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업하는 건물주 Sep 20. 2024

9. 만족하는 현재에 만족하면 안 되는 이유

안주하는 순간 내리막길


 정가한은 작은 동네에 작은 식당이다. 작지만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매출도 괜찮은 편이다. 손님들은 우리 음식이 맛있다고 한다. 아침마다 두부를 직접 만들고 양념장도 직접 만들고 음식 재료에 따라 육수도 모두 따로 만들고 있다. 아침마다 반찬도 만들어야 해서 오전 준비시간이 빠듯하다.

 우리의 정성이 느껴지는지 손님들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다. 특히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수제 콩국수는 전국에서 1등 또는 공동 1등이라고 하셨다. 2등이라는 등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정도 평가에 이 정도 인기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싶을 정도이다.

 

 우리 가게의 메인 메뉴는 차돌박이 순두부찌개이다. 순두부찌개하면 해물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남편은 차별성을 두고 싶어 했다. 그래서 차돌박이 순두부찌개를 내세워 매장을 오픈했고 처음부터 인기가 좋았다. 평범한 해물순두부찌개와 맛이 달랐고 고기가 들어가서 담백한 맛을 자아냈다.

 그런데 고기를 못 드시거나 싫어하시는 손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메뉴는 없나요?"

 청국장찌개, 돈가스도 있다고 했지만 순두부찌개를 드시고 싶어 하셔서 결국 고기를 빼고 끓여 드렸다. 심지어는 고기순두부찌개가 싫다며 안 드시고 바로 나가시는 손님들도 계셨다. 이런 손님들을 붙잡고 싶어서 남편에게 해물순두부찌개를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남편이 싫다고 했다. 왜 싫냐고 물으니 하기 싫다고 했다. 이대로 손님들을 놓칠 거냐고 설득하니 알았다고 답하고는 만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미 완성된 차돌박이 순두부찌개만 계속 연구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맛보라고 주고, 다음날도 주고, 그다음 날도 주면서 새로 개발한 찌개라고 했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모르겠고 뭐가 더 나아졌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일주일 내내 맛을 보던 직원들이 급기야 "그냥 기존대로 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미각이 예민한 남편은 왜 모르냐며 달라졌지 않았냐고 하더니 더 이상 먹어보라는 말은 하지 않고 혼자서 연구하는 데에만 2~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 맛이면 괜찮다고 훌륭하다고, 손님들도 맛있다고 하시는데 왜 자꾸 바꾸냐고 물으니 주방장인 자기 입맛에는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뭔가 부족한 거 같은데 보완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식맛을 조금씩 조금씩 꾸준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확신의 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먹어보라고 했다. 먹었다. 눈이 확 뜨였다.

 "맛있다!"

입에 착착 붙으면서 간도 딱 좋고 그전보다 훨씬 맛있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직원분들에게도 찌개를 나누어주며 먹어보라고 했다. 모두 맛있다고 했다. 남편이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이 정도면 80% 만족스럽다고 했다.

 우리의 입맛만 사로잡은 것이 아니었다. 손님들의 입맛도 확 사로잡은 듯 보였다. 잔반을 정리하는데 뚝배기에 남은 음식이 없었다. 이 테이블도, 저 테이블도 남김없이 모두 다 잘 드시고 가셨다.

 계산할 때에도 음식이 만족스러우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허리를 숙여 잘 먹었다고 인사하시는 손님, 카드를 두 손으로 주시는 손님, 일부러 현금을 준다고 말씀하시는 손님, 웃으며 맛있었다고 말씀하시는 손님, 식사 중에 메뉴판을 유심히 보시는 손님, 식사 중에 매장을 눈으로 둘러보시는 손님 등

 음식이 만족스럽다는 의미가 담긴 행동들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단골손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다.

 "음식에 마약 넣었어요?"

 잊지 못할 최고의 칭찬이었다.


 내가 먹어도 맛있어서 1년에 350일을 순두부찌개만 먹었다. 그것도 무려 5년 동안이나! 질릴 것 같은데 질리지가 않아서 거의 매일 먹었다. 매일같이 맛을 보며 오늘의 찌개를 평가했고 잔반이 많이 나오는 날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기 위해 더 열심히 찌개를 먹었다. 남편도 멈추지 않고 1%라도 더 만족스러운 맛을 내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차돌박이 순두부찌개가 만족스러워지자 남편이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해물 순두부찌개도 만들어 볼게."

 차돌박이 순두부찌개를 완성하고 나니 해물 순부두찌개도 만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그런 뒤 해물 순두부찌개 개발에 집중했다. 전복, 오징어, 꽃게, 주꾸미, 미더덕, 새우 등 안 넣어본 해물이 없었다. 먹어보니 국물 맛이 시원해서 차돌박이 순두부찌개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었다. 그런데 재료가 너무 다양해서 끓일 때 많은 손길이 필요했고 구입 및 재고관리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격 책정도 어려웠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해물 순두부찌개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는데 남편의 지인분께서 알과 고니는 어떻냐고 의견을 툭하고 뱉어주셨다. 재료도 간단하고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알과 고니를 산 후 끓여 먹어보았다. 알탕 느낌이 나면서 순두부와 굉장히 잘 어울렸고 국물맛이 시원했다. 더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멸치 육수로 다시 끓여보았는데 맛이 훨씬 더 깊이 있고 좋았다. 드디어 완성되었다. 바로 출시하진 않았지만 마음의 준비를 더 한 후 메뉴판에 추가하기로 했다. 이제 고기를 싫어하시는 손님까지 사로잡을 준비가 되었다.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 다들 맛있어하고 인기도 좋은데 혼자서 음식 맛에 만족을 못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그리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잘못 개발하면 맛이 더 없어질 수도 있는데, 예전 맛과 달라서 손님이 돌아설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개발하고 언제 만족을 할 것인지, 과연 만족하는 날은 오긴 할 것인지 모든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남편이 옳았다. 맛은 훨씬 좋아졌고 손님들의 만족도도 굉장히 높아졌다.


○양념장 하나를 만드는데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채소를 건조기로 하루동안 직접 말리고, 믹서기에 넣어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들고, 파기름도 내고, 비율을 잘 맞춰서 섞고 버무린다. 빨간 양념장 하나에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이 양념장은 아직도 무한 개발 중이고 조금씩 조금씩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다.


○찌개를 끓일 때에는 맹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기 육수와 멸치 육수를 아침마다 끓여서 사용하고 여름에는 손님이 많아서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육수를 만들고 있다. 육수로 찌개를 끓여야 더 맛있기 때문이다.


○콩국수에 콩물은 1시간 이상 국산콩을 삶아 콩 껍질을 최대한 많이 벗긴 후 주문 즉시 갈아야 진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콩가루, 땅콩가루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여름에 불티나게 팔려서 조기 품절이 가장 많이 되는 메뉴이다.


○가장 중요한 두부는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필히 하루 전날 불린 콩으로 맷돌에 넣고 곱게 갈아야 한다. 갈린 콩은 가마솥에 넣고 나무 주걱으로 손수 저어 주면 되는데 이때 물조절을 잘해야 하고 불조절도 잘해야 하고 간수도 잘 쳐야 하고 뜸 들이는 과정도 잘해야만 부드러운 순두부가 만들어진다.


정성은 당연하고 신선한 재료 사용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저자 '박찬일'님의 『노포의 장사법』책 내용을 보면

-두부는 산업화되면서 맛이 없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정곡을 찔렀다.

 "맛있는 두부요? 두부는 오늘의 두부가 제일 맛있지요."

 갓 만든 두부를 이길 것은 없다. 우리는 이제 맛있는 두부를 잃어버린 시대를 산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수제 순두부, 국산콩, 주문 즉시 조리'라는 타이틀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오픈할 때부터 지금까지 손님들의 관심을 꾸준하게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심을 넘어 큰 사랑을 받으려면 맛도 중요하고 손님들의 호기심도 계속 자극해야 한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맛과 서비스를 조금씩 조금씩 업그레이드를 해야만 자영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오랜만에 정가한을 찾아주신 손님께서 "여전히 맛있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옛날 맛과 비교하면 여전한 맛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계속 업그레이드가 된 맛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유튜브를 통해 인스타를 통해 손님의 외식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식당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맛을 고수하다가는 '맛이 없어졌다, 맛이 변했다'로 하향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손님들의 기대치가 업그레이드되는 만큼 식당도 함께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여전히 맛있네요."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세스고딘'의 책 『보랏빛 소가 온다』내용 중에서

-당신 고객의 일부에게 호감을 살 수 있도록 제품을 변화시키는 방법 10가지를 생각해 보라.-

-지루해지지 마라 / 안전한 길은 위험하다 / 아주 좋은 것은 나쁘다-

 라는 내용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안주하는 순간 내리막길 시작이다. 도태되지 않도록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고, 나만의 무기를 기민하게 갈고닦아서 더 높이 올라서야 한다. 유행이 빠른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8. 낮 3시간, 저녁 3시간만 장사해도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