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 자매'를 봤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 엄마, 아빠는 나한테 그렇게 잘못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엄마가 분을 못 이겨 나를 많이 때리고, 아빠는 그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두 모녀의 싸움에 개입하기 두려워 방관했던 것이 나를 커서까지 많이 괴롭혔을 뿐.
그리고 어쩌다가 이렇게 욕심 많은 딸을 낳아서, 대한민국에서 돈 많이 드는 예체능 쪽에 재능을 타고난 딸이 태어나는 바람에 그 재능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들 좀 많이 하셨던 것일 뿐.
아침밥도 잘 챙겨주셨고, 학교도 잘 보내주셨다. 결혼식할 때도 잘 챙겨 주셨다. 결혼을 좀 여러번 해서 나중에는 거의 나몰라라 하실 수 밖에 없었지만.
그리고 나는 이렇게 아직도 부모에게 불쑥불쑥 화가 나면서도 '이제는' 다 이해하는 척, '이제는' 평화로운 척 하고 있다.
엄마, 특히 아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못을 쾅 박아버렸다.
- 야야! 니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부모탓인 거냐. 이제 그런 것쯤은 니가 극복해야 하지 않겠니?
왜 상처는 니들이 입혀 놓고 나보고 극복하래?
이런 내가 영화 '세 자매'를 봤다.
세 명의 캐릭터가 제각각인데다가 연기력들 짱짱해서 완벽한 삼각형 구도로 계속 긴장감 있게 극을 이끌간다는 평은 많이 들으셨을 것이고.
안톤 체홉의 '세 자매' 캐릭터를 많이 반영한 것은 우연한 검색에서 알게 되었다.
조금 더 궁금한 것은 김선영 배우가 연기한 희숙 캐릭터인데... 내가 중간에 한 장면에 이 배우가 빙의한 듯한 모습을 본 것은 내 느낌뿐일까?
- 씨발, 어른들은 왜 사과를 못해!
큰딸 희숙의 딸 보미가 아수라장이 된 할아버지 생신에서 보다 못해 일갈한 한 마디다.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내가...
이 영화 두 장 예쁘게 예매해서 엄마, 아빠 보여드리면 어떨까.
엄마, 아빠는 과연 지금 내게 사과할 수 있을까? 속으로 부글부글 끓기만 하는 내 사정을 대강 아는 사람들은 이런다. 이제는 내려 놓으라고.
내게 주문하는 셀프 극복 요청의 도돌이표다.
요즘 준비하는 시나리오, 아니 오랫동안 준비했던 시나리오의 구성을 어제사 대강 마쳤다. 아 속이 후련했다.
이문세가 불멸의 가수가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곁에 이영훈이라는 대작곡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불멸의 작가도 아니고, 한낱 크몽에서 일 받아서 생계 유지하는 '돈 되는 글 다 써드리는' 듣보잡 작가이다만, 나를 구원해줄(?) 구성 작가를 만났다. 어제.... 내가 이문세는 아니지만, 이 분은 스토리 잡는 데에 이영훈은 맞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한 소절이 내 시나리오의 한 줄 주제다. 이 주제로 계속 맴맴 돌다가 5년이 지났다.
어제 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이제는 니 작품이 완성이 다 될때까지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마. 제작사의 말도 듣지 말고, 주변 영화 도와주겠다는 사람 얘기도 듣지 마. 그냥 니 색깔로 작품 다 완성할 때까지는 그냥 아무 말도 듣지 마.
워낙 '클라이언트' 있는 글만 쓰던 내게 즉, 돈 주면서 글 주문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제야 노트북 토독질을 시작했던 내게 오늘 하루종일 떠나지 않던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이소라의 노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가 흐르는데, 정말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러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 아빠도 저렇게 벽에 피흘리게 이마 박았으면.
엄마도 쫓아와서 나한테 울며 또 울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줬으면.
나도 이렇게 영화 시나리오 끼깔나게 잘 썼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영화도 끝날 때 이렇게 이소라 노래가 흘러서 사람들이 나처럼 노래만 들어도 영화 생각 나서 울었으면.
이소라 노래 깔려면 돈 많이 드나?
엄마,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한테 사과 안할지도 몰라.
엄마, 아빠도 그것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 사람들도 부모 되본 것이 처음이라서...
아니, 나도 아이들에게 잘못 많이 했잖아.
이걸 어떻게 사과하지. 나도 이렇게 사과를 못하는데.
미안하다는 말, 내가 놓고 온 아이들에게도 아직 하지 못해놓고.... 엄마, 아빠한테 왜 사과를 요구하지.
마음 복잡했던 영화, '세 자매'.
미옥이 같이 술 진창 먹고 자빠지고 싶은데... 못 한다. 그렇게... 미연이가 내 안에 너무 강해서.
영화 '세 자매' 엔딩곡. 이소라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영화 'Dear My Husbands' (가제) 엔딩곡 ㅋㅋㅋ 이소라 '바람이 분다' (이거 성지글 되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