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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촉촉 Jan 25. 2021

문학상, 쉬워 보이세요?

먼-데이 에세이 4


제발.. 제발! 나는 이번 1월 1일, 일어나자마자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 기사를 검색했다.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내가 쓴 가족극을 투고했기 때문이다. 물론 낙선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사에 심사평 하나 올라오면 좋겠다는 조그만 소망이 있었다. 물론 없었다.  수백 수천 명의 열정 있는 작가 지망생들이 일 년 동안 고심해서 쓴 작품 가운데 내가 취미 삼아 쓴 글이 뽑힐 리 만무했다. 사실 생애 두 번째로 완성한 희곡이었는데, 친구들의 반응은 좋았기에 드라마 같은 일이 나에게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당선된 작품을 읽어보니, 아 이래서 내가 떨어졌구나 싶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글 쓰는 것으로 직업을 갖고 싶지는 않다. 서점에 수많은 책의 저자와, 브런치에 있는 많은 작가들, 그리고 어디선가 습작을 쓰고 있을 예비, 무명작가들까지... 세상엔 글을 너무 예쁘고 멋지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글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생각과 습작, 그리고 고민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쓴다는 즐거움과 함께 그런 어려움과 고통까지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선택일 것이다.


"뿌리"로 백마 문학상을 받은 김민정 작가는 아마 그런 분이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를 지망하던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 그녀는 내 이야기가 과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수십 번을 고치고, 한 자 한 단어 고민하며 소설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보고 또 보아도 예쁜 내 새끼 같은 글을 두근두근 하며 공모전에 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모전에 당선됐을 때, 드디어 작가로서 한 발을 내디뎠단 생각에 얼마나 기뻤을까.


그런 작품을 고민 없이 복사, 붙여 넣기 해서 공모전에서, 심지어 5군데에서 상을 받은 사람이 있다. 손창현이라는 40대 남자라고 한다. 제목도 안 바꾼 공모도 있었다고 했다. 지인의 제보로 알게 된 그 사실에 작가는 충격으로 페이스북으로 그 사실을 알렸고, 그 뉴스는 많은 사람들에 공분을 샀다. 김민정 작가는 김현정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무엇보다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한 제 시간과 노력 그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후에 그 문학상 외에도 다른 분야에서 받은 분들의 창작물을 많이 표절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이제 문학상을 그저 돈벌이로 사용했다는 것에 더욱 슬펐던 것 같습니다.
(중략)  네. 정말 영혼의 도둑질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은 게 소설이나 어떤 문학 같은 경우에는 그동안의 어떤 삶에서의 생각과 느낌이 전제가 되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작가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준 가해자 손창현씨. 그는 이번뿐만이 아니라 정말 여러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대부분 표절과 도용이었다. 그리고 그 파렴치한 수상경력과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경력 등을 SNS에 과시했다. 단순히 금액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고 보기엔, 그는 너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혹자는 그가 리플리 증후군이 아닌가, 즉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리는 일종의 망상 장애가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군에서 불명예 전역을 당하고 난 후 자신의 삶을 잃은 것 같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만 온라인 상에서라도 강하게 소망하던 경력을 적은 것뿐이라고 변명했다. 또한 공모전에 출품하게 된 계기 역시, 죄책감보다는 수상이란 결과가 주는 보상심리, 즉 자신의 존재와 삶을 증명하는 데 더 큰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를 한겨레tv에선 단순히 개인의 부도덕한 일탈이 아니라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분석했다. 즉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단면이라는 것이다. 사회학자 박권일이 이야기한 "능력주의"다. 현재 한국의 20,30대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이 현상은 실제 능력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멸시, 무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실제로 우리는 재산과 학업 성취도 등을 한 인간의 총체로 평가해 버리는 경우를 자주 보고 있고, 결국 이는 가난 혐오, 지방대 무시, 비정규직 차별 등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런 능력에 따라, 특히 그 능력이 보이는 물리적 결과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면서 오히려 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문제는 점점 심각해진다. 이 사건에서는 손창현씨는 공모전에서의 수상을 자신의 사회적 인정과 능력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손쉬워 보이는 표절을 택한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능력주의가 손창현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가장 쉽게 생각한 공모전인 그 문학상이 작가라는 꿈을 가진 이들에겐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공모전이나 신춘문예, 문학상 등은 일반 취준생이나 공시생의 시험처럼 그들의 직업에 필요한, 중요한 통과 의례이다. 단순히 인정 욕구나 허세를 위한 심심풀이가 아니라,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한 준엄한 시험인 것이다. 최근에야 블로그나 웹소설 등의 플랫폼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지망생들에게 적어도 고료를 받을 수 있는 작가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는 문학상에 당선되는 일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손 씨처럼 파렴치한의 단순히 능력에 대한 자기 과시와 인정 욕구에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많이 화가 난다. 문학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분명 있어야 할 것이다.

 


제목 사진 출처 :

본문 관련 유튜브, 기사 출처



먼- 데이 에세이란?

'먼'데이마다 애'먼' 사람들에게 글을 뿌리는, '먼'가 할 말 많은 사람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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