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들은 잘 보이는 곳에 배치를 했고 축하금들은 뒤늦게 세어보니 액수가 너무 커서 아이들 돌잔치를 열었는 줄 알았다.
세입자분들의 월세도 입금이 되었다.
줄줄 샜던 돈들이 가족과 친지와 지인과 세입자분들 덕분에 많이 채워져서 정말 감사했다. 의미 있는 소중한 돈이기에 없는 샘 치고 쓰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D-1
오픈 선물은 떡과 간식으로 준비하고 선물을 담을 가방도 준비해서 일일이 조립 후 하나하나 담았다. 혼자 준비하기 힘들었는데 지인분이 매장으로 들어오셔서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셨다. 감사해서 오픈선물을 미리 챙겨 드렸다.
식재료들도 준비가 되었고 내일부터 두부를 만들 준비도 되었다.
매장에서 내일을 위한 준비를 계속하고 있는데 식사되냐고 들어오시는 손님들이 계셨다. 내일이 오픈이라서 오늘은 준비된 게 없다고 말씀드리니 저 멀리서도 환하게 잘 보여서 식사가 되는 줄 알았다며 알겠다고 하셨다. 다른 손님들도 들어오셔서 식사가 되는지 물으셔서 내일이 오픈이라고 말씀드리니 멀리서 잘 보여서 와봤다고 하셨다.
멀리서도 잘 보인다는 이야기를 3~4번째 들으니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어쩌면 여기가 정말 괜찮은 자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4.2 D-day
드디어 오픈날이다. 빨리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동선이 익숙하지 않아서 멍하니 서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자주 찾아왔고 1 멍에 10초나 흘러 버렸다.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우리가 둔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데에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하필 그때 주문한 테이블들과 의자들이 배달되었다. 이 바쁜 아침 시간에 도착할 줄이야... 모든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테이블 5개와 의자 20개를 트럭에서 내렸다. 얼마나 꼼꼼하게 포장이 잘 되어 있던지 테이블 다리마다, 의자 다리마다 이중 포장에 타이로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포장만 푸는데 세월아 네월아, 다 풀고 나서 백 리터 쓰레기봉투에 담아보니 한 봉지가 꽉 찼다. 이 작업을 하는데에 20~30분의 시간을 사용했다. 이대로는 11시부터 손님을 도저히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급하게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빨리 와달라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반찬을 만들었다. 동선만 익숙하면 괜찮을 텐데 동선이 다 꼬여서 엉망진창이었고 이 상황은 남편도 직원분들도 마찬가지였다. 물건이 어디 있는 줄 아냐고 서로 묻고 서로 찾아주기 바빠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완전 멘붕이었다.
그때 구세주들이 나타났다. 재오픈을 축하한다며 온라인카페 운영진분들과 회원분과 친언니가 식사를 하러 매장으로 일찍 오셨다. 네 분께 다짜고짜 밥을 퍼달라고 부탁드렸다. 예쁘게 차려입고 오셨는데 식당일을 시켜서 너무너무 죄송했지만 내 코가 석자라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네 분은 적극적으로 도와주셨고 다른 도울 일을 더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음식도 금방 드리겠다 하고는 자리에 앉으시도록 유도했다. 그때부터 손님들이 한 팀씩 입장을 하셨다.
첫 주문을 받고 포스를 찍으려는데 포스가 업그레이드된 새 프로그램이라 이것도 손에 익숙하지 않아서 모니터를 한참을 바라보고 하나씩 찾아서 찍었다. 이렇게 단순한 작업도 버벅거리고 있으니 이 환경이 너무 답답했고 나 자신도 너무 답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지인분들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들어오시는 손님들께 물을 가져다 드리고 주문도 받아주시고 모니터도 같이 보며 메뉴를 찍어 주셨다. 지인분들의 음식이 나왔는데도 먹다가 또 일어나 도와주시고 테이블 정리도 도와주셨다. 천사가 따로 없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때마침 도착을 하셔서 매장 일을 도와주셨다. 앞으로는 이렇게 급하게 연락하지 말라는 꾸중을 들었지만 그것마저 달콤했다. 도와주시는 손길이 정말 감사했다. 그렇게 홀에 일하는 사람만 총 7명이 되어서야 잘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나만 빼고 여섯 분이 일을 더 잘하셨다. 헛웃음이 나왔다.
오픈 날이라 손님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적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렇게 어리벙벙한데 손님이라도 많았으면 정말 폭삭 망할뻔했다. 손님이 적어서 하는 일도 별로 없었는데 긴장했는지 몸이 급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동선은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라 저녁에 한 번 더 일을 하면 나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천사 4인방은 이제 가도 되겠다며 인사를 하고 가시길래 커피 쿠폰을 드리며 감사했다는 문자를 남겼다. 급히 오신 친정어머니도 가시고 친언니도 갔다.
오늘 일은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오후 5시.
예상대로 저녁에는 동선이 조금 익숙해져서 낮보다 멍 때리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움직임도 조금 자연스러워지고 주문 모니터를 찍는 것도 훨씬 익숙해지고 있었다.
낮에 오신 손님 수만큼 저녁에도 손님들이 오셨는데 남편과 둘이 일을 해도 밀리는 부분이 없었다. 만 6년 차 자영업자의 내공이 나오는 듯했다.
오픈 선물은 많이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 저녁에 오신 손님들께 팍팍 나누어 드렸더니 다행히 선물도 동이 났다.
많이 서투르고 부족했지만 인복 덕분에 오픈날은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했다. 손님들께서도 상황을 이해해 주셔서 큰 탈이 없었다. 손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굉장히 컸다.
내일부터는 시어머니께서 3일 동안 도와주시기로 하셨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니 큰 힘이 되었다. 도움의 손길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리라 다짐했다.
D+1
오픈 둘째 날부터 손님이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했다. 단골손님들보다 처음 보는 손님들이 굉장히 많았고 운전하다가 건물이 눈에 띄어서 오셨다는 손님들이 90%나 되었다.
그리고 매장 앞으로 차가 유독 많이 지나가길래 주의 깊게 관찰해 보니 가게 앞 삼거리가 운전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초입 길이라는 걸 오픈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동차량수가 생각보다 엄청 많았다. 이 근처 아파트에서 11년 이상을 살았고, 직선 100m 거리에서 장사를 만 6년이나 했었는데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심지어는 부동산 소장님들도 우리 매장의 라인은 아예 제외하고 상가가 몰려 있는 다른 라인으로 안내하는 경향이 매우 컸다. 우리 라인은 배달 위주 식당이거나 식당이 아닌 매장이거나 공실인 상가들이 많았다.
유레카! 우리가 명당을 차지했다!
가게 앞 삼거리도 살짝 꼬불한데 꼬불한 길을 타고 들어오면 신기하게도 우리 건물만 계속 보인다. 직진해서 삼거리 끝에 다다라야 다른 건물들도 시야에 들어오는 신기한 구조였다. 즉, 초입 길을 들어서는 운전자라면 오며 가며 우리 가게를 모두 볼 것이고 매장 앞에 '순두부 / 콩국수 / 100% 국산콩'이라고 크게 적혀 있으니 여러모로 광고 효과가 아주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거기에 우리 라인에서 홀식사를 하는 곳은 우리 매장뿐이니 손님들의 주차도 용이했다. 이전 매장과 거리도 가까워서 단골손님들도 찾아오고 뜨내기손님들도 찾아오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었다. 모든 면에서 이 장소는 아주 유리하다.
이 계산들이 맞아떨어질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다.
당장 내일부터가 기대되었다.
D+2
손님이 더 늘어났다. 홀이 꽉 차다 못해 테라스에도 손님이 넘치게 기다리고 계셨다. 매장 주변에는 손님들의 차들로 가득했다. 공실 많고 조용하던 뒷 라인에 활기가 가득한 분위기였다.
새 매장을 처음 방문하신 단골손님들께서는 분위기가 훨씬 밝아서 좋다고 하셨다. 이전 매장은 북향이라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침침했었는데 지금은 동남향이니 실제로도 매장이 환했고 천장도 높아서 외관상으로도 훨씬 좋았다. 왜 옮겼냐는 손님들의 질문에 여기가 더 좋아 보여서 옮겼다고 말씀드렸고 찐 단골손님들께는 건물을 사서 이전한 거라고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굉장히 놀라시며 함께 기뻐해주고 축하해 주셨다.
"맨날 손님 많더니 돈 많이 벌었는가 봐요."
동네 어르신들은 솔직하게 속마음을 잘 표현하시는 것 같다. 빙그레 미소로 화답했다.
이제는 손도 발도 점점 빨라져서 많은 손님들도 다 대접할 수 있었다.
D+3
미친 것 같다. 손님들이 더 늘었다. 계속 는다. 매장이 너무 좁게 느껴졌다. 손님을 더 수용하고 싶은데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기다리셔야 한다. 한 팀이 나가면 바로 한 팀이 들어오고 또 한 팀이 나가면 바로 들어오고 자리가 빌 틈이 없었다. 인기가 정말 대박이었다. 오픈빨의 영향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아직 못 오신 단골손님들이 많은데 뜨내기손님들로 어마어마했다. 이 동네에 수제 순두부집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왜 진작에 오픈 안 했냐고 하셨다. 뒤쪽에서 6년 동안 장사를 하다가 이전한 거라고 설명을 드리니 그 길은 안 다녀봐서 전혀 몰랐다고 하셨다. 이런 말씀을 여러 차례 들으면서 깨달았다.
'장사는 역시 목이구나!'
대도로변 쪽이고, 길 건너 스타벅스에서도 바로 보이고, 앞을 가리는 건물도 없고,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나라땅 덕분에 나름 영구적인 조망까지 가졌으니 목이 아주 좋은 편인 듯하다. 거기에 복합문화센터도 오픈 예정이고, 매장 바로 앞에 생긴다고 해도 우리 건물은 가려지지 않는 위치라서 이것 또한 큰 장점이다. 위치적으로도 좋은데 장사까지 아주 잘 되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