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In My BackYard. 이 단어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사회교과서였던 것 같다. 공공의 이익과 상관없이 내 지역에 소위 혐오시설을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일종의 지역이기주의이고,나쁘다고 배웠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른 게 보인다.우린 이타적 협동보다 이기적 경쟁을, 무엇보다 경제적 가치를 중요시 여긴다. 심지어 지나치게 착해서 희생하고, 손해 보는 것보단 영악하게 자신의 이익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고, 똑똑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보는 시선도 마냥 곱지는 않다. 우리 모두 한국 복지시스템에 수혜자이면서, 저소득층, 장애인 등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혜택을 평등하지 않다고 여긴다. 즉,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는 도움을 마치 내 것을 빼앗고, 노력도 안 하고 쟁취하는 듯이 대한다. 이런 태도는 상류층보다 오히려 일반 대중들에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본인조차 약자인데도 강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더 약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대문 사진은 지난 2017년 강서구에 있었던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의 사진이다.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아 학부모 중 한 분이 무릎을 꿇으며 반대를 멈춰달라고 읍소했다. 이 사진은 여러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졌고, 여론의 분노는 반대 비대위를 향했다. 그럼에도 1년여간 더 힘겨루기를 계속했고, 결국 2018년 학부모 측이 아닌 교육감과 국회의원, 그리고 반대 비대위 간 합의 아닌 합의가 이뤄져, 2020년 드디어 '서진학교'가 개교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연극 '생활풍경'과 영화 '학교 가는 길'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아래는 연극 생활풍경과 영화 학교 가는 길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단신세계>의 '생활풍경'은 특수학교 설립 관련 주민 1차, 2차 토론회를 극으로 옮겼다. <극단신세계>는 이 시대가 불편해하는 진실들을 공연을 통해 보여주는 극단이다. 그들은 '공주(孔主)들',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젠더 이슈부터 '파란나라'의 집단주의의 광기까지 특히 약자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다수의 침묵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무대 위에선 조금은 센(!) 수위의 대사들과 상황이 오가고, 배우들은 정말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공연을 한다.
그렇지만 이번 '생활풍경'은 각오하고 간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순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매운 불닭볶음면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토론회는 아수라장을 보이고 있었다. 1차 토론회는 학교 반대 비대위(이하 비대위)의 억지에 10분 만에 끝나고, 관객이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배우들이 나와 2차 토론회를 준비하며 관객을 마치 토론회에 참석한 주민처럼 대한다. 이때 배우들은 마치 주민처럼 친근하게 관객에게 말을 건다. "어머, 애기 엄마, 오늘 토론회 못 온다더니, 애들은 어떻게 하고 왔어?" "애기 아빠. 이번에 하던 일은 좀 잘 돼가요?" 그렇게 조곤조곤, 생글생글 말하던 사람들은 토론회가 시작되자 투사로 변한다. 서로 자신의 자신 쪽의 의견을 악다구니 쓰면서 말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비대위의 말은 옹색하다. 그러나 중간에 나오는 수리구(연극에서는 서울시 대신 한강시, 강서구 대신 수리구 라고 쓴다)의 임대아파트의 주민들은행정적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사실을 지적하며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장애 학부모 측은 장애가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다는 기조로 기본적 인권을 바탕으로 주장한다. 다만 장애학부모에 대해 그들이 마냥 착하고, 순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토론장에서 그들도같이 화내고 악다구니 쓰고 외친다.그러나 결국 마지막엔 결국 무릎까지 꿇어가며 비대위에게 호소한다. 또 찬반 양측 토론자 말고도 중간중간 여러 인물이 첨언을 하러 나오는데, 장애아를 임신한 예비 부모, 학생, 주변 상인, 같은 임대아파트 주민, 노인 등등 그들이 하고 있는 말 중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생각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입 밖으로 나오니 사실 편견 덩어리인 말들이다. 우리의 모습들이 무대 위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프로그램북에 보면 '혐오하고 혐오당하는 우리의 이야기' '차별받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차별하는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곳에 서서 다른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극은 연출적으로 관객의 위치와 입장을 바꾸면서 계속 우리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보라고 한다. 토론회의 관객으로서 설립 반대 편에 서게 했다가 무대 좌우를 반전시켜 어느새 설립 찬성 편의 위치에 서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엔 '장애인이 다수인 사회였다면?' 이란 상상으로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에 대해서 스스로 깨닫게 한다. 이 극은 관객에게 '특수학교 설립'측이 옳다는 주장을 하고 싶기보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자에 대한 혐오 시선을 깨닫게 하는 선악과 같은 느낌이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의 강서장애인부모회 회원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의 투쟁을 담고 있다. 연극에 비해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철저하게 특수학교 설립 측의 입장에서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다큐멘터리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일상과 어머니들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들은 나름 그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 밝게 웃는 발달장애인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어머니들의 인터뷰는 웃고 있지만 왠지 슬프다. 그 슬픔을 같이 위로해줄 새도 없이 토론회는 시작된다. 영상 속 그 토론회는 와.. 연극 속 저 난장판이 사실 실제는 더 지옥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극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하고 했던 말이 실제로 나오고 있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장애학교가 여기에 생기면 안돼요." "여기 장애인 천지야. 병신" 우는 부모들 앞에서 "쇼하는 거다"라는 말 등등. 그들은 맥락 없이 소리치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특별한 악인이어서 그렇다기 보단 우리 속의 일반적인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강서라는 지역 특성상 더 많은 차별을 받았다는 피해의식과 국회의원이 던져준 '미래의 찬란한 한방병원'에 대한 헛된 희망 때문에 저러는 것 같아 한편으론 동정도 갔다.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건 '한방병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김성태 국회의원이었다. 물론 연극에서도 '한길만'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로 나오지만, 메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김성태 전의원의 모순적인 행동(장애인 관련 행사에서 축사를 하면서, 토론회에서는 한방병원을 주장하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금 속된 말로 그 능글맞고 빤빤한 얼굴이 영화 스크린에 비출 때마다 학부모님들 때문에 울었던 눈물이 쏙 들어가고 화가 치밀었다.
그런 어이없고 화나는 상황 속에서도 장애인 부모님들은 강해진다. 인터뷰 속 엄마들은 자식들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면 눈물이 나고 더없이 여린 사람들인데, 시청에 점거 농성을 하러 다니고, 거리에 나서서 마이크를 들고 외친다. 심지어 40, 50대의 여성들이 삭발 투쟁까지 한다. 또 내 아이들의 학교가 아니라 우리 학교라는 마음으로 이미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엄마들까지, 다른 지역까지 원정 가면서 함께 장애인들의 인권에 대해 외친다. 근데 그러면서도 자신들끼리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엄마의 힘이었다.
두 작품은 같은 사건을 담고 있지만 조금 다른 시선이다. 그럼에도 둘 다 각각의 장르에서 하나의 큰 성취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연극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에 나오는 장애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연극 속 우악스러운 비대위의 모습에 객관적이기보단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으니...
더해서 특히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코로나 블루 정도가 아니라 코로나 블랙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무래도 교육과 사회화가 절실히 필요한데, 코로나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해 퇴행을 겪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양육과 교육을 전담하게 된 부모들 역시 극심한 우울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얼른 이 역병이 물러나서 2020년 개교한 서진학교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