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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촉촉 Mar 01. 2021

에엑? 그런 걸 본다고?

먼-데이 에세이 9. 길티 플레져 영상

만약 당신의 지난 일주일간의 유튜브 검색 및 시청 기록을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하고 100만 원을 준다면 당신은 공개할 것인가?
잠깐 고민했는데 크게 문제 되는 건.. 없... 아니다. 있었다. 조심스럽게 고백하자면 나는 가끔 내성발톱 영상을 찾아본다.

 내성발톱. 발톱이 살 안으로 파고드는 의학적 증상이다. 내가 내성발톱이냐고? 아니다. 한 번도 비슷한 증상조차 겪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거의 수술처럼 발톱을 자르고 뽑아내는 영상부터 발 관리숍에서 조심스럽게 살을 찌르고 있는 발톱 조각을 갈아내는 영상까지 꽤나 다양한 영상을 찾아본다. 사례자의 발톱은 기기괴괴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무좀 곰팡이가 피어있기도 하고, 염증이 있어 피가 흐르기도 한다. 실생활에선 절대 보지 않을, 본다 하더라도 꽤나 역겨울 것 같은 남의 발을 꽤나 집중해서 본다. 살을 찌르고 있던 발톱 조각이 사라진 후, 살이 움푹 파인 모습이 보이고, 동그랗게 말려있던 발톱이 펴지면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진다. 

내성발톱을 검색해보면 조회수가 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비밀스러운 영상 취향을 가진 사람은 나뿐만 아니다. 이런 종류의 영상들에는 피지 뽑기, 인그로운 헤어 제거, 편도결석(소위 목똥) 제거, 치석 제거, 귀지 제거 등의 영상이 있다. 현실로 마주하면 헛구역질이 날만한 이런 상황들을 굳이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댓글을 단다. "왜 내가 남의 **을 보고 있는 거지? 내가 이런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으~ 그러면서도 계속 찾아보게 된다." "쾌감." 심지어 얼마 전 옥탑방 문제아들에서는 피지와 오르가슴의 합성어인 "피르가즘"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피지를 핀셋 등으로 뽑는 영상을 보며 오르가슴을 느낄 정도의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영상들은 충분한 수요층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영상 취향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영 찝찝하다는 것이다. 즉 "길티 플레져"다. 길티 플레져는 죄책감을 느끼는 이라는 뜻의 guilty와 기쁨을 느끼는 pleasure 란 말의 합성어다. 사실 죄책감이라고 해서 큰 범죄를 가리키기보다는 공개적으로 말하기엔 뭔가 쑥스럽거나 창피한 것을 즐겼을 때의 기쁨을 말한다. 꽤 예전의 기사이지만 2007년 경향신문에선 이런 진단법을 내놓았다.

□밤 11시 30분, 라면 끓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꽃미남에 근육맨인 재벌 2세가 가난하지만 명랑한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유치한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거다.
□밖에서 듣는 음악과 집에서 듣는 음악이 다르다.
□책장 위에 올려놓지 못할 책을 3권 이상 갖고 있다.
□할리퀸 로맨스를 10권 이상 읽었다.
□비디오 가게에서 성인영화를 당당하게 빌린다.
□이니셜로 처리된 연예인의 이름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파인트 크기 아이스크림 한 통을 한자리에서 먹어치운다.
□인터넷에서 음담패설을 열심히 검색한 적이 있다.
(중략)

 즉 성욕이나 식욕, 또는 유치하거나 더러운,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 등으로 남들에게 떳떳하게 취향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의미한다. 이 기사에서는 길티 플레져를 느끼게 되는 이유로 "우리의 욕망은 복잡 다양하고, 성욕, 식욕뿐만 아니라 도덕적(사회적) 욕구도 강하기 때문에, 특정 행동이 도덕적이거나 지적이지 않다는 학습을 받으면 좋으면서도 아닌 척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또한 일부러 타인을 기만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실제의 나와 보여주고 싶은 나의 차이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또한 단순히 좋은 걸 숨기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들이 질색하기 때문에 좋아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이 때부터 그랬다. 애기들은 똥, 방귀 이야기를 하면 별 이야기를 안 해도 그냥 그 단어만 이야기해도 자지러지게 웃곤 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작가는 아이들의 그림책을 분석한 책에서 아이들이 똥 이야기를 꺼내면 질겁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여기기도 하고, 똥 이야기 탓에 어른들이 물러난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이런 모습이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독특한 취향을 겨냥하는 대중문화 코드는 항상 존재해왔다. 대표적으로 화장실 유머나 슬랩스틱, B급 좀비, 병맛 코드가 있었다.  최근 가장 핫한 길티 플레져는 아무래도  숨듣명, '숨어서 듣는 명곡'일 것이다. "깡"의 역주행이나 ss501의 "ur man"(속칭 암욜맨) 등 예전에는 다양한 이유로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곡들이 그 나름의 매력을 어필하고 사람들은 맞아 맞아 사실 그랬어하며 숨겨왔던 취향을 어필한다. 길티 플레저는 숨어서 해왔지만, 나만 이런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느낀다는 것에 꽤나 즐거움이 있어서 상품성 있게 콘텐츠로 제작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콘텐츠 제작을 누군가 해주길 기다려 주지 않는다. 유튜브 길티 플레져 영상의 특징은 쌍방향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댓글로 적극적으로 원하는 장면을 요구한다. 물론 온라인이라는 익명성 때문에 사회적으론 오픈되지는 않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고 싶다는 감정 자체를 표현할 수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정확히 내가 요구하는 바가 생기고 있다


 물론 이런 영상들이 더 자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변하고 있다. 유튜브 특성상, 구독자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초반에 눈길을 잡지 못하면 바로 스킵되어버린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부분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먹방은 엄청난 양의 과한 음식을 단시간에 먹어대고, 피지는 몇 백개의 블랙헤드를 피부에 구멍을 뚫을 듯 제거한다. 그런 모습에 구독자가 더 환호하다 보면 더 자극적인 영상으로 도배되고, 구독자들끼리 피드백에 취한 나머지 좀 과장하자면 현실에서 도덕적, 사회적 시선을 무시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여러 점이 있지만, 나는 이런 길티 플레져 영상들이 양지로 나오면서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즐거움을 즐기는 자체를 검열했다면 지금은 독특한 걸 즐길 수도 있다는 걸 쿨하게 인정한다. 어찌 됐든 그게 사회적 창피함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이니까, 그리고 그건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의 첫걸음 인지도 모른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709060958591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50711.22012194400


먼- 데이 에세이란?

'먼'데이마다 애'먼' 사람들에게 글을 뿌리는, '먼'가 할 말 많은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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