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허리가 묵직하고, 구부리기라도 할라치면 느껴지는 찌릿한 아픔. 아 그 녀석이 왔다. 허리디스크. 원래 자세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3년 전 후방 추돌 교통사고를 크게 겪은 후부터, 때때로 발생하는 허리디스크 증상에 고통받고 있다. 물론 발병하더라도 오래 앉아 있을 때 뻐근하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 정도의 약한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특히 심하다.
한 3주 전쯤 홈트레이닝으로 허리에 좀 무리가 가는 동작을 따라 했었는데 아마 그때 이후인 것 같다. 바로 직후, 허리 통증이 심해서 다음날, 정형외과에서 그 비싼 도수치료까지 받았다. 그런데 한 2주동안 받고 나아진 듯하다가 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마치 숨었던 허리 통증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심술이라도 부리는 듯 더 심해졌다. 지난해 실손보험 청구액의 가장 큰 비중이 허리디스크라는데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적자에 곤혹스러운 보험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치료받을 때는 괜찮은 거 같다가 다시 아파지니 결국 다시 정형외과를 찾을 수밖에 없다. 몇 주 째 고생하는 걸 본 내 친구들은 한의원에 가보라는 이야기, 운동 밖에는 답이 없으니 기립근 운동을 하라.. 등등 여러 충고를 해주지만 어찌 됐든 지금 이 고통은 내가 견뎌야 한다. 운동도 하고 허리에 좋은 건 하려고 노력하는데 어쩐지 나아지긴커녕 목도 뻐근하고 이제는 손가락 끝까지 저릿해져 가는 것 같다. 먼데이 에세이를 쓰러 카페에 앉아있는 지금도 계속 앉아있지 못하고 때때로 일어나서 허리를 잡고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비틀어준다. 뚜두둑. 아~ 내 몸의 관절 소리가 이렇게 많이 나는구나.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나는 필라테스를 하기 시작해서 몸의 바른 정렬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 꾸준히 배우는 편이지만, 필라테스는 지금껏 배운 운동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1시간 동안의 필라테스 강습은 유산소나 일반 운동을 했을 때처럼 지친다는 느낌보다는 온몸의 근육을 부분별로 '고문'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1대1 필라테스이니 전체 자세와 근육의 움직임에 대해서 오롯이 선생님이 집중해주니 더욱 근육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 내 체형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고 내가 어디가 불균형하고 다른지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가장 큰 발견 중에 하나는 소위 오리 궁둥이 체형이었다. 엉덩이 힙업인 줄 알고 나름 자신 있어했는데, 필라테스 선생님이 정확히 진단해 주셨다. "골반이 전방 경사 체형이네요." 어쩐지.. 운동해도 똥배가 안 들어가더라.
힙업이 아니라 배다운이었던 게 현실
물론 어마어마하게 비싸지만 돈값한다며 친구들에게 여기저기 필라테스를 영업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필라테스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는데, 혼자 집에서 오버했다가 정작 필라테스에서도 운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허리가 안 좋아지고 나서 내 몸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나는 하루 8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고 일하는 사무직이다. 주변 사람들은 스탠딩 책상이나 모니터 각도 조절기를 설치하기도 하지만, 난 아프기 전까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특히 회사일에 집중해야 한다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나도 모르게 모니터를 향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거북목이 되곤 했다. 그렇게 8시간 내 척추를 고문하고 돌아와서 집에 와서 하는 건 스마트폰이었다. 침대나 소파에 아래 그림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는 유튜브 영상에 내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나있다. 알고리즘의 매직이란.
웃긴 건 저 자세를 취하고 영상을 보고 있을 때는 모른다. 그러나 영상에서 눈을 떼고 몸을 움직이려 하면 척추에서 관절들이 소리 지르고 있다. 그 소리를 좀 잘 들을 걸. 아무리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도, 운동하는 시간은 꼴랑 하루에 한 시간이고 허리의 부담은 23시간이다. 이러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그런데 이런 몸을 하고 있단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치 우리를 감싸고 있던 공기가 초미세먼지로 바뀔 때까지 감지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빠지고 나서야 내 몸, 내 근육이 평소에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있다.
이런 내 몸의 인식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평소 관심이 있던 '알렉산더 테크닉' 이란 훈련법을 따라 하고 있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서 유아인이 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는데, 이 운동(사실 운동이라 하기엔 땀이 안 난다....)의 목적은 고착화된 몸과 마음의 불균형적인 습관을 스스로 인지하여 인체의 잘못된 사용을 자제하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고자 한다. 그래서 바른 중립자세로 서거나 누워서 이완시키는 것이 가장 기본 훈련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의 곳곳을 '의식(인식)' 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말로서 지시어(디렉션)를 되뇌는 방법을 쓴다.
1. 목이 자유롭다. 2. 고개가 위와 앞을 향한다. 3. 척추가 길어지고 넓어진다. 4. 척추와 다리가 분리된다. 5. 어깨가 중심으로부터 넓어진다.
그리고 호흡과 함께 지시어를 하고 마음의 긴장까지 내려놓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저 지시어대로 굳이 모양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생각하고 몸을 그대로 허용하라고 한다. 문제를 인식하면 조급증을 낼 필요 없이 자연의 가장 좋은 상태로 방향성을 갖고 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허리디스크라는 문제를 얼른 풀기 위해 도수치료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무엇인가를 더하고 더하려는 사람이다. 사실 인생의 모든 부분을 나는 그렇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냥 가만히 들여다 보고, 그냥 나쁜 걸 멈추면 되는 건데.
그러나 나쁜 걸 멈추면 된다 생각하면서도 내 욕심은 뭔가를 더 하려고 한다. 오늘도 쉬기보다는 굳이 굳이 먼-데이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2시간 반째 카페에 앉아서 고개를 처박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내 아래 허리가 질러대는 비명에 일어나는 시간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정말 이제 그만하고 가만히 누워있어야겠다. 내 허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