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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업하는 건물주 Nov 02. 2024

너와 우리, 3일차

2024.10.12(토)



 학교 안 가는 토요일. 날씨도 화창하고 마음도 편하다. 세 딸이 카우를 집중케어할 테니 나와 남편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날이 될 듯하다.

 출근 준비를 마친 후 매장으로 내려가려는데 부지런한 둘째가 가장 먼저 일어난다. 


둘째 "카우보러 나도 같이 가."

나 "하루종일 볼 건데 뭘 벌써 일어났어. 천천히 씻고 내려와."


 둘째한테 조급해하지 말라고 해놓고 잘 잤는지 내가 궁금해서 곧장 매장 화장실로 향한다. 문을 열며 카우를 부른다. 어디선가 낑낑거리는 가느다란 소리가 들린다. 아직 '야옹' 소리를 못 내는 카우. 거기에 화장실이라 소리가 울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반사적으로 가장 위험한 변기에 눈길이 간다. 변기 안을 살피는데 카우가 없다. 너무 놀라 두리번거리니 박스 위에 앉아 소리 내고 있는 카우가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려 카우를 안는다. 왜 박스 위에 있냐고 박스 안에서 자면 되지 하는데 박스 안에 설사한 흔적이 눈에 띈다. 담요가 더러워지고 냄새도 진동하여 잠을 잘 수가 없었나 보다. 깔아 놓은 휴지와 담요를 갈아 끼우고 카우의 엉덩이를 물로 씻긴다. 


 햇볕을 좋아하는 카우를 위해 야외로 나온다. 마침 둘째도 내려오길래 카우를 둘째에게 맡긴다. 배고플 카우를 위해 물을 끓여 아침밥을 준비한다. 짠 음식은 고양이에게 쥐약이라는 친언니의 조언대로 딱딱한 멸치를 오래 푹 삶는다. 불을 끄고 흐르는 물에 멸치를 한 번 더 씻는다. 카우의 전용 그릇에 삶은 멸치와 물을 담아 아침 식사를 대령한다. 


양이 많았는지 반만 먹긴 했지만 잘 먹어주니 정말 뿌듯하다. 


이제 일에 집중해야 한다. 토요일은 오후 2시까지만 손님을 받고 정리하기 때문에 늦은 오후부터 나도 함께 놀아줄 계획이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테이블 의자에 앉아 카우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카우에게 키 높이를 맞추느라 쪼그리고 있는 모습들이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카우도 신났는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탐색하고 함께 놀기 바쁘다. 차가 많이 다니는 골목길도 이제는 건너 다니고 흙이 쌓여있는 곳에서 소변도 본다. 소변을 본 후 발로 흙을 긁어 다시 덮는 모습을 보니 자득하는 고양이가 경이로웠다.


 '그래,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져야지.'


 먹고 놀고 싸고 햇살마저 따뜻하니 낮잠 자기에도 딱 좋을 시간이다. 아이들은 아쉬운 휴식 시간이 시작되었고 남편은 약속이 있어 외출한다.



 그런데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카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언제 잠에서 깬 건지 빈 테라스만 덩그러니 깔려있다. 어리둥절한 아이들이 카우를 찾으러 나선다. 아무리 뒤져도 카우가 없다고 한다. 떠난 건지 산책 간 건지 일단 기다려보자고 아이들을 달랜 후 매장에서 카우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정확하게 10분 뒤에 막내가 외친다.


막내 "어? 카우다! 저기!"


 카우가 걸어오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매장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우리 네 명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카우는 안아달라고 몸을 비비적거린다. 제 발로 찾아오는 카우가 그렇게 기특할 수 없다. 예뻐서 얼마나 쓰다듬어줬는지 모른다. 고양이의 매력은 끝이 없다.


 다시 테라스로 데려와 같이 놀고 있는데 배달기사님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매장 앞으로 오신다. 잠시 빙빙 돌며 운전하시더니 가까이 다가와 멈추신다. 



배달기사님 "이거 먹여도 되나요?"

나 "저는 고양이를 잘 몰라서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하며 받았는데 자세히 보니 고양이 사료였다. 감사하다고 꾸벅꾸벅 인사를 드리니 옆에 있던 딸들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린다. 손바닥만 한 적은 양의 사료를 살 수 있다는 걸 기사님 덕분에 처음 알았다. 뜯어서 카우에게 먹이니 이빨로 요리조리 아득아득 깨물며 많은 양의 사료를 먹는다. 그 모습을 보던 둘째가 마트로 달려가 용돈으로 사료를 구입한 뒤 카우에게 사료를 챙겨준다. 이렇게 쉽게 사료를 구입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식단에 대한 고민도 없었을 텐데 기사님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슬슬 해가 저물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밖에서 놀던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첫째는 집으로 올라가고 둘째와 막내와 나는 매장 안에서 카우와 놀아주고 있는데 첫째 전화가 온다.


첫째 "엄마! 정전 됐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집으로 올라가니 실루엣만 겨우 보일 정도로 꽤 어둡다. 핸드폰에 불빛을 켜서 현관에 있는 차단기를 찾는다. 내려진 차단기를 올린다. 안 올라간다. 억지로 올렸다가 손을 떼면 바로 내려온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억지로라도 차단기를 올리면 전기가 잠깐이라도 들어와야 하는데 그런 반응조차 없다. 남편에게 긴급 상황을 전화로 알렸다. 

 30분 내로 달려온 남편이 1층과 3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상황을 파악한다. 그런데 창고에서 갑자기 전기 타는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전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급히 전선을 절단한다. 그런 후 전문가에게 전화를 드리니 전선 절단은 잘했는데 오늘은 토요일 밤이라 어디든 방문출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내일이라도 꼭 방문해 달라고 사정하니 내일 오겠다고 하셔서 한시름 놓았다.  

 우리 집만 정전일 뿐 다른 집은 아무 이상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지만 당장 오늘밤을 어둡게 보내야 하는 게 문제다. 실루엣만 보이던 실내도 이제는 암흑으로 변하면서 물 한잔 마시기가 어려워졌다.


첫째 "엄마, 도저히 집에서는 못 자겠어. 매장 가서 잘래."


 첫째가 밖으로 나서니 둘째가 따라가고 막내도 따라 내려간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나도 계단을 밟고 내려간다. 곧장 1층 창고에 있는 텐트와 돗자리를 집어 들고 매장으로 들어선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가 등장하니 반갑게 맞이하는 아이들. 양손에 든 텐트와 돗자리를 높이 치켜드니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처럼 함성소리가 터진다.

 폭신한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원터치텐트를 펼쳐준다. 잠자리 공간을 확인한 아이들이 집으로 후다닥 올라가 칫솔, 치약, 베개, 이불을 가지고 내려온다. 이불과 베개를 반듯하게 쭉 펼친 뒤 카우를 텐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오늘밤은 화장실에서 안 재우고 텐트 안에서 함께 잘 거라길래 잘 자라고 나는 올라가서 잔다고 말하니 빨리 올라가라고 한다.



 텐트 안을 돌아다니고, 딸들 배 위에 올라가 앉고, 잠도 빨리 들었다며 내일부터는 화장실에서 재우지 말자고 문자 하는 딸. 밤이 늦었으니 그만 전화하고 잘 자라고 인사를 나눈 후 통화를 끊는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마음이 무겁다. 책임감의 무게일까?

집에서 키워볼까 오늘도 생각해 봤지만 절레절레 고개가 흔들어진다.

남들처럼 잘 키울 자신도 없고 용기도 나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헤어질 용기.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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