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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황섬, 이혼학교 설립?!

브런치 글쓰기 다시 시작합니다.

by 황섬

지난 3년여간 브런치는 내 글 재산을 쌓아놓는 은행 계좌와도 같았다. 하루에 글 하나씩, 혹은 적어도 일주일에 꼭 한 편씩은 올려놓는 것을 원칙(목표가 아닌!)으로 하고 살아왔었는데, 어느 순간에선가 브런치 글쓰기 행보가 점점 줄더니 발길을 뚝 끊게 되었다.

2019년 첫 에세이 《시나리오 쓰고있네》가 출간된 후, 두 번째 에세이인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가 지난 3월 초 출간이 되었다. 물론 브런치에 차곡차곡 올린 글들을 모아서 다시 다듬어서 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1988 vs. 2020 엄마와 딸’에 쌓여 있는 원고로 묶은 세 번째 에세이 《어쩌다 태어나 보니 엄마가 황서미》의 마지막 교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만두 에세이가 출간 바로 전, 장장 5년 동안 작업에 공을 들였던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한지장 김삼식 자서전 《전통 한지 70년 삶에 스미다》도 출간되어서 여하튼 여러모로 감사한 일들만 지난 2월 이후 계속 쌓였다.


만두.jpg 너무나 사랑스러운 만두 에세이 표지



지금 에세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출판사 ‘씽크 스마트’와 함께 5월에는 ‘이혼학교’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열 예정이다. 준비할 것이 까마득한데, 또 이번에는 어떻게 헤치고 나아갈지.

지금부터 그 역사(?)의 기록을 브런치에 차곡차곡 담아보려고 한다.



- 이혼을 할 적당한 시기란 과연 있는 것일까?

: 큰딸이 열 살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참아보려, 남편에게 맞으며 버티는 엄마가 있다?

- 불륜이 발각되는 순간, 상대의 외도를 알아차린 순간, 이혼의 수순을 밟아야 하는 것일까?

이혼도 귀찮다는 이들의 항변.

: 그러하다면 힐러리 클린턴은 왜 지금도 그와 함께 살아?

- “너 같은 건 엄마도 아니야!”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함께 내 자식을 기르고 있는 사람에게 들었다면?

: 13년 전, 나는 너무나 화가 나는데도 대항할 기운마저 스르르 사라져서 땅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엄마도 아니라는 말 안에 숨은 우리 사회의 민낯. 그럼 누가 엄마일까?

- 왜 나는 계속 불륜을 꿈꾸는 걸까?

: 이것은 죄일까?

- 아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 죽이지도 못하고, 그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남편의 심리.

- 마마보이가 남편이고, 욕심 많은 할머니가 시어머니일 때 당연히 생기는 일.

: 제왕절개로 출산한 당일, 마취에서 깨어보니 남편은 없고…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운 회복실에서 애써 기다린 남편은… 어머니와 여동생 집에 바래다주러 갔다 왔다고?

- 모든 걸 다 주니까 떠난다는 그 여자, 내 전부를 다 가져간 그 남자

: 십 년 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외도가 탄로 나는 순간은 결혼과 불륜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외도를 발견한 충격은 ‘파충류의 뇌(인간의 뇌중 호흡과 심장박동, 호흡 등 본능과 생존을 담당하는 부위를 이르는 용어)’를 자극해 투쟁, 도피 또는 경직이라는 원초적 반응을 유발한다. 어떤 사람은 충격으로 말을 잃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다 (중략)

충동적 반응은 본래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종종 부부가 수년간 쌓은 긍정적 관계를 일시에 파괴해 버린다. 불륜의 드라마는 공감, 질투, 호기심, 연민뿐만 아니라 비난, 분노, 혐오에 이르는 감정의 종합 선물세트를 선사한다.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p92



지금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이다. ‘나는 가수다’가 한참 인기였을 무렵. 2011년. 모하비 석상 같이 생긴 남자애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내를 굉장히 무서워했던 남자였는데, 이유는 한 번 걸리면 ‘잠도 안 재우고 갈궈대서’란다. 그럼 안 걸리면 되지 않냐고 물어봤다. 거기에 대한 명쾌한 답은 구하기 어려웠다. 사람들 마다 모두 사정이 다르므로. 그 남자애의 답도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도에서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아내를 실제의 모습보다 더 무서운 인격으로 다른 이들에게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변명한다. 그 사람이 나를 괴롭혀서 그래. 그러나, 자그마한 예를 들어 남편의 끼니를 꼼꼼히 챙기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영화관에 가는 남편의 가방에 과일 도시락을 싸서 넣어주는 성실한(?)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밤에 아는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바로 그 무서운 아내가 찾아왔다.(아니, 나는 그냥 그의 아내가 왔다는 이야기만 듣고, 보지는 못했다. 실제 왔었을까?) 모하비 석상은 정말 반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들인지 지인들은 모하비의 아내가 왔다고 전하면서 다들 술병을 치우고, 방을 치우고 난리가 났다. 아무래도 이와 유사한 전적이 있었으리라 짐작은 되나, 이렇게 원숭이 우리 안에서 소나기 피하는 원숭이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칠 일이었나. 아직도 그 장면이 아직도 선하다. 주변 원숭이들은 들고 날뛰고, 모하비 석상의 시간만 멈춘 듯 눈을 뻥 뜨고 가만히 떨던 그 모습. 그리고, 아직도 의아하다. 부부 사이…

사람들은 누가 이혼했다고 하면, ‘왜 이혼했대?’ 이 말이 바로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다. 지금도 궁금하다. 저 커플이 왜 이혼했을까? 왜 헤어졌을까?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여자의 인권 척박한 이 한국 땅에서, 이혼을 그렇게 많이 하고도 얼굴에 철판 깔고 살아왔던 세월이 ‘내가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한 삼십 대 중반까지는 정말 꼴사납게도 ‘인형의 집’ 노라의 해방을 대변하듯 깝치기도 했었다. 남편하고의 지긋지긋한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난 뒤의 삶은, 그렇다면 행복했나?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서 정말 지옥 같았다. 남편도 아주 손에 갈퀴를 단 것 같이 나머지 피 한 방울까지 쪽쪽 뽑아 갔다.

그래도 나는 이혼을 ‘돌아온 싱글’들의 유턴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혼은 패잔병들의 수용소가 아니라 지금 사는 꼴 보다 좀 더 낫게 살기 위한 ‘직진’이라고. 앞으로 꾸준하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쭙잖은 이혼, 결혼 경험에 페미니즘이나 해방론 같은 것 얼추 붙여서 손에 프로펠러 달고 싶지 않다.

천천히 시동 걸고 출발해본다. 언젠가는 언덕배기에 오르겠지.


이혼.jpg <인천일보> 신문 기사 중


아 참!
'세상의 모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명함 문구를 없애고, '삶에 글을 담는 사람'이라는 말로 재탄생했다. 세상의 모든 글을 쓰는 사람은 '맡기는 글 다 써드립니다' 이런 의미 같아서 맥 빠져서 말이다. 글에 삶을 담을까, 삶에 글을 담을까 하다가 조금 더 큰 세상에 내 글을 담기로 결정했다. 명함 컬러는 금별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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