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에세이 8. 학교 폭력
(일화 속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나는 중2 때 독서 부장이었다. 학급문고 책 빌려줄 때 이름 적고, 깨끗이 반납했는지 확인하는 역할이었다. 서랍장의 겨우 스무 권 남짓의 책을 담당하는 알량한 직책이었지만 나름 열심히 했다.
당시 '창의재량'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보통 자습처럼 책을 읽는 시간이라, 준비물로 책을 가져와야 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학급문고에서 책을 대충 빌려 때우곤 했다. 사실 난 그 시간을 싫어하진 않았는데, 왜냐면 책을 빌려주며 생색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날은 유독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학급문고에서 책을 꺼내갔고, 나는 질서를 지키라며 짜증 섞인 큰소리를 냈다.
"야, 거기. 그냥 가져가면 안 된다니까!!"
"아이, 씨!!!! 발!!!!"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우리 반 일진, 승미가 문고에서 꺼내던 책을 바닥에 내던지며 희번덕한 눈을 치켜떴다.
"너 지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내가 니 호구야? 샹년아"
"아.. 아니.. 그게 네가 책을 그냥 가져가니까."
"이게 니꺼냐고. 졸라 지랄이네"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눈빛에 목소리가 흔들렸다. 다행히 그때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은 책 말고 영화 볼 거예요. 조용히 보세요."
선생님은 꽤나 행복한 내용의 영화를 틀어주고 한쪽 구석 선생님 책상에 앉아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승미와 승미 친구인 두 남자애들이 자리를 바꿔 나를 에워쌓다. 내 옆에는 우진이였고, 내 뒤에는 승미, 승미 옆에는 재한이가 앉았다. 모두 교내에서 유명한 일진이었다.
승미는 내 바로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끼리 이놈, 저놈 하던 장난스러운 욕이 아니었다. 정말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이 혀에 칼날이 달린 무서운 욕이었다. 아이러니했다. 앞에선 하하 호호하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데 나는 울음이 나왔다. 더 해코지당할까 봐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꾹 참았지만,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나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우진이는 얘 운다며 낄낄거렸다. 승미는 어느 정도 욕을 하니 분이 풀렸는지 씨익 웃으며 "야 호구년아. 알아서 잘해라."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 이후로, 나는 일부러 그 아이를 피했다. 급식소에서 비슷한 자리에 앉는 걸 최대한 피하기 위해 느릿느릿 가기도 했고, 수업시간은 정해진 자리가 있었지만 이동 수업 시간에도 최대한 멀리 있으려 노력했다. 다행히 지속적인 괴롭힘은 없었지만, 평소 밝고 활달한 편이었던 내가 그녀 앞에서는 움츠러들었다. 그만큼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그녀는 내 두려움을 이용해 몇 번 나에게 중간, 기말고사 시험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우등생이었지만 안된다고 강하게 말할 수 없었다. 도덕적, 이성적 판단보단 그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몇 번 보여줬었다. 과연 잘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 그녀도 아주 막무가내는 아니라 모든 것을 베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걸 감사해야 했다. 그녀가 베풀어준 관용이었다. 나는 그녀의 처벌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1년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랐다.
지금 30대가 된 지금도 생생할 만큼 그 기억은 나에게 꽤나 무서운 기억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교복을 줄이고, 눈썹을 얇게 민 승미가 아무리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어도 그냥 동갑의 중2였을 뿐인데, 나에게는 그 어떤 악당보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그때는 소위 노는 아이들은 또래 왕국의 폭군, 즉 왕이었다. 그들은 자신만만하고, 유쾌한 얼굴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또래 세계를 조정했다. 나 같은 일반 아이들은 그들이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몇몇 불운한 피해자가 내가 아님을 감사했고, 피해자인 경우에도 그냥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왜냐면 말을 하는 용감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욱 조롱당하고 피곤해지는 경우를 더욱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와 또래와의 관계가 전부인 나이에, 미성숙했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그냥 모든 상처를 자신이 감당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유쾌한 얼굴만을 기억하며 학창시절을 추억한다.
최근 과거 학교폭력 관련 폭로가 배구계에서 시작되어 일반 연예계로 번지고 있다. 사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대부분 재미와 어린 시절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고 뭉뚱그려 퉁친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일탈로 평생을 막는 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고, 왜 굳이 유명해진 지금 그들에게 예전의 죄를 묻느냐고 따진다. 그러나 허지웅의 인스타그램에서 말했듯 "우리 사회에서 그간 과잉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 보호했던 게, 언제나 과소한 처벌조차 받아본 적이 없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주는 것은 피해자들의 선택이지, 시간이 지났으니 용서를 받는 것이 가해자들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또, 혹자는 가해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이전에 침묵했던 사람들도 일종의 가해자라고 말한다. 맞다. 나조차도 다른 왕따에 시달리는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고 협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내 손을 잡으려는 왕따 아이를 거절한 적이 있다. 그땐 그 친구가 나와 안 맞는다는 핑계를 댔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겁쟁이였고, 방관자였다. 넓게 보면 그런 일진의 폭력, 따돌리는 행위들을 숨 죽이고 지켜본 우리 모두 도의적 가해자일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사회가 철저히 피해자 편이어야 한다. 그것이 그때의 가해자들에겐 단죄가, 그리고 현재의 가해자들에겐 경고의 의미가 되고, 아무 말 못 했던 방관자들의 속죄가 될 것이다.
출처 : https://www.instagram.com/p/CLdCcXQHFIg/?igshid=1i5t6ih0hri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