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의 형식들 -
‘안녕하세요?‘라고 마구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오렌지색을 좋아한다던 그는, 언젠가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본인이 단명한다는 이야기를 그는 웃으며 말했는데, 나는 웃지 못했다. 그 말이 농담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진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이 사람을 오래 기억하게 될 거란 예감을 품었다.
그를 처음 본 건 봄날이었다. 혼자 담배를 피우던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커피와 체리 그리고 음악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몇 모금 빨고 나면 연기가 되어버리는 담배처럼 그는 내 삶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Cucurrucucu Paloma, 그 노래는 들을수록 아팠다. 그날, 괜히 함께 들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너무 둔해서 그가 왜 나에게 자신의 단명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그 말이 생각이 나는 것 보면 어쩌면 그는 이미 내 마음을 내다본 사람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내 곁에 없기 때문에, 연락도 닿지 않는 타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그 흔해빠진 인사를 그에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하고 싶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7년 여름이었다. 그는 마지막 예비군 훈련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군복도 군화도 이젠 필요 없어서 다 버리고 나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망원부터 성산까지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뿌린 책을 선물해 주었다.
마포구청 역에서의 뒷모습,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018년 12월 31일.
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남산도서관으로 향했다. 한 해의 마지막이기도 했고,
그가 만약 오늘도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왔다면,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날 운명이라면,
만날 수도 있으니까 하는 막연한 희망에 휩싸여서 나는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까지 그를 무작정 기다렸다.
그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든 게 정해진 게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그가 보고 싶었다.
남산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그와 연결된 마지막 단서였기 때문에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저 나 지금은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지금은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칭찬받으려고 애쓰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남산에 올랐던 날이었다.
그렇게 책 속의 향기는 조금씩 옅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 삼각지 역에서 그의 향기를 맡고 수없이 많은 퇴근길의 뒤통수를 쫓아간 적도 있다.
이 향기는 분명 그의 향기인데, 그날 이후로 그 향수를 뿌린 사람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사찰안의 오래된 나무 기둥에서 번져 나오는, 촉촉하고도 깊은 우드 계열의 향.
그 위에 피어난 미세한 연기 냄새. 절간 냄새 같기도 한 그 향기는 나를 고요하게, 또 설레게 만들었다.
그 향은 시간이 지나도 내 코 끝에 닿을 듯 닿지 않았고,
비슷한 누군가를 스쳐 지날 때마다 뒤돌게 하는-물론, 그때마다 그 향은 아니었지만- 힘이 있었다.
이상하게 나른하고 힘이 없었던 그였는데, 그 향기만은 나에게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그의 말이 괜한 농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88년생 그 사람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정말로 살아있을까, 혹은 취업에 성공하고, 예쁜 아내를 맞이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을까?
아니면, 나만이 기억하는 사람으로만 남았을까.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을 넘어서 망각해버리고 싶었던 사람.
언제 읽어도, 그는 늘 나에게 새로운 문장이었다.
그를 찾아 안녕하세요? 하고 묻고 싶다.
안녕하다는 말을 듣고도 계속 안녕하냐고 정말 안녕하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안녕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또 확인되어도 계속 묻고만 싶다.
정말로,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언젠가 닿을지도 모르는 이 편지가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2025 여름, chocho 드림.