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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업하는 건물주 Oct 26. 2024

너와 우리, 1일차

2024.10.10(목)



오후 장사를 위해 매장에 앉아 있다. 오늘따라 손님이 없다. 날이 이렇게 좋은데 손님들은 왜 우리 음식을 먹으러 오지 않을까 궁금하다. 매장 전면 유리창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본다자세히 보니 우리 둘째 딸이다. 뒤이어 함께 걷는 사람들은 딸의 친구들인가 보다. 그런데 둘째의 걷는 자세가 특이하다. 팔을 움직이지 않고 다리만 움직인다. 무언가를 안고 있다. 가슴팍에 작은 귀모양이 보일 듯 말듯할 때 불투명한 벽이 딸을 가린다. 순간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미쳤어!"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묻길래 동물 데려온 거 같다고 함께 나가보자고 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둘째 딸은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다. 그런데 정작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아이들만 바글바글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번갈아가며 쓰다듬어주고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고 있다.

 그 와중에 둘째 딸은 고양이를 다루는 손길이 꽤 능숙하여 놀랐다. 동물을 어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잘 안는다.


 축제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정색하며 고양이를 어디서 데려왔냐고 물었다. 근처 중화식당 앞에서 혼자 쓸쓸히 앉아 있길래 데려 왔다고 한다. 혼자 쓸쓸히가 아니라 어미 고양이를 기다리는 것일 수 있으니 다시 데려다 놓으라 했다. 아니라며 계속 혼자 앉아 있어서 데려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말문이 막혔다.

 동물이라고는 어린 시절 강아지를 잠깐 키운 게 다여서 동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가까이 있길래 살펴는 본다. 하얀 털에 검은색 무늬가 가장 먼저 보인다.  


 "이름은 '카우'야."


 언제 봤다고 벌써 이름이 있다. 그러고 보니 색깔이 딱 젖소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딸에게 체구가 궁금해서 바닥에 내려 보라고 한다. 너무 작다. 갈비뼈가 한눈에 훤히 보일만큼 굉장히 말랐다. 다리는 길고 머리통은 작은데 너무 연약해서 쓰러질 것 같다. 그런데 쓰러지지는 않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니 딱 돌쟁이 아기다. 저 작은 몸에 생명과 영혼이 깃드니 이토록 신비로울 줄이야. 아기 고양이에게 매료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고양이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한번 쓱 쓰다듬는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를 만졌다는 것에 놀라고, 크림같이 부드러운 털에 놀라고, 딱딱한 뼈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놀랐다. 한 번 더 만지고 싶어서 다시 쓰다듬는다. 아, 정말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듯 말듯하다.


 "한 번 안아볼까?"

 '어? 내가 고양이를 좋아했었나?'


머리보다 몸이 빠르게 반응한다. 양손은 이미 고양이의 몸통을 감싸고 있다. 이왕 만진 거 안아보자 싶어 갓난아기 다루듯 살포시 나의 품 속에 넣는다. 분명 고양이를 품 속에 넣었는데 나의 품 속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너무 가벼워 놀란다.

 그런 고양이를 유심히 관찰한다. 털상태는 좋은데 눈 주변이 지저분했고 눈을 스르르 감는 행동을 하다가 움직임이 커지면 깜짝 놀라 눈을 떴고 다시 흔들림이 없으니 스르르 눈을 감는다. 잠이 오는 건지, 병이 있는 건지, 성별은 뭔지, 어떻게 챙겨줘야 하는지 아는 것 하나 없었지만 이 작은 생명체를 보호해야겠다는 사명감은 느낀다.


 "엄마도 고양이 좋아하네? 우리 집에서 키울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명감은 있지만 집에서 키우는 건 결사반대다. 길고양이는 발길이 닿는 대로 사는 동물이니 우리 집에 찾아오면 먹이를 챙겨주고 떠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딸에게 미리 일러둔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남편이 분주하다. 20kg의 콩포대가 담긴 큰 박스를 뜯어 콩포대만 꺼낸 뒤 빈 박스를 들고 주차장으로 온다. 가위로 박스를 자르고 테이프로 붙여 고양이의 임시 거처를 만들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본 딸이 신났는지 건물 속으로 뛰어가 3층 우리 집에서 폭신한 담요를 가지고 다시 내려온다. 가져온 담요를 박스 안에 깐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를 박스 안에 넣는다. 얌전하게 있을 줄 알았던 고양이가 살금살금 걸어 박스 끝으로 다가온다. 고양이 키보다 높은 박스, 높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라 불안한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고양이는 요물이다.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든 점프를 선보인다. 폴짝하고 가볍게 뛰더니 한 번에 박스를 넘어 밖으로 탈출한다. 그러고는 도도하게 걷는다. 쓰러질 듯한 야리야리한 모습이지만 살고자 하는 강인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생명 지켜주고 싶어!'


 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걸어가는 고양이를 잡아 다시 박스 안에 넣는다. 나의 단호함에 위축되었는지 꼬리를 말면서 몸을 웅크린다. 웅크린 몸에 담요를 씌운다. 딸들 재울 때처럼 토닥토닥 손으로 고양이 몸을 가볍게 반복적으로 두드린다. 갑자기 고양이가 엎드린다. 그러고는 얌전하다. 나도 얌전하게 손을 움직이지 않고 고양이 몸 위에 그대로 둔다. 1분 뒤 고양이의 체온이 오르는지 내 손에 열이 전달된다. 이내 고양이가 눈을 스르르 감는다.


 '자는 건가? 죽는 건가?'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행동 하나하나가 궁금하다. 몇 분을 꼼짝 않길래 조심스레 손을 뗀다. 고양이가 눈을 뜨지 않는다. 몸을 덮었던 담요도 움직이지 않는다. 숨을 쉬고 있다면 담요가 조금이라도 들썩여야 하는데 미동이 없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담요를 살짝 든다. 몸통이 미세하게 들썩이다 가라앉는 것을 반복한다.


 "휴, 다행이다."


 1시간,

 2시간,

 3시간이 흘러도 고양이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이 고단했는지, 편히 잠을 못 잔 건지 고양이는 잠 깰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무것도 먹이질 못했는데 배고픔도 잊은 채 깊은 수면에 빠졌다. 혹시나 싶어 담요를 한 번 더 들춰보니 숨은 쉬고 있다.


 어느새 밤 9시.

 이 연약한 아이를 야외 주차장에 그냥 둘 수가 없어 박스를 조심스레 들고 매장 화장실로 옮긴다. 바닥에 물기는 없고, 창문은 열려있지만 방충망이 있고, 다른 동물이 들어와 해코지할 염려 없고, 화장실 문만 닫아 놓으면 다음 날에 고양이를 바로 찾을 수 있으니 넓은 매장보다는 좁은 화장실이 안전해서 더 낫다. 점프력이 좋았던 것이 불현듯 생각나 혹여나 변기에 빠질 것이 염려되어 변기 뚜껑도 모두 닫는다.

 이런 작업들까지 끝냈는데도 고양이는 여전히 잔다. 아주 푹 잔다.

 아침에 일어나 마실 물만 챙겨둔 채 화장실에 불을 끈다. 문을 닫는다. 고양이가 일찍 잠이 깨도 어쩔 수 없다. 안전하게 재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지.


 '잘 자, 아기 고양이. 아니 '카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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