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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촉촉 Feb 08. 2021

당신을 표현하는 알파벳?

먼-데이 에세이 6 MBTI

호랑이 담배 피우던 코로나 이전 시절.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다.
새로운 부서장의 환영 회식이었다. 그 부서장은 이전 부서에서 부하직원을 갈구고, 쪼아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본인은 똑똑하고 이성적이라 본인 말이 다 맞다고 우기며, "라떼는 말이야"를 수도 없이 외치는.. 그야말로 꼰대(!) 상사의 전형이었다. 당시 막내이자 신입 사원이던 나는 어쩌다 보니 그분 앞에 앉아 그 불편함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회식 때 직원들은 모두 긴장해 있었다. 계속 어색하게 술만 마시는 분위기에서 사주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분위기를 푼다고 평소 사주나 타로를 좋아해서 별자리나 오늘의 운세에 따라 하루 컨디션이 좀 달라진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부서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그런 걸 믿으면 되나?"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그리고는 부서장이 말을 꺼냈다.
"근데 혈액형은 좀 맞는 거 같아. 자네 말 많은 게 O형이지?"
아....... 이성적, 과학적을 그렇게 부르짖던 분이?........  얼굴 표정 관리하기 힘들었다.
"아~네... 혈액형은 좀 맞아요.. 과학이죠...." 근데 실제로 나는 O형이다(?!)
암튼 이제 그 상사는 퇴직하셨지만, 요새라면 이런 말씀을 꺼내실지 모르겠다.
"자네, 말 많은 게 ENFP 지? 역시 MBTI 가 과학이야! :)"


혈액형 성격 구분이 1970년대 일본에서 태동해서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에서 유행했다면, MBTI는 최근 2,3년 사이에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MBTI는 기업이나 학교에서 진로 적성 검사용으로 사용하는 공식 테스트였지만, 최근에 16 personality로 대표되는 온라인 무료검사가 인기를 끌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자신의 MBTI 유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유튜브나 공중파 방송에서도 콘텐츠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져서 관심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16 personality의 ENFP 캐릭터. 개인적으로 저 초록색 입술이 싫지만..


MBTI는 정신분석학의 대가 '칼 융'이 심리 분석을 통해 인간 유형을 분류한 연구를 참고로 미국인 캐더린 브릭스와 그녀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개발한 것이다. 이 검사는 사람의 성향을 나누는 8가지 지표를 조합해 16가지로 인간의 유형을 분류한다.

1) 나는 다른 사람과 자주 어울리는가? 아니면 혼자 시간을 보내는가?(E <-> I)
2) 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가? 아니면 상상을 즐기는 창의적인 사람인가?(S <-> N)
3) 논리적이고 분석적인가? 아니면 감정적이고 정서적인가? (T <-> F)
4) 일을 함에 있어 계획적인가? 아니면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을 잘하는가? (J <-> P)




많은 이들은 이전에 유행하던 사주나 혈액형, 별자리 분석에 비해, 본인의 습관이나 행동을 물어보는 90여 개의 문항으로 유형을 나누는 MBTI 가 과학적이고, 신뢰할 만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심리학 전문가들은 사람을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방법론에 회의적이다. 게다가, MBTI는 아무래도 본인이 선택하는 자기 보고 형태이기 때문에 성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될 수 있어도 신뢰할 만한 검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는 바넘 효과 덕도 있다. 바넘 효과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 묘사를 내 개인에 관련된 것이라고 느끼는 심리적 효과를 뜻한다. 전혀 근거 없는 별자리나 혈액형, 심리테스트를 보면서도 왠지 내 말 같다고 느끼는 것이 이 효과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당신은 겉으로는 밝거나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행동과 말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네요."

"당신은 자존심 때문에 남들에게 부탁하는 어려운 말을 쉽게 하지는 못해요."
사실 남들의 이목을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부탁하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특정 MBTI 유형 밑에 있으면 왠지 그 말이 나를 소름 끼치도록 잘 분석한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왜 인기가 있을까? 유튜브 채널 '크랩'은 요즘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자신을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분석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심리테스트 같은 온라인 참여형 콘텐츠가 커뮤니케이션의 접점이 되고, 대중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MBTI 같은 경우에는 검사 결과가 누적되면서 유형을 나누는 질문의 신뢰도가 높아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유머화 되기 쉬운 특징이 있다.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SBS 스페셜>에 나온 출연자들의 말에 더 꽂혔다. 그들은 MBTI 가 요즘 시대의 명함이라고 표현했다. 즉,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나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남을 이해하는 데도 유효한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 특히 연애나 사회생활에서 알기 힘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호의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나에겐 편할 수 있지만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은 삼가고,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곤 한다. 그리고 상대가 행동을 하게 되는 원인인 성향을 알면 좀 더 관계가 수월해질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성향, 즉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또는 이성적, 감정적인지 등은 상대방을 지긋이 관찰하면 알 수 있는 포인트다. 다시 말하면 상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관찰하면서 성향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조금의 데이터에도 그 사람의 쉽게 추측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인간의 다면적이고 복잡한 성향을 추측하기 위해 꽤나 오랜 정성과 애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MBTI 유형은 그걸 쉽게 해결해준다. 명함, 나를 나타내는 숫자와 기호가 들어있는 소개표. 원활한 사회적 소통을 위해 그 몇 개의 특징으로 사람을 정의하는 그 명함처럼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니,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고민도 포함된다. 나도 나를 모르겠으니, 누군가 나를 정확하게 평가 내려주기를 바란다. 깊은 고민과 자아성찰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특정 유형에 대한 편견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유형에 벗어나는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제한을 둘 수도 있다. 인간의 자율성을 스스로 억압하는 것이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지인의 흥미로운 의견을 들었다.

제 생각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자유로운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유라는 건 온전히 자신의 존재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기에 인간은 너무 약하고 외로운 존재인 거 같달까요. 그래서 자신을 통제하고 부려주는 주인을 본능적으로 원하는 거 같아요. MBTI나 혈액형 특징 같은 것들도 다른 사람에 의해 나라는 사람이 평가당하는 건데 우리는 거기서 일종의 만족감을 느끼는 거죠. 아~ 내가 그런 식으로 평가되는구나 하고. 정말 자기 자체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평가받는 거에 연연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부할 텐데 그걸 반긴단 말이죠. 그래서 한편으로 인간에게 신이란 존재가 필요하고 나 스스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인신 사상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대심문관) 같은 문학에서도 그려지는 게 아닐까요.


단순히 빠르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현대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근원적으로 자유를 원치 않는다?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궁금하다. 당신을 표현하는 아니, 당신을 억압하는 알파벳은 무엇인가요?



출처 :



먼- 데이 에세이란?

'먼'데이마다 애'먼' 사람들에게 글을 뿌리는, '먼'가 할 말 많은 사람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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