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에세이 16. 보이스피싱
우리 사회가 신봉하는 속담이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단 말이지만, 가끔은 그 말이 억울하다. 얼토당토 안 한 루머로 시달리는 유명인이나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이 과연 무슨 원인 제공을 한 것일까. 단순히 연예인으로서 인기가 있어서, 힘이 약한 여성이란 이유가 범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렇게 피해자에게 무결함을 강요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기죄는 특히나 피해자에 대한 폄훼가 이루어지곤 한다. 더 갖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속아 넘아간다는 것이다. 특히나 보이스피싱은 피해자들의 잘못인 것처럼 비칠 때가 많다. 왜냐면 TV에서 흔히 묘사되는 보이스피싱은 어설픈 연변 말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그런 보이스피싱을 오히려 유쾌하게 속여 넘기는 일화도 종종 들을 수 있기 대문이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은 점점 늘고 있는 범죄다. 2021년 2월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2천470억 원 ▷2018년 4천40억 원 ▷2019년 6천398억 원 ▷2020년 7000억 원 등으로 매년 늘고 있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누계를 내면 약 3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 방식도 점점 진화해서 초창기의 허술한 문자 하나, 전화 한 통 정도가 아니라 카톡 등의 메신저에서 지인인척 하기도 하고, 공공기관의 서류나 신분증을 위조해 활용하기도 하는 등 고도화되었다.
무엇보다 사기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범죄이다. 그리고 보이스피싱 역시 단순히 기술 범죄가 아니라 심리를 이용한 사기범죄다. 2019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기의 대원칙(?)은 다음과 같다.
원칙 하나. 감정을 극대화하여 판단력이 흐려지게 하라
원칙 둘. '결핍'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
원칙 셋. '익숙함'이라는 탈을 찾아 씌워라
혹시 당신이 무엇인가 당첨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면 호기심과 더불어 기분 좋은 행복감이 들지 않을까. 보통 그럴 리 없단 생각보단 그 희미한 확률로 뚫고 내가 행운아가 됐다는 행복감에 도취되어 문자를 클릭할 것이다. 반대로 경찰이나 검찰을 들먹이며 범죄에 연루됐다고 윽박지름을 당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에 떨며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소위 "김 검사"에게 400여만 원을 사기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취업준비생 김 모 씨는 약 6시간 동안 전화로 위협당했다. 끊으면 마치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말하는 통에 그는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또 자식들이 납치됐다는 식의 협박을 당하면 부모들은 정상적인 판단보단 자식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화 속에 들리는 목소리만을 믿을 수밖에 없다. 보이스피싱 일당들은 행복과 두려움 등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들을 이용하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두 번째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풍족하고 안정되어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결핍에 시달린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인간은 불안정한 상황이나 불분명한 처지에 놓이는 결핍 상황에 심각한 두려움을 느끼고, 이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무언가를 계속 갈망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핍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꼭 그것이 합리적이진 않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조금 부자연스럽고 이상해도 갈망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자신을 구해줄 동아줄 같은 달콤한 제안을 무조건 이를 신뢰하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40, 50대였다. 아마 코로나 19로 수입이 쪼그라든 가장 들일 것이다. 최근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 ‘현금을 받아서 입금만 해주면 수당을 준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말에 속아 범죄에 연루돼 처벌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19와 경제 불황은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게다가 '비트코인 몇십억 대박'같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이 사회에 내가 그 대박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묘한 기대감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기범들은 너무나 당연하고 잘 안다고 생각할 만한 종목으로 당신을 유혹하고, 의심하지 않게 한다. 갑자기 당신에게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 몇십억을 준다면 그건 당연히 의심할만하다. 그런데 그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사이트에서 문자를 보냈거나, 또 유명 은행에서 대출 상품을 내놓아서 홍보를 하는 것이라면 그 의심은 높은 확률로 반감된다. 게다가 요새 유행하는 메신저 피싱은 지인의 프사를 그대로 활용하기도 한다.
일반 사람들이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보면 말 그대로 확률과 상황의 문제일 수 있다. 사기는 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하는 놈이 나쁜 것이다.
오늘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왔던 배우 지망생 조하나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봤다. 지인의 인스타에 따르면 그녀는 20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보이스피싱으로 잃고 괴로워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나도 이전에 그녀의 방송을 유튜브를 통해 봤었다.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19세 때 스스로 출생신고를 한 기구한 사연의 출연자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밝게 웃으며 검정고시도 쳤고 배우라는 꿈을 향해 갈 것이라 했었다. 그 모습에 엠씨와 시청자 모두 응원했었고 당시에 꽤나 화제가 됐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것은 그녀의 글씨였다. 일반 사연자들 중에 가짜로 고민을 만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녀의 글씨는 정말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듯한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그때 우리에겐 당연한 글씨 쓰기도 그녀에겐 최근 몇 년간 터득하게 된, 정말 열심히 배우는 지식이었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하루하루는 새로운 경험이고 힘든 도전이었을 것이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조차 없는 불안정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는데. 그 말 한 마디 해 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참 슬퍼지는 하루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1/04/26/FMD24HX5VVGJ5NAEVYHQHXUK5U/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10416/106434632/1
https://www.donga.com/news/It/article/all/20191001/97681427/1
https://ko.wikipedia.org/wiki/%ED%9A%8C%EB%B3%B5_%ED%83%84%EB%A0%A5%EC%84%B1
http://news.imaeil.com/SocietyAll/2021020508461351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