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차로 출퇴근을 한다. 차 안에서는 라디오를 듣고, 집과 사무실 모두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진다. 그래서 LTE 데이터를 사용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지난 주말, 약속이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서울에 가게 되었다. 가득 찬 핸드폰 배터리와 무선 이어폰으로 무장하고 지하철을 탔는데, 이게 웬일 다음 카페를 들어가도 로딩, 유튜브 영상도 중간중간 끊기고 인터넷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제야 LTE가 느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5G가 론칭된 이후로 LTE가 느려진 것 같다는 불만(특히 KT)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왕왕 있었다. 통신사들은 펄쩍 뛰었지만 지난해 말 정부 발표로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아무리 5G가 나왔다지만 빠름~빠름~빠름을 외치던 버스커버스커의 목소리가 생생한데 LTE가 느려지다니 괜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인터넷의 발전은 첫째, 어디에서나, 둘째 빠르게, 셋째 더 많은 데이터를 이라는 기치로 발전해왔다. 5G는 아직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LTE는 3G에 비하면 혁명적인 속도였다. 하지만,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던 2010년대 초만 하더라도 3G는 충분한 속도를 제공했다. 아니 모바일로 컴퓨터와 거의 같은 작동을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혁명이었다. 3G 이전에도 핸드폰에서 인터넷은 가능했다. 하지만 엄청난 요금에 비해 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조그만 창에 문자 몇 개, 그림 쪼가리를 불러오는 데도 로딩이 꽤나 오래 걸렸다. 그래서 중학생이던 나는 최적의 경로로 붕어빵타이쿤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만약 중간에 버퍼링이라도 걸리면 요금 더 나올까 봐 발을 동동 구르던 생각이 난다.
실수라도 해서 저 접속화면이 뜨면 정말 등골이 오싹했다
그래도 요금이 비싸도 어느 정도 이해했던 것은 컴퓨터 앞에서, 줄로 연결해야 쓸 수 있는 것이었던 인터넷을 손 안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인 초등학교 고학년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학교에서만, 집에서만 할 수 있었다. 그때 막 광고에서 에릭이 뒷모습을 보여주며 초고속 인터넷 메가패스를 외쳤고, 그게 한참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였던 생각이 난다. 우리 집도 케이블 tv와 함께 초고속 인터넷을 깔았다. 사실 "초"고속이라고 해봤자 아마 지금 속도의 몇 분의 1밖에 안됐을 것이다. 그때는 유튜브도 없었다. 인터넷으로 영상을 볼 때는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의 무한 버퍼링을 대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TV가 아니라 다른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꽤나 컴퓨터를 할 줄 안다, 정보에 빠삭하다는 증거였다.
저 퍼센트.. 참 야속했다.
그리고 나는 쓴 기억이 거의 없지만 그 초고속 인터넷 이전,1990년대 중후반에는 전화로 연결하는 모뎀이 있었고, 1990년대 초반에는 PC통신이 있었다. 그 모든 기술들이 사실 그 이전 세대에 비하면 혁명적인 속도를 자랑했고, 많은 데이터와 정보를 보낼 수 있는 발전이었다.
어찌 됐든 일반 대중에게 인터넷이란 게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30년 만에 엄청나게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2010년 대 이후로는 정말 상전벽해의 시간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발전에 이제 사람들은 점점 무뎌져 가고 있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떠올랐다. 총효용이 늘어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미 사람들은 정말 눈 뜨고, 자기 전까지 항상 온라인 상태에서 엄청난 데이터를 소비하고 있다. 그러니 그 만족도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통신사와 과학자들은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것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상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그냥 생각과 동시에 켜지는 거의 시냅스 반응 속도의 기술이 발전할 것 같다. 그럼 인간은 행복해질까?
주말 약속이 끝나고 지하철에서 읽기 위해 중고서점에서 책을 샀다. 이중 얼마 전 유퀴즈에서도 나왔던 예술의전당 전속 조율사이신 이종열 선생님의 "조율의 시간"을 읽었다. 이종열 선생님이 나온 몇몇 영상을 이미 보긴 했지만 글 속에 있는 명장은 느낌이 달랐다.영상보다 훨씬 적은 데이터인 문자들을, 영상 몇 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했지만 그의 피아노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읽고 난 뒤 나는 좀 더 행복해졌다.지하철 왔다 갔다 하는 딱 그 정도의 시간이면, 딱 그 정도의 데이터와 속도면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