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기를 쓴다. 사실 오래된 습관은 아니고 작년 8월부터 시작했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 나온 '모닝 페이지'란 프로그램을 보고 따라한 것이다. '모닝 페이지'는 창조성 회복을 위해 매일 아침 3페이지씩 내부의 목소리를 따라 쓰는 일종의 명상 기법이었지만, 어느샌가 일기로 바뀌어 이것저것 내 수다를 적고 있다.
내 일기장은 되는대로 잡히는 빈 노트다
괴발개발 글씨로 쓰는데, 내용도 의식의 흐름에 따라 3,4개의 주제가 한 페이지 안에 나오기도 한다. 주제는 사랑이나 꿈, 연기에 대한 고민이나 어떤 사회 이슈나 사람의 행동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전날의 일기를 쓰는데, 가끔 밥을 먹고 오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하기도 한다. 다시 돌아오면 꼭 일기에 고백을 한다. "ㅅㅂ. 방금도 스마트폰 보고 왔다. 난 왜 집중을 못할까." 나에게 쓰는 카톡창 수준이다.
엉망진창의 글씨
브런치도 쓴다. 예전에 동호회 홍보용으로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글(지금은 내렸다)을 쓰기도 했었고, 책과 연극의 감상을 주로 썼었다. 요샌 잡다한 내 생각을 정리한 칼럼 형식의 '먼-데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작심삼일일 줄 알았는데, 꼬박꼬박 1주에 하나씩 6편의 글을 썼다. 나름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고, 재밌는 주제를 찾으려고, 특이한 사건을 보거나, 쓸만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 핸드폰 메모장에 저장해 두는 게 습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한테 일기를 쓰고, 브런치를 쓰고 있다고 말하면 대단하다고들 한다. 나는 어렵거나 귀찮지 않은데, 다른 이들에겐 글쓰는 것이 숙제 같은 느낌인듯하다. 생각해보니 개인적 생각을 글로 남긴다는 행위 자체가 줄어들었다. 물론 회사나 계약 관련 서류도 글이지만 공적인 내용이며, 자율성 있는 글쓰기가 아니다. 또, 친구와의 카톡 대화나 커뮤니티의 질문-댓글은 글자로 구현되지만 생각을 표현한 '글'이란 느낌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는 셀프 PR의 시대지만 그 수단은 이미지나 영상이다. 심지어 요새 유행한다는 SNS '클럽하우스'는 목소리를 이용한다. 이제 글은 '더보기'란에 덧붙이는 정보 전달에 쓰이는 정도다.
그럼에도 이런 세상에서 그래도 몇몇의 사람들은 왜 생각을 글로 쓸까? 일단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한테 물어봤다. A는 전업 작가이다. 소설책을 출간했고, 드라마 작가도 했다. 그에게 생뚱맞게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물어봤다. 그는 처음엔 취미로 소설을 썼다고 했다. 우리가 교양 수업이나 여행 등에서 자신의 경험하고 느낀 바를 일기로 쓰듯, 그는 허구의 이야기를 썼단다. 그 머릿속의 상상을 글로 표현하는 게 그는 재미있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꽤 괜찮은 것 같아 한 번 평가를 받아볼까 해서 냈던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고, 평범한 대학원생에서 진로를 틀어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표현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자기만족의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결과물로 인정받고 싶었고, 인정받은 후로는 수입이 생기니까 다시 자기만족으로 이어져서 계속 쓰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돈을 받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며, 취미로 글을 쓰는 내가 대단하다며 웃었지만 그의 끝없는 창작활동을 보건대, 자신의 상상을 글로 실현시키는 것을 아직 좋아하는 것 같다. (난 돈은 벌지만 내 회사일이 싫다.. 억만금을 줘도 싫..... 잠깐 억만금이라면 보류)
두 번째, 직업까진 아니지만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블로거에게 물어봤다. B는 전업은 아니지만 꽤나 마니아층이 있는 맛집과 일상, 게임 블로거다. 그에게 왜 글을 쓰는지 묻자, 그는 '정보전달'을 제일 먼저 이야기했고 그다음 '자기만족'이라고 말을 했다. 흥미로웠다. 자기만족은 이해되지만, 정보전달이라니? 그건 그 글을 읽게 되는 독자의 편의와 만족을 위한 것 아닌가? 그저 남들을 위해서 무한정 베푸는 마음이라면 그는 성인(聖人)인 것인가? 게다가 그가 좋은 퀄리티의 글을 주기적으로 업로드하기 위해 투자하는 공은 꽤나 컸다. 그와의 예전 대화를 떠올려봤다 그는 블로그를 쓸 때 남에게 읽힐 만한 제목, 주제를 선정하고 가독성이 높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남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게 그에겐 중요했다. 즉, 유인으로서 정보를 전달하고 그것으로 조회수라는 인정을 얻는 것이 그에게 중요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글을 쓰는 것은 표현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자기만족'과 '인정'이란 당근이 있어야 한다. 특히 외부로 보이는 글은. 사실 나조차도 마찬가지다. 나는 전업작가가 꿈이 아니다. 글을 고심하며 엄청 열~심히 쓰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처음 이 브런치를 시작한 목적은 글로 내가 하는 생각을 표현하다 보면 연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계속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생기니 주제 선정이나 내용을 고심하게 되었다. 또, 조회수가 높거나, 라이크가 늘면 기분이 좋고, 반대로 조회수가 안 나오면 괜히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인정이라는 당근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난 독자가 없지만 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일기는 외부의 인정과는 상관이 없고, 조금 과장하자면 죽기 전에 이 일기가 외부에 누설되지 않게 다 태울 것이다. 그럼에도 일기 쓰기는 재밌고,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그때 블로거 B가 멋있는 말을 했다. 그는 블로그는 아니지만, 가끔 불안하거나 충동적으로 드는 생각을 '배설'하듯 글을 쓸 때도 있다고 했다. '배설'. 조금은 부정적 용어지만 뭔가 생각을 쏟아낸다는 것에 동의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글을 남긴다. 고 표현한다. 생각이란 떠다니는 무형에서 글자가 되어 종이에 앉혀지는 순간, 유형이 된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긍정이라면 보관의 용도가 되고 부정이라면 버릴 수 있다. 또 그런 조각들이 실마리가 되어 나를 알 수 있게 하고, 이 복잡한 세상에서 무엇인가 아는 것이 생겼다는 안정감과 만족감을 준다. 글을 남기는 건 복잡하고 정신없는 인생에서 삶의 안정을 찾기 위한 인간의 안전 욕구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