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예전부터 맛있는 집이 없다고 알고 있던 지역이다. 실제로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을 무렵 홍보를 담당했었기 때문에 대회 기간 중에 내려가 잠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도무지 맛있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기 보다는 대구에서 밥을 먹었던 것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기간의 출장을 마치고, 다들 지쳐 곤죽이 되어서 서울 올라오다가 몸보신이나 해보자고 대구 언저리에 있는 닭백숙 집에 들어갔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닭 가지고도 음식이 맛없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여하튼 나는 최근까지 아무 집이나 들어가도 마법 같은 밥상이 나왔던 강진의 신기함의 딱 대척점에 있는 지역이 바로 대구였다.
대구는 매운 어묵이랑 납작만두가 대표간식이라는 이야기를 오래 전에 들었다.
그래서 작년인가는 납작만두가 뭘까 하도 궁금해서 쿠팡에서 시켜 보았다. 집에 택배가 오고, 뜯어보고 나서 깜짝 놀랐다. 혹시 만드는 사람들이 만두피에다가 소 집어 넣는 것을 까먹었나 싶었다. 아무리 이름이 납작이라도 이렇게 종이처럼 납작하면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이게 무슨 맛으로 먹는 것인지 구워는 봐야지 하고 떼어내다가 만두피가 다 찢어지는 바람에 굽기 실패! 그렇게 납작만두는 그냥 우리집 냉장고에서 잠들어 사라져가고...
그래도 우리 나라 3대 도시 중 하나인데 꼭 들려봐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 분명히 대구에도 사람들이 사니 맛있는 집이 있을 것이라는,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도 대구행에 한몫 했다.
대구에 가기 전에 납작만두에 대해 조금 조사를 해보니, 대구에서 유명한 곳은 미성당과 교동 납작만두. 그리고, 현지인의 추천에 따르면 남문 납작만두가 맛있다고 한다. 1박 2일 대구행인지라 하루 세 끼 모두 납작만두만 먹을 수가 없어서 가장 유명뽀짝하다는 미성당과 시간이 남는다면 남문 납작만두까지 섭렵하고 돌아오리라 작정했다.
그러나, 사람 일이 다 뜻대로만은 되지 않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대구까지 차를 몰고 가기가 힘들어서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요리조리 다니다 보니 숙소에 짐 내려놓고 한 두 군데 정도 방문했을 뿐인데, 길 잃고 헤맨 것까지 다 합쳐서 만 보를 훨씬 넘겨버렸다. 특히 지하철 역에서 성모당 가는 길은 대구 골목길 투어의 정수를 볼 수 있었는데, 그때 너무 정신없이 골목길 구경을 하다가 보니 발도 너무 아프고 피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아, 이거 안 되겠다, 그냥 길 가다가 아까 봤던 납작만두집을 찾아갔다. 이미 출출해진지라 아무 납작만두나 먹으면 어떻겠나 싶기도 했고.
내가 찾아간 곳은 바로 미성당 납작만두집 현대점이라는 곳이다. 아무래도 미성당이 많이 유명하다보니 프랜차이즈와 되어 여기저기 분점을 많이 냈는데, 이 집도 그 집 중에 하나인듯하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뭘 먹을까 이것 저것 두리번 대고 있는 것을 보니 아저씨가 다가오신다.
- 납작만두랑 찐만두랑 뭐가 달라요?
- 만두가 달라요.
아아~ 이런 간단한 진리를...
또 메뉴판을 어리버리 보고 있다가 주문을 했다. 납작만두 하나 찐만두 하나, 얼큰 양념 오뎅 하나.
대구에서 먹어 보고 싶었던 것을 이 집에서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뿌듯했다.
그리고 내 말도 안 들어보고 바로 주방 쪽으로 가셔서 찐만두 빼고 쫄면 하나 주문을 넣으신다.
역시 군만두는 쫄면과 함께 비빔만두의 형태로 먹는 것이 전국적으로 정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께서 철판에 아직 생밀가루 상태인 납작만두를 꺼내서 굽기 시작하셨다. 아, 이거였다. 내가 예전에 납작만두 택배로 받아봤을 때 그 놀라움 말이다. 이게 어떻게 만두의 형태란 말인가!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건 만두 영역에 속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냥 만두피 굽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별다를 것도 없는, 화려한 색깔의 채소도 담뿍 담기지 않은 소박한 쫄면이 나왔다. 아주 검소한 비주얼의 쫄면이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납작 만두! 만두를 잘 구워서 위에다가 얇게 썰은 양파와 파, 그리고 고춧가루를 뿌려서 나온다. (그런데, 미성당 본점은 만두 위에 양파가 얹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 납작만두는이렇게 먹는 거구나 하고 신기해할 무렵 아저씨가 또 저벅저벅 오시더니 또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저 간장을 휘익하고 뿌려버리신다. 으악! 너무 많이 뿌리신 듯 한데... 주인 아저씨 스웩!!
- 납작만두는 이래 묵는깁니다.
납작만두안에 양파랑 파를 잘 감싸서 한입에 쏘옥 넣어봤다. 음? 간장맛으로 먹는 걸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장이 밀가루와 만나니 꽤 인상적인 향미가 남는다. 위에 토핑된 양파 슬라이스하고 고춧가루가 당면이 조금 들어간 이 밀가루 피와 의외로 아주 잘 어울렸다.
와 이런 맛도 있구나,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납작만두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이집 쫄면 맛이 생각이 나서 군침이 도는데, 쫄면 참 맛있었다.
누가 뭐래도 쫄면은 양념 맛. 채소가 다채롭게 아주 많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 소박하게 생긴 녀석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만두랑 같이 집어서 한입에 쏘옥 넣어보니 와! 딴 만두집에서 튀김만두랑 함께 먹던 것이랑은 매우 다른 식감이다. 바삭한 튀김만두보다 납작만두가 당연히 훨씬 더 부드럽다. 튀김만두는 육즙이 나오면서 면이랑 한데 뒤섞이는데, 납작만두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마성의 밀가루맛, 그맛이 쫄면이랑 조화를 이룬다.
대구의 대표 분식이라는 매운 어묵도 나오고.... 아저씨는 또 여기에서도 디렉션을 잊지 않으신다.
- 여 콩나물이랑 얹어가 꼭 같이 드이소.
- 네.
얌전하게 아저씨의 조언을 따른다. 그리고 국물이 해장에는 아주 그만일 듯 하다. 해장에는 고추장국물이 최고 아니겠나.
다음 날,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기차 안에서 이게 뭐라고 납작만두가 정말 삼삼하게 생각이 나는 것이다. 쫄면도 맛있었지만 납작만두 그 밀가루 맛, 간장맛... 계속 생각이 나는데 신기했다. 밀가루에 당면 조금 들어간 그 만두가 왜 그리 떠오르던지...
역시나 대구분들은 이 납작만두를 맛으로 먹는다기 보다, '추억'으로 먹는다고 하신다. 어떤 분은 야구장에서 아들내미와 함께 먹었던 납작만두가 그립다 하시고 또 다른 분들은 납작만두 기름맛을 잊지 못하는지라 대구를 떠나와서도 택배로 받아서 먹는다고 하신다. 어떤 여자분은 납작만두 간장 뿌리는 맛으로 먹는다고 하신다. 역시... 주인 아저씨가 납작만두는 이래 먹는거라 하시면서 훅 뿌리신 이유가 다 따로 있다.
평소에 가까이 있었을 때는 뭐 그리 별미도 아닌 것이, 맛이 썩 좋은 것도 아닌 것이 이게 웬일인가 싶어도 대구 떠나면 그렇게 납작만두가 그립다고들 하신다.
나 또한 삼삼하게 아른거리지만, 그렇다고 서울에서 굳이 택배까지 시켜먹을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완전히 안 먹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남는... 다시 만나는 것은 싫은데, 보고는 싶은, 헤어진 애인 같은 만두다.
나도 막상 먹었을 때는 그저 '이렇게 먹는 만두도 있구나' 정도도로 호기심이 이는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단연코 대구, 하면 쫄면에 납작만두!를 외치게 되었다.
또 하나, 대구는 막창도 맛있고, 두툼한 생고기도 그렇게 질이 좋다고 하니 다음에 대구 가면 일단 납작만두 한 판 해치우고 난 뒤 하나하나 섭렵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