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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촉촉 May 10. 2021

우리 아빠가 사유리를 받아들일때까지

먼-데이 에세이 18. 가족의 변화

일요일 밤, 엄마는 거실에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나는 방에서 유튜브로 이것저것을 보고 있던 차였다.
"어머 어머, 이거 좀 나와서 봐봐." 호들갑스러운 엄마의 목소리에 급하게 나가보니, 방송인 사유리씨와 아들 젠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원래 사유리씨의 유튜브도 구독하고 있던 터라 그들이 낯설지 않았지만, 엄마에겐 꽤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때 조금 늦게 아빠가 집에 돌아오셨다 그리고 외출복을 벗기도 전에 TV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쯧쯧쯧. 아니 저러면 안 되지." 귀를 의심했다.

"어?"

"아니 저 저 사람 얘기를, 방송에서 심지어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에서 보여주면 안 되지."

"왜? 저게 왜"

"정상적인 가족형태가 아니잖아. 근데 저런 걸 권장하면 안 되지"

"아빠, 저건 새로운 가족형태야. 그럼 저게 나쁘다는 거야?"

"아니 물론 인정은 하지. 근데 엄마, 아빠가 없고 저런 모습을 막 TV에서 보여주는 것 자체가 권장하는 거잖아. 넌 내 말귀도 못 알아듣고 참 이상한 애다."

"아빠 요즘 시대엔 저런 걸 오히려 권장해야 해! 아빠는 너무 보수적이다."

아빠는 얼굴이 빨개졌다. 60대 중반인 아빤 본인이 굉장히 정의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가족이 가족다운 게 어떻게 보수, 진보가 나뉘니. 참내."

여성학적,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새로운 가족개념에 대해서 아빠와 백분토론을 벌이려 했지만, 나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흔드는 엄마를 보곤 멈췄다.


사실 여러 사회조사에 따르면 가족 구성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1인 가구, 비혼 동거, 동성 부부, 딩크 부부, 이혼과 재혼으로 인한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부부와 미혼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2019년 기준 1인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30.2%, 2인 이하인 가구는 58.0%이며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은 29.8%로 채 30%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2020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선 국민의 69% 즉, 10명 중 7명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주거와 생계를 공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라고 했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 즉 비혼 출산에 대해서도 48.3%가 수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회의 인식은 바뀌어 가고 있다. 법률이나 행정 정책들도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2008년 호주제 폐지에 이어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따르면 부성 우선 제도가 폐지되는 등 소위 말하는 가부장적, 정상 가족을 지향하는 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나 온라인상의 사회는 변화해도 내 주변은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 부모님은 30여 년간 미우나 고우나 함께하며 큰 딸과 둘째 아들 잘 키운, 말 그대로 한국의 전형적인 부모님이다. 게다가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중에, 동거 가정이나 동성부부, 심지어 최근에 흔한 이혼 가정도 내가 아는 한 없다. 이런 부모님에게 새로운 가족 형태는 말 그대로 TV 속에 나오는 남의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 남동생은 이제 30살인데 20대부터 일찌감치 독립해서 살고 있고, 아직 미혼이긴 하지만 결혼하면 확고한 딩크라고 선언을 했다.(묶겠다(!)는 말을 가족들 앞에서 했다). 게다가 나는 30대이면서도 결혼은커녕 연애도 안 하고 있는 미(결)혼자, 즉, 혼인으로 완성되지 아니한 사람이다. 이렇게 부모님은 이미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겪고 있으면서도 본인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옛날의 기준을 소환한다.
 예를 들면 엄마는 생일 케이크 촛불을 불며 본인의 소원을 "**가 이제 좋은 사람 데려오는 거지" 하고 말한다. 물론 엄마는 전통적 결혼제도에서 여자가 하는 희생을 알기 때문에, 나에게 대놓고 결혼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동생에겐 강력하게 권유하는 편이며, 돈이 없어 못한다면 본인의 노후를 포기해서라도 동생에게 뭔가 해주실 기세다. 또 나에게도 결혼해서 얻게 되는 행복감과 사회적 안정감에 대해 말하고, 주변 친구들이 결혼하는데 불안하지 않느냐며 은근히 꼬신다. "남들 다하는 건데 너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에 비해 아빠는 좀 더 본격적이다. 지난번 아빠와 살짝 언성이 높아졌을 때 나한테 "그럼 니가 시집 안 가고 여즉 여기 살고 있는 거는 맞는 거냐?"라는 말을 하시는 등 나를 결혼을 "못"한 인물로 평가하시는 듯하다.


사실 처음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여러 사회가 바뀌고 있으니 사람들도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이미 사회는 많이 바뀌었고, 그 흐름은 멈출 수 없다. 그냥 내 주변이 안 바뀌고 있던 것이다.  가끔 나는 그런 부모님에게 가르치는 듯한 말을 한 적이 꽤 있다. '이게 옳은 건데, 왜 받아들이지 못하지?' '왜 변화하는 데 그걸 거부하려 하지?' '그냥 배우면 되는데, 무서워하지? 나는 부모님을 답답해했고 그런 것들이 부모님과 마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근데 나는 태어나고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겐 미숙하고, 돌봐줘야 할 대상이었다. 아직도 나는 부모님에겐 그런 딸이어서, 사회 현상을 가르치려는 태도가 머리 좀 컸다고 대드는 꼴로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아빠, 엄마의 생각은 60년 동안 쌓여온 것이고, 이런 사회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10년 안팎이다. 부모님이 나와 내 동생에게 제공해준 정신적, 사회적 기반은 어떻게 보면 우리 부모님이 변화에 보수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30년 동안 유지된 안정된 가족 형태가 나를 포함한 온 가족들에게 준 행복감은 매우 크다. 새로운 가족 형태가 논리적으로 옳다고 판단하기엔 부모님들에겐 이미 반대의 경험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기보단,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우리 바깥의 세상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다리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에게 사유리의 유튜브를 추천해야겠다.


출처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15025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191700005

https://www.bbc.com/korean/news-56612268

http://www.hy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640

https://view.asiae.co.kr/article/2021042715200824990


먼- 데이 에세이란?

'먼'데이마다 애'먼' 사람들에게 글을 뿌리는, '먼'가 할 말 많은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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