루방 코를 내내 매만지고 오시지 않았을까.


만두집 위치는 중촌동, 튼튼병원 앞이라고 한다.

전화번호는 당연히 지역번호 042 대전이다.



- 내가 내 글은 잘 못봐도 남의 글은 그래도 좀 봐. 나한테 니 원고 있으면 보내 줘. 내가 읽고 들은 느낌 이야기해줄게.



나는 기꺼이 나의 시간을 쪼개 내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들의 경지를 아직 알지 못한다. 까치발 딛고도 그 마음 씀씀이에 가닿지 못한다.


- 니 이야기는 사람들이 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뒤돌았을 때, 우리집에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사람 보면서 왠지 안심되고, 따뜻해지는, 그런 마음이 드는 이야기로 만들어봤으면 좋겠어.

그 다섯 남편들의 모습 중에 분명히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우리 동네 아저씨도 볼 수 있을 것 아냐.

그러면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 들게 해주면 그걸로 된 거지.


이렇게 이야기의 가닥이 잡혀간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써야 하는지만 잘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던 이동익 대표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동안은 이거 왜 쓰고 싶은데 하면 쭈삣 거렸지만 이제는 내 속에 있었던 마음을 겉으로 꺼낼 수 있게 된 것, 기쁘다.

만두 먹는 내내 한 여자와 다섯 남자, 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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