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등' 리뷰
시사회 무대인사에서 정지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발견하는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화 중간 준호가 코치 광수의 강압적인 훈련에 힘들어할 때,
초등학교 3 학년쯤 되는 동생 기호가 나지막이 푸쉬킨의 시를 읽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푸시킨의 시 '삶' 中)”
‘4등’의 주인공은 맨날 4등만 하는 초등학생 수영선수 ‘준호’다.
늘 메달을 못 따니
아빠는 취미로나 하라 하고, 엄마는 그렇게 하면 대학도 못 간다고 타박하지만.
준호는 그냥 물속에서 아롱지는 햇빛이 주는 그 에너지가 좋다.
수영코치의 폭력적인 훈련에 지쳐, 잠시 수영과 이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준호는 수영을 정말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것을 위해 혼자서 어려움을 견뎌 낸다.
준호의 나이의 두 배도 넘는 나는 준호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본 리뷰는 영화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처음 흑백 화면으로 시작한다.
술 먹고 담배 펴도 기록을 내고 메달을 따던 수영천재 김광수.
그는 노느라 국가대표 소집에 늦었고, 매 맞기 싫어서 국가대표를 빠져나왔다.
화면은 16년 후 준호의 수영대회로 넘어간다.
또, 4등. 못했다고 또는 잘했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등수.
정말 열심히 했다.
2등의 아쉬움, 3등의 눈물.. 이야기하지만.. 걔네들은 메달이라도 있지 않은가
보는 엄마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내 아들이 좀만 잘하면 될 거 같은데..
결국 칭찬보다 안 좋은 말이 먼저 나온다.
결국 그녀는 수소문 끝에 수영코치 광수를 만나고, 준호를 맡긴다.
무기력했던 광수는 준호의 재능과 1등 하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움직여 그를 열심히 가르친다.
그러나 광수의 강습은 폭력을 동반한다.
그는 자신이 못 견뎠던 국가대표 감독의 말을 그대로 전한다
"내가 너 미워서 때리는 거 아니다. 니가 좀 더 내 말을 듣고 끝까지 집중해야지.
잘되려면 이렇게 때려줘야 돼. 너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끼야"
이후 아이는 폭력에 동화되어 가고,
엄마는 그 폭력을 알면서도 등수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제재하지 않는다.
엄마는 남편, 즉 준호 아빠에게 말한다.
"난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준호는 광수와의 훈련 후, 대회에서 처음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다.
광수는 그 성적도 아쉬운지.. 윽박지르지만 준호도 메달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한다.
이 부분에서 먹먹해졌다.
광수에게 육체적, 정신적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받을 때
준호는 아이의 반짝임이 많이 바랬고, 주눅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혼나고도, 메달에 발을 동동 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사회가 준호에게 얼마나 결과에 집중하게 했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광수의 강습은 계속 폭력적이었고, 아이는 결국 수영장에서 도망친다.
그런 도망을 엄마는 용납하지 못하고 아이에 대한 모든 기대를 놔버린다.
그런데 준호는 그런 강압이 없어지자, 정말 물이 좋아서 본인이 열심히 수영을 한다.
심지어 도망쳤던 광수에게 다시 찾아가,
수영이 좋다고 말하고, 1등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말한다.
갑자기 멍해졌다.
나는 1등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인정, 이목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았는가.
내가 학창 시절 열심히 했던 공부,
남들만큼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기 위한 스펙 쌓기.
그런데
준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기 위해 1등을 하려고 한다.
사실, 준호의 생각과 결심의 순서는 매우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부터 보이는 지붕부터 쌓고, 바닥을 짓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이란 기본적인 욕구의 기초공사는
돈, 명예, 사회적 인식이란 외적 인테리어에 치중해 소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준호의 수영대회가 시작된다.
그리고 레인이 사라진다.
그는 레인을 따라가지 않는다.
다만 자유롭게 유영한다.
그 꿈같은 영상 후, 준호는 골인한다.
그 결과는 관객이 상상하는 그대로이다.
이 영화는 사실 아래 정지우 감독의 인터뷰에 나와있듯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특히 엘리트 체육에서)과 그것으로 인해 침해되는 아이들의 "인권"을 알리는 영화이다.
http://webzine.humanrights.go.kr/user/sub/right_view.do?no=30429&magazine=2016.04
이 영화의 미덕은 이런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디테일이 살아있는 현실로 위트를 섞어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에는 웬만한 억지 코미디보다 더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많다.
그 깨알 디테일들을 잘 살린 극본과 연출은 보는 내내 관객을 미소 짓게 만든다.
또 배우들의 열연도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엄마 역의 이항나 배우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는 엄마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가혹하다, 너무 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내 아이 잘되게 바라는 우리 주위의 보통 엄마의 모습이라
공감이 갔다.
준호 역할의 유재상 군도 수영도 잘하고, 눈빛이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준호의 약간 쉰듯한 목소리가 실제로 운동하는 아이들의 목소리 같아 놀랐다.
좋은 의미와 재미, 멋진 연기와 게다가 그 안에서 나의 인생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니..
이 어찌 멋진 영화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추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